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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sun Jun 10. 2023

불안한 지금을 위한 나의 위로


20여 년 걸친 직장인으로서 삶을 끝내고 홀로 온전히 시간을 보내니,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생각 속에서 시간은 계속해 과거 기억으로 흘러간다. 바쁘다는 핑계로, 살아내는 게 힘들다는 투정으로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기회를 많이 갖지 않았다. 끝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잠시 은퇴하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갇힌 고독 속에서 나는 나를 찾아 떠나보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보면, 어쩌면 잊고 있던 나라는 사람의 오리지널러티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란 기대를 안고.

심리 상담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 힘겨웠던 사건이나 상처를 마주하는 시도는 지금의 나를 한층 성숙시킨다는 걸 배웠다. 안고 있는 정서적 문제를 치료하게도 되고.


혼자 시간을 보낼 때도, 아주 가까운 지인과 술 한잔 곁들일 때도, 나는 나의 과거를 찾아 계속 떠나본다.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나는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




대학 시절, 나는 전공 시험공부와 테니스 동아리 활동 밖에 하지 않았다. 삶을 크게 흔드는 뜨거운 연애도, 사회를 경험할 처절한 아르바이트도, 견문을 넓힐 해외여행도, 아무것도 기억에 없다.


전자 컴퓨터공학부, 지금 돌아보면 나의 흥미와 적성과는 거리가 먼 선택이었다. 좋아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대다수 대한민국 청소년이 그렇듯, 성적에 맞춰, 어찌어찌 흘러 전공을 선택한 거다. 그리고 그것이 일로 연결되어 삶이 되었다.

중고등학교 때처럼 시험기간에만 열심히 성적을 위한 공부일 뿐이다. 다행히 전공 성적이 나쁘지 않았는데, 더 적응하지 못한 애들이 많아 티가 나지 않았나 보다.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위해 낯선 곳에 가면 부딪혀 깨지거나 상처 입을 게 분명하니, 세상으로 한 발짝 나가는 두려움에 문지방을 넘지 않고 학교 틀 안에서만 지냈다. 치열한 대입에서 해방됐다는 자유감 때문인지 아무 걱정 없이 편히 보내고만 싶었다.

그랬다. 나의 대학시절은 경쟁을 피하고 세상에서 한 발 물러서 숨어버린 기간이었다.



고등학교, 생각만으로도 스트레스가 몰려온다. 최고 몸무게를 찍어 몸은 둔했고, 4당 5 락이라 했던가, 늘 수면부족에 비몽사몽으로 지낸 기억이 지배적이다.


불안한 미래, 원하는 데로 오르지 않던 성적, 가위눌린 것처럼 꽉 막힌 벽 속을 헤매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찬찬히 기억을 떠올려 보니, 항상 결과가 좋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2학년 이과를 선택하고 과목별 성적이 처음 도입되었던 때, 수학과 화학은 전교 1등이었는데. 대체로 기대에 못 미쳐 부족하고 스트레스라는 기억이 강했나 보다.


1학년 때 성적은 전교 10~20등(기억 속)인지라 나도 친구들도 선생님도 모두 예상하지 못했다. 시골 중학교에서 학원 한 번 안 다닌 내가, 정석 책의 존재를 고등학교 입학하고 나서야 알았던 내가, 수학 1등을 한 거다.

그때는 의아한 주변 눈빛에 오히려 주눅 들어했다. 매일 밤 울음을 참으며 수학 공부했던 내게 칭찬 한 번하지 않았다.


화학은 중학교 때 가장 좋아한 과목이다. 중학교 때 ㅇㅇ군 과학경시대회에서 1등 하여 경상북도 과학경시대회에도 나갔다. 열심히 했고 좋아했고 잘했다.


지금은 참으로 칭찬해주고 싶다.

많이 애썼구나, 잘 참으며 버텨냈구나, 잘했구나.


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으로 고등학교 시절은 암흑으로 있는데, 돌아보니 잘한 순간도 분명 있었다. 그때 나는 스스로를 칭찬하지 않고 벼량으로 몰아붙이기만 했다.





예전 기억을 떠올려 무엇이 달라졌냐고?

불안한 지금 시간이 많이 위로된다.


그래, 자신감을 갖자, 자존감을 되찾자. 꽤 오랜 시간 인내하며 주어진 시간 최선을 다해 악착같이 살아왔으니까. 견디고 버텼으니.


세상에서 떨어져 걷는 요즘의 발길이 불안해 예전 기억을 계속해 떠올리는지도 모른다. 이전에 그럭저럭 잘해온 시간이 지금 절실해서일지도 모른다.


좋았던 때와 그렇지 않던 과거로 돌아가 보며 일시적 백수 생활의 불안한 지금을 다독이고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위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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