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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Jul 26. 2016

네가 좋아

2016.06.22 일기

그 노래를 처음 들은 날이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그냥 그렇고 그런 특별함 하나없는 데이트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어떤 주말 너와 만나서 영화를 골랐고 당연하게도 주말 시간대 영화관은 가득가득 차있었고 선택의 폭은 좁았고 그래서 뭘 봤던지 제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그렇고 그런 한국 코미디영화였던것 같다. 코미디는 코미디되 웃기지 않았던 그 영화를 보면서 나는 잤던 것 같다. 영화가 어땠는지 조금이라도 쓰고 싶은데 정말 이렇게 내용이 기억이 안날수가.... 없다....

아무튼 영화를 대충 보고 나와서 밥을 먹었다. 뭘먹었는지도 사실은 기억이 잘 안 난다. 아 여름이었던 것은 기억난다ㅡ 냉면을 먹었던가? 아니면 콩국수를 먹었던가? 사이드로 왕만두를 먹었던것 같긴하다. 만두가 있었던 것을 보니 냉면집이었나보다. 만두는 보통 다섯개를 주니까 언제나 그랬듯이 마지막 만두를 두고 내기했던 것 같다. 뭘 걸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그래 냉면집이라고 하자. 그 냉면집에서 배고프면 아무말도 하지않고 우걱우걱 초스피드로 밥을 먹는 나를 쳐다보면서 갑자기 너가 노래 한소절을 불렀던 것 같다.아니 뭔가 맥락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만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맛있게 먹는 네가 좋아

그런 널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나


?.? 얘는 왜 갑자기 밥을 먹다 웬 노래?.? 정줄을 잡으렴 내가 아무리 좋아도 갑자기 웬 고백 ?.? 이렇게 뜬금없을수가?.? 하며 놀렸던것 같다. 뭐 항상 그런식으로 우리는 노래했으니까 그렇게 그냥 불렀구나 하고 넘어갈 뻔 했는데.

그 다음에 간 까페가 기억난다. 배가 불렀으니 나는 또 늘어져 있었겠고 너는 늘 하던 것처럼 내 귀에 이어폰을 꽂아주었을 것이다. 그때 아마 처음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둘이서 손잡고 고른 영화가

재미없어도 그냥 좋아


너 지금 영화가 재미없었다고 나한테 항의하는건가 ?.? 하면서 또 투닥투닥했었을 것 같다. 너는 억울하다는 듯이 재미없어도 좋다는데 왜?.?이리 말했을 것이고, 그래 정말 그런 얘기를 했을지는 잘 모르지만 아마도 그런 내용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얘기라면서 제대로 끝까지 듣지 못한 그 노래의 끝은


사실은 난 그냥,

정말로 난 그냥,

진짜로 난 그냥, 네가 좋아



네가 정말로 좋았다.

너도 평범한 남자였으니까 뭐 나한테 물어봤던 것 같다. 내 어디가 좋아?.?

그러면 내가 그냥. 이라고 말했을 것이고 그냥이 어딨어. 하면서 삐진척을 했겠지. 그러면 나는 또 적당히 우리자기는 잘생기고 목소리도 좋고 똑똑하고 나만 좋아해주고 이런 정말 너무나 고루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내가 널 좋아하는 이유를 설명해줬을 것이다. 응응 그래. 결국 다 좋아. 정말 그냥 네가 좋은걸 어떡해.

그래서 나중에 저 노래를 다시 들었을때 이건 꼭 너에게 들려주어야 하는 노래라고 생각했다.

나만 그냥이라고 하는게 아니잖아. 봐봐 딴사람들도 다 그냥 좋다고 한다구 후후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실제도 어떤 날엔가 불러주었던것 같다.

너는 또 감동감동 했었던것 같다. ㅎㅎ그래 그날은 좀 기억이 난다.

아니 솔직히 좀 선명하게 잘 나는데 기억이 잘 나니 굳이 쓸 필요가 없다.





그렇게 너와 나는 연애를 했고

의미없는 웃기는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배를 잡고 깔깔거렸고

가끔은 노래방에 가서 몇시간이고 노래를 불렀고

까페에서 이어폰을 끼고 서로 각자 책을 일기도 하였고

그렇게 누구나가 하는 그런 연애를 했고

여기에 옮겨 적는것이 우스울 정도의 평범한 누구나 다 하는 이별을 했다.



목소리가 가장 마지막까지 남는다고 생각한다.

조금 희미해져서 아니 조금 많이 바래져서 이제는 네가 어떤 표정으로 웃었는지 잘 가억이 안나는데 네 웃음소리는 아직 쪼끔 기억난다.

네 사진은 적당한 시기에 잘 지웠었는데 네 목소리는 오늘까지도 남아있었다. 헤어지고 딱 두번 들었다. 네가 불러준 노래가 참 많다. 노래도 지지리도 못하면서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는 너는 노래해달라고 하면 한번도 안빼고 노래를 불러줬다. 내가 몰래 녹음하고 있었는데 ㅎㅎ


아무튼 오늘 갑자기

네가 좋아. 를 듣다가 이제는 네 목소리도 지울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지웠다. 한순간에 지우는데 하나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사진을 지울때는 사진하나에 눈물 펑펑급이었는데... 뭐가 이리 쉬운지 ㅎㅎ그냥 툭 지워버렸다



헤어지고 나서는 미련이 많았다

너에게 받은것만 생각하고 너에게 상처준것만 생각하고 내가 정말 못괸년이지 하며 자학도 많이 했다

그런데 이제는 좀 다르다


나는 정말 있는 힘껏 사랑을 했다

이렇게 점점히 네 기억이 스칠때 나는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있었다

너만 보이던 때가 있었다

있었던 것 같다,가 아니라 확실하고 선명하게 있었다

그냥 정말 그냥 네가 좋았다


요즘 핫한 드라마인 또 오해영을 보았다

오해영이 발로 채일때까지 사랑하자고 결심하는 장면을 보면서


나 이제는 그만 차이고 싶다ㅡ이별은 너무 힘든 것이다ㅡ고 생각하면서도 저 오해영이 이쁘다고 생각하는 것은

서현진이 예뻐서만이 아니라

이제는 나도 조금은 준비가 되어가는 것 같다

느리지만 조금씩. 적당히 사랑하지 않겠다.


https://youtu.be/cOhU2jGBtIM

(2016.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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