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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Oct 01. 2016

오늘 기분은 어떠세요?

오늘 기분은 어떠세요?


이 질문을 매일매일 반복하고 있다. 매일 같은 질문을 던지는데 신기하게도 대답은 매일 바뀐다. 똑같아요, 부터 시작해서 기분이 좋으면 좋은 이유 한가득, 나쁘면 나쁜 이유 한가득을 쏟아낸다. 기분을 만들어낸 상황은 모두들 제각각이지만 정작 '기분'을 나타내는 말은 너무나 한정적이다. 좋아요/그저 그래요/나빠요/우울해요/모르겠어요 정도일까. 그래 결국 나는 그 사람의 기분이 어떤지를 듣고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기분을 만드는 맥락을 듣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그 맥락을 통해서 나는 그냥 그 사람의 기분을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그것은 나의 감정일까 저 사람의 감정일까 알 길이 없다. 우울해요, 그 한마디로 나는 그 사람이 얼마나 우울한지 영영 모르는 것이고 저 사람의 상황이었다면 느꼈을 나의 우울감을 상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정말 유능한 의사였다면 적당한 거리를 두고 내가 매몰되지 않는 객관적인 선에서 환자를 충분히 공감해 줄 수 있었겠지만, 나는 아직 그러지 못해 가끔씩 거리감을 상실한다. 나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으면 더 격하게 상상하지만 나의 세계와 떨어진 이질적인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상상하는 것도 어렵다. 


4년간의 짝사랑을 접다가 우울증이 왔다는 너의 이야기를 듣다가 너무나 상상해 버렸다. 

힝.....


 


오늘 기분은 어떠세요?


이 질문을 나에게도 던져본다. 너무나 어려운 질문이라서 잠시 멈칫 한다. 도대체 내 환자들은 이 어려운 질문에 어떻게 매일매일 답을 하는 것일까? 질문을 받은 나는 대답을 주저한다.  

너 때문에 잠시 시무룩했지만 옆자리 언니네 애기 사진을 보고 한동안 우쭈쭈 했다가도 또 네 생각을 해서 기분이 꾸물꾸물거렸다가, 환자가 외출 나가서 술마시고 들어와서 한동안 실갱이를 하다보면 딥빡을 느끼기도 하였다가 교수님께 혼나서 깨갱 했다가 점심시간이 되어서 맛있는 것을 먹고 나면 한껏 업되었다가, 졸리면 또 짜증이 솔솔 나기 시작한다. 일제대로 안(못)하는 누군가를 보면서 화도 났다가 또 그 사람이 맛있는것을 사주면 헤벌쭉 하기도 하고.... 하루종일 폭풍같은 휘몰아침 속에서 나의 기분을 어떻게 한마디로 말하겠는가


항상 그렇다. 기분은 좋으면서도 나쁘고 나쁘다가도 좋다. 

나는 내 일이 즐겁고 보람차다고 느낀다. 하지만 매일 아침 지하철을 타고 출근할 때에는 하루가 또 까마득할 뿐이라서 조금 우울하다. 내가 하는 일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일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매일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일을 하고 있을 때에는 갑갑하고 지루하여 몸서리쳐진다. 이렇게 알수 없는 모호한 상태의 나를 어떻게 설명할 수가 있겠는가.

나는 네가 좋으면서도 밉고 싫으면서도 보고싶다. 

뭐 하나 뚜렷한 것이 없는 내가 멍청한 것 같으면서도 사랑스럽다.


그리고 그것은 너도 마찬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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