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이라기보다는 조울증에 가까울 것 같기는 하다만 진단에 관한 이야기는 차치하자.
어느날 갑자기 요즘 너무 우울하다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을 만큼 무기력하다고 고백해온 친구가 있었다. 그 애가 어렵게 꺼낸 이야기는 내가 매일 병동에서 듣던 이야기와 다를 바 없어 순간 내가 환자와 얘기하는 것인지 친구와 얘기하는 것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증상에 대해서 캐묻고 있었고 가족력을 묻고 있었고 머리속에서는 진단은 뭐고 약은 뭘써보는게 좋을까...이런 생각들이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친구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사실 나는 친구로서 실격이다. 나는 그 애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 애도 아마 있는 힘껏 기를 쓰고 타인이 눈치채지 못하게 노력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그 애를 보면서 나는 아마 눈치를 챘음에도 비겁하게 적당히 모르는척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결론지음으로써 또다시 반복되는 무력감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피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 애를 병원 어딘가에서 만났다면ㅡ, 의사로서의 나는 아마도 지금 당장 약 복용의 필요성에 대해서 줄줄줄 이야기하고, 당분간 입원상태로 지켜봅시다!라고 명확하게 이야기해서 입원시켰을 것이다. 그런데 그 애에게는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병원 가볼래...?약은 먹어 볼래...?라고 넌지시 물어봤을 뿐이고 약은 먹기 싫어요....라는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 애의 의사는 될 수 없다. 처음부터 나는 그 애의 친구이지 의사가 아니었다. 의사인 친구는 될 수 있어도 의사가 될 수는 없다.
왜?
모르겠다.
내가 그 애한테 너 지금 입원해야될거같아, 라고 말하면 너무 무거워질까봐 무섭고 겁이 났던 것 같다. 친구라는 관계가 갑자기 툭 끊어져버릴까봐? 모르겠다. 그 친구라는 관계가 그렇게 간절하게 부여잡아야 하는 것이었냐고 물어보면 그것 또한 모르겠다. 그렇다면 결국은 내가 비겁했던 것일까? 그애는 나에게 의사로서의 역할을 기대했는데 내가 또 피해버린 것이었을까? 모르겠다.
어렵게 내가 꺼낸 말은, 그래도 병원은 가보자. 무서우면 같이 가줄게. 라고 이야기 해주는 것뿐이었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며 살고 있었지만, 사실은 사람을 많이 무서워하는 그 애와 사람이 없는 식당에서 밥 한끼 같이 먹어주는 것 뿐이었다. 밥은 꼭 챙겨 먹자. 무슨 일이 있어도!
친구같은 의사ㅡ에도 함정은 있었다. 환자들 앞에서 나는 의사를 조금은... 연기한다. 내 문제에 대해서는 지지리도 결정 못하는 결정장애를 앓고 있는 나를 알아버리면, 내가 내리는 결정에 신뢰감을 잃을 것 같아서 나는 확고함을 연기한다. (사실 그 확고함은 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확고함인 것을.... ) 맨날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연습을 하라고 잔소리 해대는 내가 사실은 스스로의 감정에 대해서 솔직하지 못하고 정작 잘 표현하지 못하는 미숙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환자가 나를 사랑하게 해버리면 안 되었다.
3월, 피뽑고 관장이나 하던 인턴이 갑자기 주치의가 되어서 만난 나의 첫 환자.
내 또래였고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였고, 나와 생각하는것 고민하는것 모두모두 비슷했던 그와는 정말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입원해 있는 근 두달 동안 매일매일 보고, 하루에 한시간씩 이야기를 하는데 친해지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라고 생각했다. 정말 온갖가지 이야기를 했다. 처음에는 증상과 환경, 스트레스에 관련된 이야기만 하다가 할 얘기가 점점 없어지니 온갖가지 신변잡기적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했다. 이상형부터 시작해서 첫사랑 이야기, 꿈 이야기, 결혼, 지나간 청춘과 나이듦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듣고만 있었다. 그런데 어느새 나도 모르게 그가 질문하면, 나는 내 이야기를 하고, 내 생각을 말하고, 나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
나는 친해지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은 나를 먼저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나를 먼저 보이면 상대방도 용기를 내어 스스로를 보여주게 되고 그것이 관계의 시작이고 우정이고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의 멍청한 점, 부끄러운 점, 비겁한 점도 모두 알아도, 그래, 그것마저도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나의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와 친구가 되고 싶어서 나는 내 얘기를 하기 시작했나보다.
어찌저찌 증상은 좋아지는 것 같다가 또 나빠지다가를 반복하였고, 아마도 그건 상당기간 오래 지속될 것이지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원은 가까워지게 되었다. 내가 아무리 전지전능한 의사라도 그가 살아갈 앞으로의 환경을 바꿔놓을 수는 없다. 아마도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아, 이런게 무력감이구나! 뭐하나 바뀐게 없네....라는 생각. 정말 어떻게든 해주고 싶은 마음은 그득그득한데 내가 할 수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퇴원하는 날 그가 물었다.
선생님, 선생님이 의사가 아니라 제 친구라면 선생님은 지금 제게 뭐라고 말할 거예요?
나는 대답했다. "니가 예수냐?"라고 말할것 같은데요...라고.
항상 자꾸 짐을 지려는 그가 너무나 안쓰러웠다 나는.
그말을 듣더니 그는 빵 터지더니 잘 살아 볼게요. 는 말을 남기고 퇴원했다.
그렇게 가고 나는 또다시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그냥 가끔 생각은 났지만, 친구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또 친구는 아니니 연락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고. 그러다가 또 일상에 치여 까먹고...그런 나날이었다.
그렇게 몇주가 흐른 후 그를 다시 본 것은 응급실에서였다.
반복된 폭식으로 얼굴은 다 부어있고 잠도 제대로 못자서 퀭해진 채로 링거를 맞고 있는 그를 본 순간 나는 아 뭔가 크게 잘못되었구나,를 느꼈다. 나를 본 그가 하는 말은 더 가관이었다. 에이...선생님이 하필 당직이네...
나한테 보이기 싫었단다. 안좋은 꼴을. 그런 모습을 보면 치료를 못해서 그렇게 됐다고 생각할까봐, 내가 죄책감 가질까봐 보이기 싫었고 감추고 싶었단다.
친구가 되면 안되는 거였나보다.
그 이후로는 나는 내 얘기는 그냥 안하기로 했다.
뭐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안하고 있다.
하기 싫어졌다.
개인적인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들었었다.
나는 과도하게 자만심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날것의 꿈틀대는 감정으로 부딪쳐 오는 사람을 더욱 사랑하기에,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고, 환자에게도 그런 사람일 수 있다고 자만했다.
하지 말라는 데에는 하지 말라는 이유가 있었을 텐데....
아직 정확히는 모르겠다. 아직 나는 새끼의사니까 좀더 열심히 고민해 보자.
그 이후로는 만난 적 없지만 가끔 생각나면 이름을 찾아본다.
아직 잘 살아있다 그는.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