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숏컷을 하고 싶은 맘이 계속 들었는데 하지 못했다. 배우 정소민 씨가 했던, 귀 뒤로 살짝 넘긴 숏컷이 너무 예뻐 보였는데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는 것이었다. 볼살도 많고 얼굴도 큰 내가 저 머리를 하면? 과연 어울릴까? 얼굴이 달덩이처럼 보이는 거 아닐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결국 자르지 못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에 "그래, 그냥 자르자!"하고 맘을 먹었다가도 막상 미용실을 가면 또 똑같은 단발펌을 하고 말았다.
사실 나도 숏컷을 했던 적이 있었다. 15년 전 열여덟 살 때 학교를 그만두고, 기념으로 아주 짧은 쇼트커트을 하고는 샛노란 색으로 염색을 했었다. 그때 모습이 어땠느냐고? 김밥 파는 할머니로부터 "총각, 김밥 하나만 사."라는 말을 듣고는 충격에 빠졌다. 그런 모습이었다. 그 시절의 사진은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고 누구도 찾지 못했으면 좋겠다. 그런 모습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숏컷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 건. 그렇게 고민만 하다가 어느덧 또 머리가 거지 존에 도달했고 드디어 오늘, 머리를 잘랐다. 미용실 거울 속의 내 머리가 싹둑싹둑 잘리는데 어쩐지 헛웃음이 났다. 속이 시원하면서도 '안돼!' 하는 생각도 들고, 왠지 웃기기도 하면서 울고 싶기도 했다. 마음이 어쩐지 복잡했다. 머리 하나 자르는데 온갖 감정의 변화를 겪고 나서 거울을 보니, 아, 그렇게 산뜻하고 어색할 수가 없었다. 결론적으로는 생각보다 아주 마음에 들었다.
미용실을 나와서 잠시 주변 상점을 구경하는데, 자꾸만 거울에 눈이 갔다. 거리를 걷다가 바람이 휭 부는데도 목 뒤로 아무것도 날리지 않는 게 이상해서 계속 머리를 흔들어 보았다. 잘려나간 머리카락 끄트머리가 까끌해서 자꾸자꾸 만져보았다. 또 웃음이 났다. 재밌어서. 머리 하나로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어색하고 재밌었다. 낡은 핸드폰에 새 케이스를 끼우면 어쩐지 새 폰처럼 보이는 것처럼, 나도 마치 새 사람 같았다. 고민은 그다지 할 필요도 없었다. 어울리는지 안어울리는지는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였다. 앞으로 사는 게 재미없을 땐 머리스타일을 확 바꿔봐야겠다. 다음엔 허리까지 오는 히피펌이 어떨까. 오렌지색으로 염색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