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1 - 선풍기

by 백홍시

제대로 된 경력사항 없는 30대 초중반의 여성. 나의 민낯은 이것이다. 더 이상 하고픈 일도 없고 되고픈 것도 없는 우울한 서른셋의 어느 날, 그래도 글이라도 써 보자며 노트북을 켰다. 나이가 권력인 취업 시장에서 내 이력서는 열어 보기도 전에 탈락하는 휴지조각. 그럼 만화로 먹고살 수 있겠느냐 하면 냉정하게 ‘아니오’. 모든 것으로부터 의욕이 사라져 버린 나는 이제 더 이상 무얼 해서 목숨을 부지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바깥에서는 바람이 쌩쌩 부는데 방안은 조금 더워 선풍기를 켰다. 우리 집은 맞바람이 치질 않아서 집안의 온도가 바깥을 따라가지 못한다. 내 마음도 바깥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속이 답답하고 열이 난다. 20대 중반, 짧은 기간에 몇 차례나 회사를 옮긴 적이 있다. 모두 적응하지 못해서. 그리고 마지막에는 잘렸다. 적응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 것이 티가 난 모양이었다. 그때, ‘아, 나는 회사는 안 되겠다.’라고 생각해 버렸다. 그리고 프리랜서 애니메이터로 4년 간 근무. 가장 잘 맞았다. 경제적인 것만 빼면. 돈 벌기 힘든 직업이었다. 그래서 그만두고 만화 그려보겠답시고 준비하다가 또 이게 아닌가 해서 지금은 그냥 돈 버는 일 아무 거나 골라잡아하고 있다. 나는 도대체 뭘까? 암튼 그래도 예전엔 그렇게 옮겨 다닐 수 있을 만큼, 이력서를 넣으면 턱턱 잘도 붙었다. 지금은? 어딜 가도 환영받지 못하는 이력서가 지금의 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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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듣는 라디오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스스로의 ‘이상적인 부모’가 되어주는 것이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는 이야기였다. 머릿속으로 힘들어하는 자신을 떠올린다. 그리고 부모가 되어 자신의 어깨를 토닥여 준다. ‘그래, 고생했어. 넌 할 만큼 했어. 괜찮아.’라고 이야기해 준다. 나도 라디오를 들으며 눈을 감고, 힘들어하는 나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이제 위로의 말을 해 줄 차례. 그런데 어째 좋은 말이 안 나온다. '고생.. 했니? 할 만큼.. 했냐? 괜찮긴 개뿔... '입에 담지 못할 악담이 나오려기에 급히 눈을 떴다. 내가 고생이나 하고 할 만큼이나 하고 이렇게 되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너무 자기혐오적인 말이 나올 것 같아 이상은 생략. 이상적인 부모는 과연 이럴 때 어떻게 말해 줄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이 글은 하고 싶은 말이 뭔고 하니, 그냥 솔직한 글을 쓰기 위한 글이다. 한심하고 잡스러워도 그저 솔직한 글 한 번 써 보고 싶었다는 말이다. 이제 나도 선풍기를 끄고 바깥바람을 맞고 싶은데 바람은 이미 멀리 가 버려서 따라가기 힘들더라는, 그런 주절거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