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13 - 초록 열매

by 백홍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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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지나는데 툭 하고 뭐가 떨어졌다. 아직 익지 않은 초록색의 조막만 한 열매 하나가 내 발밑으로 몸을 내던진 것이다. 바람도 불지 않는데 웬일일까.

‘조금만 기다리면 맛있게 익을 텐데 왜 떨어졌니.’

옆을 보니 이미 언젠가 떨어졌던 초록색 열매가 차에 밟혀 뭉개져 있다.

‘거 봐. 네가 원하던 게 이런 건 아니잖아. 매달려 바람을 맞는 일이 힘들었니. 그래, 나도 네 맘을 조금은 알겠어. 다른 열매들의 알맹이가 커지는 동안에 작은 네 몸을 보며 얼마나 초조했을지. 세찬 바람이 불면 가장 먼저 떨어질 것은 나겠지, 생각하며 버티고 있는 마음이 얼마나 불안했을지. 그래도 버티고 있다 보면 혹시 아니. 너도 다른 열매처럼 크고 붉어질지. 떨어지면 그런 기회조차 잃는 거잖아.’

나는 열매가 차에 밟히지 않도록 옮겨 주었다.

‘그나저나 너는 무슨 열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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