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17 -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날

by 백홍시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날에는 괜히 잠들지 못 하고 뒤척인다. 잠이 들지 않으면 내일이 오지 않을까? 잠시라도 내일을 미루고만 싶다. 이런 글을 쓰고 있노라면 나는 ‘브런치’를 무슨 ‘싸이월드’ 일기장처럼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작가 분들은 자신의 경험을 글로 잘 가꿔내던데 나는 경험을 쓸 것이 없다. 그래서 내 글의 대부분은 내 머릿속의 너저분한 생각들이다. 이런 글을 봐 주시는 독자 분들께 오늘도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그래도 내 글이 그런 역할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오, 나랑 비슷한 사람이 있네.’ 또는 ‘오, 내가 이 사람보단 낫네.’ 같은 위로가 되는 역할. 적어도 그 정도도 역할은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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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즐겨 보는 미드 중에 <Crazy Ex Girl friend>라는 미드가 있다. 주인공 레베카는 제목처럼 아주 미쳤다. 잘 나가는 변호사지만 경계성 인격장애를 앓고 있다. 이해할 수 없고 눈살 찌푸려지는 행동들을 수시로 한다. 그런데 나는 그 드라마를 보면서 위안을 받는다. 나와 비슷하진 않은데 왠지 모르게 어딘가 비슷해 보이는 모습들을 보면서,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 싶어서 조금 위안이 된다. 뮤지컬 드라마라서 노래들이 나오는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You ruined everything>이다. 말 그대로 ‘네가 모든 걸 망쳤어.’라는 노래인데, 스스로에게 하는 노래다. 넌 모든 걸 망쳤어! 이 바보 같은 것! 이 가사를 반복한다. 이 부분을 들으면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내가 늘 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저 깊이 공감했기 때문에 이 못난 노래에 감명 받았다. 내 글과 만화도 그런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아무튼 내가 어디에라도 쓸모가 있었으면 한다. 요즘은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오늘도 멍하니 침대에 누워 하얀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가 쓸 만한 사람이면 좋겠다. 그러다 잡코리아 어플을 켰다. 채용공고를 살펴보는데 내가 지원할 만한 공고도, 지원하고픈 공고도 하나도 없다. 젠장. 나의 쓸모는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쓸모 있는 사람이고 싶은 한편 아무 것도 하기 싫은 요즘이다. 어쩌란 건지 나도 모르겠다. 아, 쓸모없다. 이렇게 느끼는 날에는 정말 사라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옥상달빛의 노래 <내가 사라졌으면> 가사처럼 아무도 모르게, 세상에 없던 사람처럼. 다시 핸드폰을 덮고 천장을 멍하니 바라본다. 나는 사라지지 않을 테고 또 꾸역꾸역 내일을 살아내야 할 것이다.

잠이 들지 않는다고 내일이 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잠이 들지 않으면 그저 피곤한 내일이 올 뿐이다. 사라지고 싶다고 사라질 수 있을 정도로 인생은 만만치 않다. 나는 사라지지 않고 내일을 맞이해야만 한다. 내일. 언젠가는 이 단어에 희망찬 마음이 들었으면 좋겠다. 내일. 사라지지 않는 나. 내가 대면해야만 하는 현실이다. 그런 마음으로 나는 부끄러운 글을 또 쓰고 이만 오늘을 마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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