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18 - 여섯 개의 방

by 백홍시

침대에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 문득, 내가 거쳐 온 방들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대학 시절 잠깐, 그리고 졸업 후에 1년 정도 자취를 하다가 3년 전에 정식(?)으로 독립했다. 그리고 원룸을 거쳐 지금은 거실 하나 방 하나 있는 투룸에 살고 있다. 딴소리지만 방이 2개가 아닌데 왜 투룸이라 하는지 모르겠다. 그럼 진짜 방이 2개인 방은 뭐지?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거쳐온 방들은 정말 ‘방’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나름의 매력이 있었다. 자취방 구하는 분들께 소소하게 참고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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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방은 대학 1학년 2학기 때 살았던 방이다. 평수는 모르겠지만 아주 작은 원룸이었다. 방이 좁다 보니 높은 책상이 아닌 좌식 책상을 배치했고, 행거로 옷장을 대신했다. 그리고 가운데에 이부자리를 깔면 남은 공간이 없었다. 가끔은 이부자리 정리하는 게 귀찮아서 그냥 냉장고 앞에 대충 앉아서 바닥에 반찬을 깔아놓고 밥을 먹기도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베란다가 있어서 세탁하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는 것이다. 원룸 살 때는 빨래 널 공간이 있으면 그나마 숨통이 트인다. 첫 자취라서 뭣도 모르고 집을 방치한 채로 그냥 살았던 것 같다. 가위에 눌리는 듯한 경험을 하기도 하고, 혼자 레몬소주를 진탕 마시다 훅 가기도 하고... 여러 가지 기억이 있는 방이다.

깨달음 – 빨래 널 공간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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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방은 2학년 1학기 때 살았던 방이다. 첫 번째 방보다는 넓었지만 학교와는 멀었다. 그래서 자체 통학버스가 있었다. 주변의 몇몇 원룸에 사는 학생들이 모여 함께 등교했다. 학교 주변 원룸들은 거의 베란다가 있었던 것 같다. 관광객 숙소였기 때문이다. 이름도 거의 '콘도'였다. 아무튼 이렇게 원룸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원룸촌에서 베란다가 있는 곳은 조심해야 한다. 건물 사이가 가깝다 보니 방 내부가 너무 잘 보인다. 특히 밤에는 꼭 블라인드를 치고 생활해야 한다. 나도 이상한 포즈로 운동을 하다가 친구의 친구가 다 보인다며 알려준 적이 있다. 이곳에는 방에 세탁기가 없고 공용 세탁기를 사용해야 했다. 1층과 4층 두 개가 있었는데, 공용으로 쓰다 보니 위생상태도 그렇고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방도 넓고 같은 층에 친구들도 있어서 종종 놀러 다니면서 재밌게 지냈던 방이다.

깨달음 – 원룸촌에서는 사생활 보호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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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방은 졸업 후 동생과 함께 살았던 집이다. 이곳은 방이 2칸 있는 '집'이었다. 큰 방은 꽤 넓은 편이어서 책상, 침대, 화장대 등이 모두 들어가고도 남았다. 작은 방은 책상을 넣으면 끝이어서 나의 작업실로 사용했다. 화장실에서는 샤워기를 처음 틀 때만 따뜻한 물이 나오고 몇 초 후에 찬물이 나오곤 했다. 그래도 주인한테 말도 안 하고 그냥 적응하면서 잘 살았던 것 같다. 이 집에서도 청소는 잘 안 해서 더럽게 살긴 했지만 좋은 기억이 많다. 동생과 같이 야간 산책도 다니고, 서울로 놀러도 다니고, 1년 여 간 같이 살면서 싸우지도 않고 재밌게 지냈다. 하지만 1층이어서 무섭기도 했다. 한 번은 어느 술 취한 아저씨가 문을 열려고 한 적도 있다. 1층은 여러 모로 위험하다.

깨달음 – 1층은 어쨌거나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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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방은 정식으로 독립한 후 처음으로 완전 내 돈으로 구한 방이다. 몇 군데 보지도 않고 금방 계약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체크 못한 점이 많았다. 가장 큰 것은 채광이었다. 방 쪽에 창문이 없고 주방 쪽에만 있는데 그마저도 건물에 가려서 채광이 정말 안 좋았다. 그리고 또 중요한 에어컨! 에어컨 아래에 벽지를 덧댄 자국이 있었는데 그냥 뭐 찢어졌나 보다 하고 간과했다. 알고 보니 에어컨만 틀면 아래에서 물이 줄줄 새서 벽지에 자국이 남았던 것이다. A/S 기사님도 답이 없다고 하시고 해서 그냥 틀고 살았지만 벽에 물이 줄줄 흐른 자국을 보는 것이 늘 찝찝했다. 그리고 현관이 좁다 보니 쓰레기를 방안에 모았다 버려야 해서 불편했다. TV를 볼 때도 계속 쓰레기가 보여서 거슬렸다. 소소한 부분들을 체크하지 못했던 탓에 조금조금씩 불편한 점이 많았지만, 독립 첫 해를 같이 했기 때문에 좋은 기억도 많은 집이다.

깨달음 – 채광을 무시 말자. 작은 무언가도 무시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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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방. 북유럽 여행 후 구한 집이다. 원룸이라는 것이 사실 보다 보면 다 거기서 거기라 대충 구했다. 단 하나, 방 쪽에 꼭 창문이 있어야 했다. 그렇게 구한 집이라 창문이 있긴 있었는데, 북향집이었다. 빛도 그다지 안 들어오고 겨울에 굉장히 추웠다. 벽에서 냉기가 올라오는 듯이 추위가 집안에 가득했는데, 보일러를 켜도 그 냉기는 쉽게 가시질 않았다. 보일러를 켜도 컴퓨터 앞에 앉아 있노라면 발끝이 시려서, 수면양말에 두꺼운 니트 양말까지 껴 신어야 했다. 그리고 수납공간이 상당히 없었다. 원룸에서 수납이란 정말 중요한데 그걸 놓친 것이다. 안 그래도 엉망인 집이 더욱 엉망이 되었다. 이 집을 생각하면 어질러져 있는 모습밖에 생각이 나질 않는다.

깨달음 – 남향, 북향... 잘 모르지만 일단 북향집은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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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방은 지금 사는 집이다. 거실이 생겼다! 다용도실도 있다! 한동안 원룸 월세살이를 못 벗어날 줄 알았는데, 전세 대출의 도움으로 이런 집을 구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집을 꾸며 보았다. 그럴싸한 커튼도 설치해 보고, 전동드릴로 가구를 몇 개나 조립했는지 모른다. 이불도 새것으로 전부 샀다. 처음으로 거실이 생기다 보니 소파도 사고, 카펫도 샀다. 그 결과 친구들이 올 때마다 예쁘다고 하는 집이 완성되었다. 꾸미느라고 할부했던 돈을 아직도 갚고 있다. 벌써 이 집에서 산지도 3개월이 지났다. 왠지 아직은 어색해서 내 집 같지 않은 집이지만, 얼른 친해지고 편해졌으면 좋겠다.


글을 쓰면서 살았던 집을 떠올리니 그 집에서 자주 듣던 노래나 특유의 공기 같은 것이 생각났다. 집은 매일을 나와 함께 하는 곳이기 때문에 많은 것들이 감각으로 기억된다. 지금 사는 집은 어떤 감각으로 기억될까. 부디 좋은 기억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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