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43 - 빨래

by 백홍시

보통의 직장인들이 그러하듯, 나 또한 빨래는 주말에 몰아서 하는 편이다.(나만 그렇다면 죄송.) 금요일 밤, 자기 전에 가장 급한 빨래들을 미리 예약 맞춰 놓는다. 대체로 수건이다. 그럼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수건을 널고 그다음으로 급한 빨래를 한다. 대체로 회사 유니폼과 속옷이다. 민감한 소재들이라 울샴푸에 섬세 코스를 맞춰 둔다. 여기까지 돌리면 한 템포 쉬어야 한다. 빨래 널 곳이 없기 때문이다.


토요일 하루 동안 위의 빨래들을 말리고 난 후에는 양말과 상의 등을 세탁한다. 가장 싫어하는 시간이다. 양말은 빨래망에 넣는 것도 귀찮고 너는 것도 귀찮고 걷는 것도 귀찮기 때문이다. 양말을 널 때마다 일족 보행하는 생명체는 없는가에 대해 잠시 고민한다. 날이 따뜻해지면서 양말 빨래는 더욱 귀찮아졌는데, 바로 발목양말 때문이다. 겨울에 신는 목이 긴 양말들은 건조대에 그냥 널어도 되지만, 발목양말들은 꼭 하나하나 빨래집게를 집어 주어야 한다.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도 어김없이 발목양말을 빨래집게로 하나씩 집는데 문득 예전에 어느 강연에선가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집안일이 여성의 전유물이었던 시절에는 빨래가 가사 노동에서 아주 큰 비중을 차지했다는 이야기였다. 생각해 보면 예전의 빨래라는 건 온 가족의 빨랫감을 모아 낑낑대며 냇가로 들고 가서, 몽둥이로 하나하나 두드려가며 세탁하고, 물기를 머금어 더욱 무거워진 옷가지들을 다시 힘겹게 들고 집으로 돌아와 빨랫줄에 널어야만 끝나는 아주 고강도의 노동이었다. 물론 빨래가 마르면 개기도 해야 한다.


그에 비해 현대의 빨래는 가사 노동 중에서도 가장 낮은 강도의 노동에 속한다. 우리가 할 일은 빨래를 잘 분류해(사실 안 해도 된다. 나는 현대 세탁기의 성능을 믿는다.) 빨래망에 넣거나, 적절한 세제와 코스를 선택하고 동작 버튼을 누르는 것밖에 없다. 물론 빨래를 널고 개는 것은 좀 더 노동이긴 하지만, 길어야 5분 안에 끝나는 단순한 노동일뿐 아니라 최근에는 건조기도 보편화되지 않았나. 그러다 보니 빨래의 노동 강도는 집안일 중에서도 '쓰레기 내다 버리기'급으로 아주 낮아진 것 같다.


빨래나 설거지 같은 '세척하는' 형태의 집안일은 매우 귀찮긴 하지만 다른 집안일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청소나 쓰레기 버리기는 잠시 안 해도 뭐, 좀 더러운 공간에서 살면 된다.(내가 좀 더럽다. 죄송하다.) 하지만 설거지나 빨래는 안 하면 당장에 입고 먹는 것에 위협이 된다. 하기 싫다면 방법은 계속해서 외식을 하고 새 옷을 사는 것뿐이다. 웬만큼 부유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매일매일 새 옷을 사 입기는 힘들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귀찮아도 일주일에 두세 번은 빨래를 돌리고 매일 설거지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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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빨래를 하는 행위는 나에게 어떤 감정을 일깨워 준다. 내가 스스로에게 '최소한의 돌봄'을 행하고 있다는 만족감 같은 것. 이것은 매일 샤워를 하는 행동이나, 비타민을 챙겨 먹는 행동이 주는 감정과 일맥상통한다. 어쩌면 옷가지들이 깨끗해지는 동안에 내 마음도 조금 깨끗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관리해야 할 것은 우리의 육체나,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 뿐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잘 관리해야 할 것은 우리의 마음일지 모른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빨래를 하는 것처럼,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시간을 내어 마음을 보살피는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이 없다. 현대인들은 너무 바쁘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빨래가 자동화된 것처럼 마음 빨래도 자동화된다면 얼마나 좋을까만은, 귀찮게도 마음 빨래는 여전히 손수 해야 한다. 머리에 이고 지고 냇가로 가져가 몽둥이로 하나하나 꺼내 보며 더러움을 없애고 헹구어야 한다. 물론 비슷한 효과를 주는 '인스턴트 빨래법'도 있다. 맛있는 것을 먹는 일이나 재밌는 영화를 보는 일 등이다. 이 빨래법들은 잠시간 마음의 더러움을 잊게 해주기는 하지만, 어찌 보면 응급 처치에 불과하다. 흰 옷에 김치 국물이 튀었을 때 급하게 세면대로 달려가 물을 틀고 비벼대는 것처럼. 아예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결국 우리는 빨래를 하던지 흰 티를 버리던지 해야 한다.


이쯤 생각하니 이제 발목 양말을 거의 다 널었다. 대체 왜 널어도 널어도 계속 나오는 건지. 나는 지네인가? 갑자기 생각하니 발목 양말이라는 것도 참 희한하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지 않은가. '나는 양말을 신었지만 안 신은 척할 거예요.' 시치미꾼 같으니. 양말계의 새침데기다. 역시 진실하지 못한 것들은 이렇게나 뒤처리가 귀찮다. 사람은 늘 솔직하게 살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일은 목이 긴 빨간 양말을 신어볼까.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동안에 드디어 발목 양말까지 모든 양말들이 건조대에 안착했다. 뿌듯하다.


이제 내가 할 일은 기다리는 것뿐이다. 미세먼지가 섞이지 않은 쾌청한 바람이 불어 주기를. 빨래가 마르는 동안에는 부디 비가 오지 않기를. 낮 동안에는 따스한 봄 햇살들이 다용도실로 내려와 주기를. 내 마음에도 그래 주면 좋고.


아까 했던 김치 국물 얘기 말인데, 김치 국물이 튀었을 때 어떻게 없애는 줄 아는가? 나도 어디서 들은 건데, 방법은 생각보다 아주 간단하다고 한다. 그저 볕이 잘 드는 곳에 하루 정도 널어놓기만 하면 된다고. 참 신기하지 않은가. 어쩌면 우리 마음 빨래도 그러할지 모른다. 햇빛을 가득 받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주 충만해지기도 하니까. 월요일엔 햇빛 냄새 가득 나는 보송한 마음으로 출근할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의 빨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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