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문

잡문 74 - 언젠가 우리

by 백홍시

어떤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재밌는 복장을 한 남자가 장례식에서 오열을 하는 사진이었다.
자신의 장례식을 재밌게 만들어달라는 친구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슬픈 와중에도 친구의 유언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감동적이었다.

장례식은 내 이름이 붙은 행사 중에 유일하게 내가 참석하지 못하는 행사.
내가 주인공인데 참석을 못 한다니 어쩐지 찝찝하다.
사실 나는 내가 죽어도 장례를 치르지 않으면 좋겠지만, 그건 남은 이들의 몫이겠지.
나의 장례식을 상상해 본다.
나도 주변인들에게 미리 메시지를 남겨 볼까.
나는 데는 순서 있어도 가는 데는 순서가 없는 법이니.





메시지:
내 죽음이 당신을 슬프게 한다면, 나를 영원히 기억하려 하진 말아 주세요.
슬프면 슬퍼하다가, 잊혀지면 잊혀지는 대로 두세요.
잊혀짐을 슬퍼하지는 말아 주세요.
가끔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것도 있지만, 그것 때문에 영원히 고통받을 필요는 없어요.

나는요.
아주 깨끗이 사라지고 싶어요.
누군가에게 슬픔으로 기억되는 것만큼 나를 슬프게 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내가 당신에게 슬픔이라면, 부디 기억하지 말아 주세요.
꼭 기억할 거라면, 즐거웠던 사람으로 기억해 주세요.
내가 보였던 눈물과 우울과 분노는 모두 잊어 주세요.

나도 즐거운 기억만 안고 이제 가요.
고대하던 망각의 강을 건너면 이 즐거운 기억마저도 몽땅 사라졌으면 해요.
한 순간도 가볍게 살 수는 없었지만, 떠나는 발걸음만은 가볍고 싶어요.
망각의 강 저편에서 만나요.
서로 모른 채 지나치겠지만 어쩌면 눈인사는 할지도 모르죠.


걷고 또 걸어.
그렇게 살다 보면
언젠가 우리 사라질 거야.

스위트피 <북극곰> 중에서



노래 한 소절만 남기고 저는 이만.

남은 시간도 많이, 아주 많이 즐거운 날들이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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