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 75 - 경계

by 백홍시

외로운 건 싫지만 너무 많은 관심은 부담스러워요.
호감은 좋은데 급히 다가오진 말아줘요.
가까워지는 건 괜찮은데 거기까지만요.
"뭐가 이리 까다롭고 제멋대로야?"
짜증 나서 가버리겠다면 잡진 못하겠지만 다만 조금 슬프겠지요.

'역시 난 혼자야.'
다 내쳐놓고 엉뚱한 피해의식에 잠겨있는 사춘기 소녀는 아니니 걱정 마요.
나는 친구가 필요하지만 또 필요 없기 때문이에요.
나의 친구가 되어달라기엔 너무 염치없기 때문이에요.
감히 친구가 되자고 손을 내밀기엔 내가 곧 숨어버릴 것이기 때문에.
그러면 기껏 손을 잡아준 당신이 당황하지 않을까 염려되기에.


어쩌겠어요.
내가 늘 가벼움에 대한 찬양을 하는 것은 나 자신이 무겁디 무거운 사람이기 때문인 것을요.
한없이 무겁고 땅끝까지 진지해 빠진 사람이기 때문인 것을요.
나의 무거움을 들켜버릴까 두려워 꽁무니를 빼는 것을.
나의 무거움이 당신을 짓눌러 옥죌까 내가 먼저 숨는 것을.
어쩌겠어요.
내가 이런 사람인 것을.

그러니 나의 친구가 되어주지 않아도 좋아요.
가까이 오지 않아도 좋아요.
그냥 그대로 있어 주세요.
나는 이대로도 좋아요.

이런 나를 알아채지만 말아 주세요.

도망가지만 말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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