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재작년에 한식 공모전에 내려고 쓰다가 결국 미완으로 끝난 것으로 기억하는 글입니다.
여전히 미완성이지만 쓰인 부분까지는 꽤나 읽을만한 것 같아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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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라. 학교 안 가나?"
엄마 목소리에 눈을 번쩍.
지금 몇 시지? 헉. 7시가 넘었다!
"아씨 늦었다 아이가!"
늦잠은 내가 자 놓고 괜히 엄마한테 심통이다.
대충 머리를 감고 거실 입구 바닥에 철퍼덕.
머리를 말리고 있으면 엄마가 아침식사를 가져다준다.
아침식사라는 것은 김에 싼 밥이다.
엄마는 새벽같이 일어나 쌀통의 레버를 몇 번 돌려 쌀 바가지에 쌀을 받고, 눈대중으로 물을 받아 밥을 안친다.
밥이 되는 동안에 다른 식구들의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국을 끓이고 반찬을 조물조물.
내가 잠에서 깰 무렵이면 이미 부엌에는 따뜻하고 맛있는 공기가 흐른다.
하지만 매일같이 늦잠을 자는 큰딸내미에게 그것은 사치일 뿐.
나에게 주어지는 것은 김에 싼 밥뿐이다.
따끈한 밥에 기름과 소금을 적당히 바른 김을 두른 그것을 손으로 집어 입에 넣고 나면, 손에는 초록의 기름이 묻어났다.
조미김은 때로는 들기름, 때로는 참기름을 발라 구운 것으로 몇 주마다 바뀐다.
마트에서 어떤 것을 할인하느냐가 엄마가 김을 선택하는 기준이 된다.
나는 그 둘의 맛을 아직도 구분하지 못한다.
졸린 눈을 하고 소중한 아침식사를 입안에서 우물거리면서, 들기름과 참기름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들은 원래 초록색인가 따위의 생각에 빠져들곤 했다.
우리 엄마는 주부 경력이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밥에 일관성이 없다.
어떤 날은 질고 어떤 날은 고슬고슬하고, 어떤 날은 딱 알맞게 찰기가 돈다.
그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입에 넣기 전까지는 고슬밥 일지 진밥 일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김에 싼 밥을 입에 넣으면서 "밥이 질다." "오늘은 밥알이 날아다니네."와 같은, 주둥이 맞아도 시원찮을 소리를 잘도 해댔다.
밥을 먹는 동안에는 엄마가 내 머리를 말려 주었다.
열일곱이나 되는 딸내미의 머리를 말려주는 엄마.
그리고 엄마가 준 아침식사를 툴툴대며 먹는 정신연령 예닐곱 살 딸내미.
그들이 그리는 아침 풍경은 얼마나 철없고 따스한가.
하지만 내가 늘 받아먹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나에게는 열두 살이나 어린 남동생들이 있었다.
오타가 아니다. 남동생'들'이다. 둘은 쌍둥이거든.
나는 정말로 그들을 '업어' 키웠다. 생색내고 있는 것 맞다.
중학교 시절, 그러니까 동생들이 아직 이족보행조차 못하던 그때에는, 하교 후에 꼭 동생들을 업고서 밖을 나서야 했다.
우는 아이는 둘이었고, 엄마는 한 명뿐이었고, 아이들은 무슨 병인지 등에 업고 밖을 걷지 않으면 통 잠에 들지를 않았기 때문이었다.
동생을 등에 업고 대문을 나서면 아직 하교 중인 친구들이 지나가곤 했다.
그럼 나는 얼른 고개를 숨겨 모른 척해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래도 몇몇은 끈질기게 아는 척을 해댔었지.
그렇게 키운 동생들이 드디어 걷고 뛰기 시작하던 시절.
그러니까, 이족보행 못 하던 때가 차라리 나았다고 생각하던 그 시절.
그때 내가 동생들에게 가장 많이 해준 것이 바로 김에 싼 밥이었다.
처음에는 나도 엄마처럼 조미김 한 장에 밥을 넣고 돌돌 마는 식으로 만들었지만, 나중에는 그마저도 귀찮아서 조리법(?)을 바꿨다.
일단 사이즈가 큰 김을 준비한다.
거기에 밥을 골고루 펴 바른다.
그리고 김을 한 장 더 포개면 완성.
도도도 뛰어다니던 아이들이 식탁으로 오면 한입 사이즈로 자른 김밥을 입에 넣어준다.
그럼 오물오물하고 또 도도도.
단독주택에 살던 우리는, 봄이면 마당 피크닉을 나가기도 했다.
피크닉 메뉴로도 김과 밥으로 된 도시락이 자주 등장했다.
끽해야 중학생이었던 누나들이 도시락을 만들어봐야 무얼 만들었겠는가.
돗자리에 앉아 세상 단출한 도시락을 나눠 먹으며 피크닉 기분이나 내곤 했지.
요즘도 나는 김을 자주 먹는다. 집에 김이 없을 때가 잘 없다.
반찬이 없거나 바쁠 땐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반찬이 되어 주기도 하고, 배는 부르고 맥주는 고플 때 맥주 안주가 되어 주기도 한다.
그러니까 김은 내가 가장 바쁠 때, 내 냉장고가 가장 가난할 때, 어쩐지 술이 고픈 어느 날에 친구가 되어 준다.
어린 시절 바쁜 아침 엄마가 입에 넣어주던 김에 싼 밥, 그리고 내가 동생들 입에 넣어주었던 비슷하지만 묘하게 다른 그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