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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프 Nov 17. 2021

내가 가고 싶다, 농촌유학.

동생네가 농촌유학 중입니다. 

지난주 주말, 동생이 있는 전남 화순에 갔다. 10월 초에 갔었는데 한 달 만에 또 다녀왔다. 남편은 내가 왜 자꾸 내려가는지 궁금하다. 동생의 겨울옷을 가져다주는 거라 둘러댔지만 사실 내 속셈은 따로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인 딸이 농촌 유학에 관심을 가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다녀온 거다. 조카들은 지금 화순에서 농촌 유학 중이다. 자연에서 뛰어노는 조카들을 보니 다음 학기에 딸의 농촌 유학을 신청하고 싶어졌다. 시골 학교에서 한 학기를 보내는 건 아이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 솔직히 말하자면, 사실은 내가 가고 싶다. 산과 들이 펼쳐진 곳에서 내가 살고 싶은 거다. 내 돈 들여 제주도 한 달 살기라도 하고 싶은데, 교육청에서 학교도 연결해주고 살 곳도 마련해 주니(지원금이 나온다) 이렇게 고마울 때가 없다. 그러나 정작 농촌 유학을 할 당사자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운동장에서 노는 조카들. 

농촌 유학이란 서울시 교육청과 전남 교육청이 업무협약을 맺고 올 초부터 진행한 프로그램이다. 도시에 살던 아이들이 한 학기(6개월) 동안 시골 학교에 다니며 풍요로운 자연환경 속에서 생태 감수성을 기르도록 지원해준다. 가족이 함께 내려와 생활하는 가족 체류형과 아이만 내려와 생활하는 홈스테이형이 있다. 동생 가족은 가족 체류형을 신청해 온 가족이 화순에서 지내고 있다. 폐교를 리모델링 한 숙소에서 사는데 그곳에서 다섯 가정이 함께 생활한다. 1호부터 5호까지 다섯 개의 방이 있다. 폐교라고 해서 뭔가 으스스한 이미지를 떠올렸는데 직접 가보니 주방과 화장실이 안에 다 있도록 잘 리모델링되어 살기에 불편함이 없다. 게다가 집 문을 열면 바로 앞이 운동장이니 아이들이 놀기에 이렇게 적합한 곳이 또 있을까 싶다.    

  

10월 초, 처음 화순 갔을 때. 내가 운동장에서 놀고 있으니 아이들이 와서 묻는다.

“안녕하세요, 그런데 누구세요?”

스스럼없이 나에게 인사하고 우리 딸과도 금세 친해진다. 우르르 몰려다니며 운동장 수돗가에서 대야에 물을 받아 물놀이를 한다. 중앙 현관에 있는 큰 탁자에 앉아있는데 왔다 갔다 하는 분들이 다 인사를 하신다. 

“안녕하세요, 아. 2호네 언니구나. 어머, 똑같이 생겼어요.”

자연스럽게 탁자에 앉아 이야기하다 일이 있으면 자리를 뜨고 또 다른 사람이 합류한다.      

승마 수업을 받고 있는 조카. 

코로나 시대. 서울에 사는 우리 딸은 일주일에 세 번 등교한다. 단체 활동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고 쉬는 시간도 수업 시간도 조금씩 줄었다. 등교하는 날도 마지막 수업은 집에 와서 온라인으로 듣는다. 반면 조카는 매일 등교해 수업 시간을 꽉꽉 채우고 체험학습, 학예회 등 다양한 행사를 한다. 교육과정 외에도 바이올린, 수영, 승마, 우쿨렐레, 인라인스케이트 등 특별활동도 많다. “언니는 비싼 돈 내고 애 키즈 수영장 보내는데 우리 애는 여기서 공짜로 수영 배우지!”라고 말하는 동생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울린다. 시골 학교라 지원이 많다고 했다. 동생과 통화할 때마다 내 귀는 팔랑거린다.

      

거기서 만난 엄마들에게 물으니 대부분 농촌 유학에 대해 만족한다. 서울에 있을 때 유튜브를 보고 게임만 하던 아이가 이곳에선 밖에서 뛰논다며 좋아하셨다. ‘그렇단 말이지. 그렇다면, 나도 한 번 시도해 봐?’      

개구리를 잡고 노는 조카 

지난번에는 근처의 관광지를 둘러보는데 시간을 많이 할애했는데 이번엔 주말 내내 동생 숙소에만 있었다. 이번엔 아이들보다 동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돌밥(‘돌아서면 밥 차리기’라는 코로나 시대 신조어)도 이런 돌밥이 없다. 일어나자마자 아침을 차리고 두 남자 조카들을 먹이고 씻기고 입힌다. 중간에 짬이 나면 빨래를 돌리고 아이들이 놀러 나가자마자 간식과 점심 준비를 동시에 한다. 중간중간 잠깐의 산책 시간과 노는 아이를 지켜보는 시간을 제외하면 동생은 서울에서나 시골에서나 돌밥을 면치 못한다. 걸어가서 먹을만한 음식점도 없고 당연히 배달되는 곳도 없다. 제일 가까운 편의점과의 거리가 20km다. 모든 음식은 동생을 거쳐야만 나온다. 다행히 좋은 이웃들을 만나 번갈아 아이를 봐주고 반찬도 서로 나누어 먹는다.

      

“언니, 정말 농촌 유학 신청하려고?” 동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내 얼굴에 고민하는 빛이 스쳤는지 동생은 “괜찮겠어?” 하며 웃는다. 


시골에선 원재료를 다듬어 먹을 것을 만들어 먹는 게 당연하다. 교통이 불편하니 자기 차가 있어야 하고 운전을 할 수 있어야 한다(난 장롱면허다). 자연이 바로 옆에 있어 좋지만 자연스럽게 벌레도 많다. 그곳에 가면 지금 프리랜서로 하는 일도 할 수 없는데 과연 괜찮을까. 

     

이제 와 보니 저번에 왔을 때 농촌 유학에 혹했던 건 아이가 이곳 아이들과 잘 놀기도 했지만, 풍경도 좋고 학교 커리큘럼도 좋았지만, 더 큰 이유는 이웃들이 좋아서였던 것 같다. 동생의 옆집에 사는 마음씨 좋은 언니와 유쾌한 옆 마을 동생과 함께 수다를 떨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들과 이야기하고 그 집의 밝은 아이들과 우리 딸이 어울려 노는 시간이 참 좋았다. 이번엔 다들 스케줄이 있어 말할 시간이 없었다.     


그들이 없으니 시골 생활이 단조로워도 그렇게 단조로울 수가 없다. 해가 지면 깜깜해서 나갈 수 없다. 밥을 해야 하고 밥을 치워야 하고 아이들을 돌봐야 하고, 집도 치워야 하고. 그런 일을 즐겁게 유머로 승화시키며 말할 사람들이 빠지니 이번 여행이 꼭 물감에 물을 잔뜩 풀어 그린 흐린 수채화 같다. 알록달록 선명한 유화를 기대한 나는 아쉽기만 하다. 

     

그럼에도 아직 농촌 유학을 포기하지 못했다. 자연의 일부인 사람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커서일까. 아이의 삶(사실은 나의 삶)에 그런 감수성을 선물해 주고 싶어서일까. 어쩌면 되도록 많은 걸 경험하고 싶어 하는 내 성격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대중교통이 좀 편리한 곳이 있을지도 몰라, 마트가 좀 가까운 곳이 있을지도 몰라. 생각하며 검색을 시작한다. 내가 먼저 방긋 웃고 인사를 건네는 친절한 이웃이 되자고 다짐한다. 

     

아이는 신나게 놀고 와서도 농촌 유학을 가고 싶지 않다고 한다. 아이는 내 속내를 꿰뚫고 있는 것 같다. “엄마, 날 이용하려고 하지 마.”라고 한 걸 보면. 난 한발 물러나 “거기가 눈이 오면 또 그렇게 좋대. 눈이 오면 또 가보자.”라고 말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아직 기회가 더 남았다.      


*전남 농산어촌 유학 홈페이지(www.jne.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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