덱스라는 방송인이 흰 도화지에 사람을 그리고, 성별이 무엇인지, 나이는 몇이고, 성격은 어떻고 앞으로 그 사람이 행복해질까 불행해질까에 대해 대답하는 심리검사를 하는 영상을 흥미롭게 보았다.
나도 동일한 검사를 받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2015년도 여름 나는 내게 주어진 하얀 16절지 위에 아무렇게나 대충 어린 여자아이를 그리고, 그 아이가 6살이라고 말했다. 시간이 흐르고 나는 그 아이가 나의 자화상이고, 내가 말한 그 아이의 나이가 진짜 내 나이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난 세상에 어우러져 보려고 무진장 애를 쓰고 있었다. 오래 준비해 자격증을 따고 관련 업계에서 어떻게든 자리를 잡으려고 갖은 고생을 했지만, 결국 세상에서 나는 처절하게 미끄러지고 내쳐졌다. 꼭 그래서만은 아니겠지만 나는 정신적으로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나에게 2015년은 너무 아프고 슬펐던, 그래서, 아무리 해도 잊히지 않는 뼈아픈 숫자이다.
당연한 일이다. 고작 6살이었다. 내가 함께 해야하는 동료들과 상대해야 하는 사람들은 모두 세상 단맛 쓴맛 다 보고 자신의 패와 남의 패를 함께 들여다 볼 수 있는 경험을 쌓은 진짜 나이배기 어른들이었다. 그들 사이에서 철없는 꼬마아이 하나가 우왕좌왕하니 거치적거리기 밖에 더 했겠는가? 처음부터 게임이 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2015년의 내가 슬프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그해는 나의 전환점이었다. 나는 그때 다시 부활했다. 지독하게 아팠다. 너무 아팠다. 그러나 그 후 난 갑자기 나아졌다. 선물처럼 나의 감정기복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특별히 따로 먹은 것도 없고, 생활 습관이 바뀐 것도 없으며, 정말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갑자기 안정되었다. 기적처럼 말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하고 살 수는 없었다. 적응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고 두려웠지만 다시 내쳐지더라도 세상에 머리를 디밀어보자는 결론을 내리고 콜센터 상담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사람들 속에 발 한 짝 딱 걸치고 버티고 섰다. 잘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 했지만 그래도 월급을 받고, 사고 싶은 걸 사고, 먹고 싶은 걸 먹고, 하고 싶은 걸 했다.
오래도록 나는 미래에 대해 꿈꾸지 못했다. 어떻게 살고 싶다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사는 것은 나하고는 관련이 없는 일인 것 같았다. 나에게 주어진 한계를 잊어본 적이 없다. 외면하고 없는 일로 치부하기에는 순간순간 부딪히고 다시 새삼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의식적으로 좌절하고 싶지 않은 바램 때문이기도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쯤은 나도 아는 나이가 되었다. 아니 세상이 알려주었다.
그래도 무언가를 했다. 끊임없이 했다. 자본도 없지만 재테크책을 읽고 공부를 해보기도 했고, 100일동안 공부를 하면 등록비를 돌려주는 영어공부어플을 다운받아 열심히 해보기도 했다. 물론 나는 둘 다 초보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둘 다 내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깨달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그때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다른 것을 알지 못했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예가 적절치는 않지만 양들의 침묵에서 안소니 홉킨스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보는 것을 부러워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일, 그리고 해야 할 일을 찾아가는 과정은 끊임없이 경험하는 과정을 통해 알게 된다. 요즘 아이들의 꿈이 다양해지는 것은 보고 듣는 것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 수많은 것들 중에서 흥미가 생기고, 관심이 동하는 무언가를 실제로 해보면 그게 무엇이든 지루하기도 하고 심드렁해지는 구간이 나온다. 그래도 그만두지 않고 시간을 쓰고 돈을 쏟아붓는 그 무엇인가. 그 무엇인가가 꿈이 되고, 소망이 된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경험이 다양해짐에 따라 나는 계속 변화했다. 재테크를 공부할 때는 막연히 노후가 불안했고, 영어공부를 하고 싶었을 때는 영어 원서를 보고, 유명 해외 유튜버의 영상을 막힘없이 보고 싶었다. 견문을 넓히고 싶었던 것이다. 돈버는 블로그를 하고 싶어서 글공부를 시작했지만 정작 블로그는 하지 않고 이렇게 브런치에 정기적으로 글을 올린다.
글을 쓰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글이란 것이 내 안에 고인 나를 퍼올리는 작업이다보니 글을 쓰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그리고 내가 지금 인생의 어느 만큼에 와 있는 지에 대해 깨닫게 되는 것이 나에게 주는 글쓰기의 가장 큰 순기능이다.
1월 1일부터 지금까지 만 3개월 브런치에 글을 올렸다. 그리고 이제 곰곰이 내 글에 대해 내 나름의 후기를 쓰자면 내 관점이라는 것이 나에 대해서는 한없이 주관적이면서 남에 대해서는 칼같이 객관적이라는 사실이다. 내로남불이라는 것과는 조금 다르게 그냥 이건 관점이다. 아니 같은 말인 것 같다.
이런 태도로 나는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에는 야박스럽고, 또 반대로 다른 사람에게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사랑해달라고 무언중에 주장하는 어린아이 같은 요구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심리상담을 지금껏 이어오면서 나는 늘 물었다. 친구가 나에게 진상을 만났다고 하소연을 하는데 왜 나는 그 진상이 왜 그랬는지를 이해하고 있을까요? 드라마에서 나오는 찐친은 환타지라고 한다. 그러나 또한 사람은 관계를 떠나서는 제대로 설 수 없다고도 한다. 과연 나는 친구였던 걸까?
나는 오래도록 사람들에 대해 무관심하려 노력해 왔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이해받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의 탓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짐짓 나는 다른 사람과 결이 다르다고 생각했고, 그 다름은 아무도 알아주지는 않지만 우월함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 탓이라고 생각했지만 뭐가 내 탓인지 그걸 몰랐던 것이다.
살아오면서 가끔 나에게 물었다. 너 지금 몇 살이야? 8살이었다가, 10살이었다가, 13살이었다가... 조금씩 조금씩 나이를 먹어 지금은 18살이 되었다. 그래도 18살이나 되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정체하지 않고 계속 성장해 온 것이다.
나름 버겁고 힘들게 인생을 살아오면서 때때로 나도 깨달음도 얻고, 삶에 대해 그리고 사람에 대해 기준도 세웠다. 그럴 때마다 갑자기 세상이 달라질 것만 같고, 인생이 업그레이드 될 것 같은 착각에 빠질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야 간신히 18살이 되어 제대로 된 나의 상을 정립하고 인생의 목표와 목적을 정해보려 고군분투하는 내가 있을 뿐이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은 글공부를 했던 일이다. 그리고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보아주는 사람이 많지 않고 댓글도 없지만 공개적으로 글을 쓴다는 사실만으로 내가 누군가에게 나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사실도, 그리고 응답이 없음이 또한 응답이라는 사실도 의식하면서 나를 다듬어 가는 작업을 계속 하게 되기 때문이다.
10년 후 내 모습이 어떨지 예상할 수는 없다. 다만 나는 안다. 나는 계속 나이를 먹어갈 것이다. 19, 20, 23,.. 혹시 알까? 10년 뒤 내 내면의 나이가 내 세상의 나이와 같아질 수 있을지 말이다. 살아보면 알 일이다.
덧붙이자면 나는 그 6살짜리 아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얘는 행복하게 잘 살 거예요. 그냥 내버려 둬도 진짜 잘 살 거예요. 아무 걱정 없어요.”
그리고 9년이 흘렀다. 나는 행복한가? 아니면 행복해질까? 적어도 나는 불행하지는 않다. 그럼 행복한가? 아 그건 너무 단순한... 뭐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자.
당신도 한 번 해보지 않겠는가? 마음 속에 도화지를 준비해보라. 그리고 그리고 싶은 사람을 그려라. 여자인가? 남자인가? 나이는 몇인가? 성격은 어떠할까? 그리고 그 사람의 미래는 행복할까? 불행할까? 행복하다면 믿어보시라. 이 검사는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그러나 아니라면 지워버려라. 인생이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만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당신은 분명 행복해 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