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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loria Lee Oct 31. 2023

미오의 꿈

미오야~ 츄르 먹자!


오늘도 작은 아기고양이 미오는 언니 집사가 주는 츄르를 먹으러 쪼르르 달려나갔다.

챱챱챱~

'오늘은 연어맛 츄르구나'

정신없이 츄르를 음미하던 미오는 자신을 바라보는 언니 집사의 눈길을 의식하고 그녀에게 눈을 찡긋해 보였다.

이 집에 온지도 벌써 한달이 지났다.

그전에는..가만.. 엄마 얼굴이 어떻게 생겼었지?

너무 그리운 엄마인데 점점 엄마 얼굴이 기억이 나지 않고 이젠 그 얼굴이 언니 집사의 얼굴과 묘하게 섞여 있다.




6개월 전
미오는 어느 어두운 골목길에서 4마리의 다른 형제들과 함께 태어났다.

몹시 마르고 날카롭고 신경질적이었던 엄마 고양이었지만 미오를 포함한 다섯 형제에게는 너무나도 자상하고 다정했다. 항상 미오와 형제들에게 그루밍을 해주었으며 엄마 젖을 먹을때면 미오는 행복에 겨워 엄마 배에 신나게 꾹꾹이를 해댔다.

젖을 떼고 보송보송해질 무렵부터 엄마고양이는 미오와 형제들을 위해 어딘가에서 먹을 것을 가져왔다.

주로 약간 이상한 냄새가 나는 돼지고기, 소고기 짜투리, 정체를 알수 없는 빵 쪼가리 등이었지만 가끔, 아주 가끔은 엄마가 아주 맛있는 음식이 있는 곳으로 미오와 형제들을 데려가곤 했다.

그 곳에 가면 참치, 연어 냄새가 나는 고기, 말랐지만 씹으면 오도독 오도독 소리가 나는 고기맛 과자 등을 먹을 수 있었고, 아주 아주 신선한 물도 마실수 있었다!

미오와 형제들은 그걸 '소풍' 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안그래도 말랐던 엄마는 미오와 형제들이 커갈수록 점점 더 수척해져만 갔다.

좋은 음식이 아니어도 매일매일 음식을 먹으며 자라왔던 아기 고양이들과는 달리 엄마 고양이는 예쁜 새끼들을 먹이기 위해 자신이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모두 포기해야 했다.

또한 아기 고양이가 있다며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오는 저 시커먼 인간들로부터 최대한 먼 곳으로 계속 아기들을 옮겨야만 했다. 살기 위해서.

그래도 엄마고양이는 아기 고양이들과 함꼐여서 너무 행복했다.




다섯 형제중 가장 호기심이 많고 활발했던 미오는 오늘도 주변의 신기한 것들을 탐색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미오야, 멀리 가지 말고 이상한 건 절대 주워 먹지 말고, 큰 길은 절대 건너면 안 돼. 알았지?'

항상 엄마 고양이에게 듣던 당부였지만 그날따라 미오는 저 길 건너에 있는 신기한 물건이 자꾸 신경쓰였다.

'장난감인가? 색깔은 왜 저렇지? 좋은 냄새가 날까..? 엄마가 오려면 한시간은 더 있어야 하는데.. 한번 저기 가볼까?'

호기심이 많았던 미오는 약간의 망설임 끝에 인생 첫 모험을 하기로 다짐했다.

'큰 길이긴 하지만, 차는 많이 없는걸. 오늘은 한번 건너 봐야겠어!'

주변을 조심조심 살피더니 마침내 길 건너편을 향해 한발짝 발을 떼어 본다.

쌔~~앵!

발을 떼자 마자 기다렸다는 듯 저 멀리서 커다란 오토바이가 한 대 달려온다.

미오는 몸을 움찔하는듯 싶더니, 오토바이가 떠나자 마자 아주 잽싸게 길을 건너버렸다.

'역시 내 운동 신경 하나는 알아줘야 해.'

그리고 드디어 새로운 장난감으로 달려가 냄새를 맡아볼수 있었다.

'웩, 이게 뭐야! 냄새가 왜 이래? 생전 처음 맡아보는 냄새인데?'

생각보다 시시하다고 느껴졌다. 이걸 보려고 내가 길을 건넜던거야?

"와아! 귀엽다! 아기 고양이다! 엄마! 여기좀 보세요!"

"어머! 예쁜 고양이네! 얘가 우리 애기 장난감 냄새를 맡고 있네?"

"엄마! 나 이 고양이 키우고 싶어......! 너무 귀여워!"

눈이 미오처럼 동그랗고 예쁘게 생긴 사람이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미오를 들여다보았다.

미오는 조금 무서웠지만인 얼굴을 보니 나쁜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특히 눈앞의 이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크기가 작다.

 다만 조심스럽게 킁킁, 그 작은 사람의 손가락 냄새를 맡아본다.

'웩, 아까 저 물건 냄새보다 더 심하잖아. 도대체 냄새가 왜이래'

"엄마 고양이가 조금 고장난거 같아! 입을 벌리고 있어"

"하하하 너무 귀엽다! 그런데 이 고양이 엄마는 어디갔을까? 아직 아가인거 같은데.. 하악질도 하지 않고 너무 순하네!"

"그치 엄마? 이렇게 쓰다듬어도 도망가지 않아. 너무 이뻐! 우리 이 고양이 정말 키우면 안돼?"

"안돼! 길에서 돌아다니는 고양이를 집에 데려가긴 좀 그렇잖아, 이제 우리 그만 가서 손 닦자!"

엄마는 아이가 더 조를 세라 휑하니 아이를 데리고 자리를 떴다.


'사람이 저런 거였구나, 생각보다 무섭지도 않고 재미있네! 냄새는 좀 이상하지만...'

미오는 아기가 쓰다듬었던 자신의 머리에 앞발을 내밀어 한껏 그루밍을 했다.

오늘은 이만 모험을 마쳐야 겠다고 생각한 미오는 다시 왔던 길을 돌아갈 채비를 했다.

'이번에도 길을 잘 건널수 있겠지?'

미오는 다시 용기를 내어 길을 건너 형제들이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하악! 하악! 너 어디 다녀왔어!'

엄마 고양이의 표정과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엄마 고양이는 여태까지 봤던 모습 중에 가장 무서운 모습으로 미오에게 하악질을 했다.

미오는 풀이 죽어 엄마를 애처롭게 바라보았지만, 엄마는 낮선 냄새를 몯히고 돌아온 미오를 다시 받아줄 수 없었다.

마음은 너무 아팠지만, 본능이 미오를 두고 다른 곳으로 도망가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어차피 이제 슬슬 독립을 시킬 때가 됐어,  마음은 아프지만 미오는 두고 가야겠다.'

엄마고양이는 인간 냄새가 나지 않는 다른 고양이들을 하나씩 물어 미오가 찾지 못하는 곳으로 아기고양이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엄마! 이제 내 차례 아니야? 나도 물어다 줄거지?'

'미오야, 미안하지만 이제 많이 컸으니 엄마랑 떨어져서 지내는것이 좋을것 같아, 미오는 용감하고 똑똑하니 어디든 잘 살아남을수 있을거야.'

'엄마! 가지 마! 나도 갈래!'


엄마는 미오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바로 위의 언니를 물고 쏜살같이 달려가 버렸다.

미오는 엄마를 헐레벌떡 쫓아갔지만, 엄마를 따라잡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었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엄마와의 거리는 멀어졌고, 그렇게 엄마와 형제들은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그날 밤, 미오는 그렇게 혼자가 되었다.

똑, 똑, 똑, 주르르르르!!

타이밍도 참, 마침 비가 내린다.

콧잔등에 떨어지는 비를 맞으며 미오는 와앙!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아까 나를 쓰다듬던 그 아이가 못내 원망스러웠다. 왜 나를 만져가지고, 엄마랑 떨어지게 만든 걸까.

엄마가 왜 떨어져야 하는지 이유를 말하진 않았지만, 미오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앞으로 혼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미오는 너무 막막하고 슬펐다.

그동안 엄마가 미오를 계속 지켜주었는데, 그 커다란 우산이 사라져버렸다.

그런 생각도 잠시, 당장 배가 고팠던 미오는 살아남기 위해 먹을것을 직접 찾아나서야 했다.




한달 뒤.

킁킁, 킁킁

아파트 단지 내의 음식 쓰레기통 근처에서는 신기하고 맛있는 냄새도, 아주 이상한 냄새도 났다.

'저기, 아주 맛있는 냄새가 난다. 가 볼까?'

미오는 아주 고소한 냄새가 솔솔 나는 곳으로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와! 오늘은 횡재한 것 같은데?누가 이렇게 좋은 음식을 두고 갔지?'

하얀 포장지를 앞발로 열어보니, 아주 먹음직스럽게 생긴 연어 머리가 영롱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미오는 눈을 희번덕이며 연어 머리를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엄마와 헤어질 때보다 제법 몸집도 커지고 이도 새로 난 미오는 누가 봐도 너무 사랑스럽고 귀여운 고양이었다.

가끔씩 동네에서 마음씨 착한 아저씨나 예쁜 언니가 미오에게 츄르나 간식을 줄 때도 있었다.

미오는 이 아파트 단지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미오를 아는 사람들이 한두명 늘어났고, 초등학교가 끝나는 시간이 되면 미오를 보려고 아이들이 미오 곁으로 모여들기도 했다. 신기한 장난감을 가지고 와서 놀아주는 아이도 있었다.

어릴때부터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크지 않았던 미오는 사람들이 자기를 때리거나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에게 더 귀엽고 예쁜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일부러 사람들이 쓰다듬어주면 지혜로운 미오는 등과 꼬리를 바싹 세우고 다리에 몸을 비벼댔다.

'이렇게 하면 이 사람이 나에게 맛있는 걸 갖다 줄까?'

사람들은 그런 미오를 예뻐했지만, 단지 그 때뿐, 모두 시간이 지나면 집으로 돌아가기 바빴다.

해가 지고 저녁이 되면 미오는 아파트 단지 내 공원 수풀 속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이곳은 다른 곳에 비해 평화롭고 좋은것 같아. 내일도 아이들이 와서 나랑 놀아줬으면 좋겠다.'


어느날 밤이었다.

미오는 평소처럼 수풀 속에 들어가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잠을 청했다.

요새 이상하게 털도 많이 빠지는 것 같고, 수풀에 있던 푸른 잎사귀들이 예전과는 다르게 시들시들하다.

잠을 잘 때에도 부쩍 추워져서 미오는 몸을 더 단단히 웅크렸다.

그런데...

"흑..흑"

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미오는 귀를 쫑긋 세웠다. 난생 처음 듣는 소리.. 이건 무슨 소리지? 사람이 내는 소린가..?

미오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몸을 벌떡 일으켜 수풀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수풀 앞 벤치에 어떤 여자가 앉아 얼굴을 가리고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미오는 조금 무서운 생각이 들었지만, 특유의 호기심 때문에 참지 못하고 그 여자에게 다가갔다.

여자는 흐느끼고 있었다.

여자의 눈에서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져 내렸다.

'저런 행동은 처음 보는데.. 대체 뭘 하고 있는거지? .. 이상하긴 한데.. 눈에서 왜 물이 떨어지는 걸까? 그런데 왜 내 마음이 뭉클하지? 내가 뭔가 해 줘야만 할것 같아'

미오는 조심스레 다가가 여자의 옆에 웅크리고 앉아 발목을 조심스레 핥았다.

"흑흑.... 응?"

흐느끼던 여자는 갑자기 느껴진 까칠까칠한 발목의 감촉에 소스라치게 놀라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작고 귀여운 아기고양이 한 마리가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로 여자를 올려다보았다.

밤이라 그런지 눈이 더 새카맣고 커 보였다.

"안녕. 예쁜 아기 고양이네. 지금 날 위로해 주는 거니?"

어느덧 눈물을 멈춘 여자는 아기고양이를 조심스레 어루만지며 말을 걸었다.

'야옹'

미오는 그런 여자의 손길이 싫지 않았다. 조심스레 울며 여자의 손에 머리를 기댄다.

"집이 없는 거니? 곧 겨울인데...춥겠구나"

뜻하지 않게 미오의 위로를 받은 여자는 미오를 살포시 안으며 말했다.

"오늘 남자친구랑 헤어졌는데, 대신에 널 만난 걸 보니 우리는 보통 인연이 아닌가봐"

'야옹'

"그래, 우리 집으로 가자. 앞으로 네 친구가 되어 줄게. 너도 내 친구가 되어 줘"

여자는 미오를 안은 채 자리를 떴다.

이렇게 미오는 뜻하지 않게, 새로운 가족을 만나게 되었다.


'엄마, 엄마 얼굴은 생각이 안 나는데. 이 집에 들어오니 꼭 엄마 품에 있을 때 같은 아늑한 느낌이 들어. 기분이 너무 좋다'

간단한 병원 진료를 마치고 집에 들어온 미오는 언니 집사가 사준 참치 캔과 깨끗한 물을 원없이 먹고 마셨다.

언니 집사가 꾸며준 미오의 집은 너무 부드럽고 폭신했다.

미오는 그 따뜻한 집에 몸을 집어넣으며 생각했다.

'엄마와 함께 살았던 때가 첫번째, 길에서 힘들게 살았던 때가 두번째 묘생이라면

이제 세 번째 묘생, 언니 집사와 함께 여기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겠지.

설마 언니 집사는 엄마처럼 나를 버리고 가지는 않겠지..?'

그런 미오의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언니 집사는 다정한 손길로 미오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동안 힘들었지? 내가 많이 많이 예뻐해 줄게. 여기서 나랑 행복하게 지내자"

미오는 언니 집사의 부드러운 손길을 느끼며 스르륵 잠이 들었다.



5년 뒤


"와앙 미오! 나랑 놀자!"

아.. 오늘도 저 꼬마 집사가 시끄러운 목소리로 나를 깨운다. 드디어 하루가 시작인 것인가.

언니 집사는 몇년 전 아주 커다랗지만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아저씨 집사를 만났고 그 후 꼬마 집사가 태어났다.

아저씨 집사가 처음 집에 오던 날, 미오는 언니 집사보다 큰 덩치의 아저씨 집사를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좀 궁금하긴 해서, 아저씨 집사에게 슬금 슬금 다가와 냄새를 맡았다.

아저씨 집사는 덩치와는 다르게 아주 부드러운 손길로 미오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미오는 아저씨 집사와도 곧 친해지게 되었다.

언니 집사만큼은 아니지만, 간식을 주기도 하고 가끔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싱크대 뒤에 숨어 미오가 좋아하는 숨바꼭질, 까꿍 놀이도 해주는 그런 자상한 사람이었다.

큰 집으로 이사 갔을때에는 좀 힘이 들었다.

그동안 정들었던 집에서 떠났기 때문에 새로운 집에 적응을 해야 했고, 무엇보다도 이전에 살던 곳으로 다시 가고싶어 몇 주동안은 견디질 못하고 힘들어했다.

하지만 더 큰 집에 잘 적응한 미오는 이제 중후한 중년 고양이가 되어 따뜻한 햇살을 등에 받으며 넓은 거실에서 꾸벅꾸벅 졸곤 했다.

단, 가끔씩 꼬마 집사가 나타나 꼬리를 잡아 끌거나 목덜미를 쥐어 뜯을때는 조금 힘들었다.

그래도 미오는 꼬마 집사가 너무 좋았다.

꼬마집사가 잠에서 깨서 미오에게 올때면 미오는 골골 소리를 내며 꼬마집사의 오동통한 다리에 몸을 비벼댔다.


길냥이 생활을 접고 집에서만 생활한지 벌써 5년이 지났지만, 가끔 길에서 고생하던 시절을 회상할때면

이제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엄마라는 존재와 함께 그리운 마음이 들곤 한다.

하지만 미오는, 지금이 더 행복하고 좋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 때 힘들었던 것들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앞으로도 오래 오래 이 사람들과 함께 행복하고 편안한 생활을 하는 것이 미오의 소박한 꿈이다.

언니 집사는 요새 힘이 들때면 미오에게 와 배에 머리를 기대고 나지막이 말한다.

"미오! 언니랑 같이 살아줘서 고마워. 아프지 말고 오래 오래 나랑 있어줘야 돼! 알았지?"

미오는 언니 집사의 숨소리를 느끼며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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