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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나의 새벽별 Jan 10. 2022

울음을 긍정하자

마음의 건강을 위하여

"사람들은 단지 인간의 칠정 중에서 오로지 슬픔만이 울음을 유발한다고 알고 있지, 칠정이 모두 울음을 자아내는 줄은 모르고 있네, 기쁨이 극에 달하면 울음이 날 만하고, 분노가 극에 치밀면 울음이 날 만하며, 즐거움이 극에 이르면 울음이 날 만하고, 사랑이 극에 달하면 울음이 날 만하며, 미움이 극에 달하면 울음이 날 만하고, 욕심이 극에 달해도 울음이 날 만한 걸세, 막히고 억눌린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 버리는 데에는 소리를 지르는 것보다 빠른 방법이 없네. 통곡소리는 천지간에 우레와 같아 지극한 감정에서 터져 나오고, 터져 나온 소리는 사리에 절실할 것이니 웃음소리와 뭐가 다르겠는가? 사람들이 태어나서 사정이나 형편이 이런 지극한 경우를 겪어 보지 못하고 칠정을 교묘하게 배치하여 슬픔에서 울음이 나온다고 짝을 맞추어 놓았다네. 그리하여 초상이 나서야 비로소 억지로 '아이고'하는 등의 소리를 질러대지."

- 열하일기 p140 -
출처-픽사베이


유교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기나긴 식민정책의 잔재 때문인지, 한국인들은 유독 감정 표현에 서툴다. 무조건 참고 견디기 일쑤 거나 과하게 폭발하거나.

들숨이 들어오고 날숨이 나가야 생명이 유지되듯이, 감정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배출해야 마음의 건강도 잘 유지가 되는 것이다.

현대사회에 이르러서도 이러한 감정의 배출이 자연스럽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데 조선시대에는 오죽했을까.

열하일기를 읽기 시작한 이유 중 하나가 만주 벌판에서 연암 선생의 통곡의 이유를 알고 싶어서였다. 지금보다 훨씬 엄격하고 닫혀있던 사회에서 통곡을, 울음을 논할 수 있었다는 것이 과연 연안 박지원이다.

우리는 기뻐도 울 수 있고, 슬퍼도 울 수 있다. 욕심이 나도 울 수 있고, 화가 나도 울 수 있으며, 즐거워도 울 수 있다. 사랑하는 순간에도 울지만 미워하는 순간에도 울 수 있다.

그렇게 울음과 함께 다 털어내고 나서야 비로소 새로운 감정을 다시 켜켜이 쌓을 수 있다.

그래야 몸과 함께 마음의 건강까지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웃음만큼이나 울음에 관대해야 하는 이유다.

주위를 둘러보자. 울어야 할 일이 있다면 울자. 그리고 울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조용히 어깨를 토닥이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울음을 긍정해 주자. 우리가 울음에 긍정하게 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조금은 더 따뜻하고 허용적인 세상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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