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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나의 새벽별 Apr 04. 2022

고개를 끄덕여 본다

모든 것이 단단히 결집하여 겨우 살아낸 겨울이 지났다

겨울 내내 숨어서 웅크리고 있던 것들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혹독한 추위를 잘 견디어 내고 살아왔다는 것을 보아달라고, 흐드러지게 피면서 자신을 내어 보여주는 봄이 왔다.


봄과 함께 친구의 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동안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자신이 없는 삶을 살아온 친구. 힘들다고 나에게 말할 시간조차도 부족했던 친구. 친구의 몸이 좀 보아 달라고 친구에게 말하는 걸까...


우리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바삐 앞만 보고 살아가는 것일까.

 모든 것을 가져도 건강을 잃고 나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어렸을 때는 삶이 계획대로, 내가 뜻하는 대로 되는 줄 알았다. 내가 어떻게 살아나가는가에 따라 미래가 결정되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내가 어렴풋이 알아가는 것 중 하나인생이 내 뜻대로,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다.


며칠 전, 공부는 커녕 학교 숙제도 겨우 하는 첫째와 학교 가기 싫다고 징징대는 둘째를 보면서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다시 들썩이며 요동치기 시작했다.

'내가 아이를 망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저렇게 공부를 시키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이 맞는 것인가. 왜 쟤들은 끝도 없이 놀기만 하는 걸까.'

그런 불안한 마음으로 보기 시작하니 놀고 있는 모습들이 눈에 가시 같 다가왔다.

인생은 인과관계로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자식 문제에서 만큼은 늘 불안한 걸까.


[올드 걸의 시집]에서 은유 작가가 아들과 싸우고 나온 뒤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오늘이 행복하지 않으면 무효다. 늦게 피는 꽃도 있다. 그러다가 안 필 수도 있다. 그래도 된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


생명이 있다는 것, 살아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아름답다. 아이들이 내 곁에서 까르르 웃으며 놀고 있는 그 자체로 감사할 일이다.


생명의 순환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은 계절의 바뀜이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 여름이 오고 가면 가을이 온다. 꽃이 피고 나면 열매가 열리고, 열매가 열리면 색색이 옷을 갈아입는다. 그러고 나면 다시 쉼의 겨울이 온다.

유일하게 인과관계의 법칙이  끊임없이 작동하고 있는 자연.


우리도 자연과 더불어 자연스러운 삶을 살아간다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인생이 펼쳐질까.


나이가 들어가는 것만큼 고개가 끄덕여지는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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