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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나의 새벽별 Dec 26. 2021

딸에게 보내는 편지

feat. 100 인생 그림책을 건네주며

난생처음 겪어보는 고통이 지나간 후,

내 품에 안긴 너를 마주한 순간.

고통도 잊게 만드는 사랑의 마법을 처음 경험하게 되었지.

처음 네가 웃어 주던 순간. 꼬물거리는 자그마한 손으로 내 손가락을 잡던 그 순간.

내 모든 걸 줄 수 있는 사랑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


내 젖을 있는 힘껏 빨던 너를 보며 인간의 생명력에 놀라게 되었지.

처음 네가 뒤집던 순간. 처음 혼자 앉게 된 순간, 처음으로 대화하던 순간. 내 손을 떨쳐버리고 혼자 아장아장 걸어 나가던 순간.

네가 혼자서 많은 것들을 할 수 있게 되고, 혼자서 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내가 누군가의 세상의 전부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이기도 했지.


엄마와 떨어져서 몇 시간 만에 어린이집에서 돌아왔던 순간.

네가 아닌 내가 분리불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수많은 곤충들을 겁 없이 수집하던 순간.

나는 기겁했고, 너는 환호했지.

네가 세상 모든 것이 신기하고 새로웠던 순간, 나는 세상 모든 것이 불안하고 위험해 보였지.


너는 점점 많은 것을 배워가고, 그만큼 점점 질문도 많아졌지. 나는 줄어드는 잠과 늘어나는 일들에 점점 지쳐갔지.

너는 여전히 나만 바라보고 있는데, 나는 다른 곳을 보고 있을 때가 많았지.

잠이 든 너를 보며, 미안함에 눈물을 훔쳤던 수많은 밤. 잘하고 싶었지만 나도 엄마는 처음이라 늘 서툴고, 실수투성이였어.


그러는 사이 너는 부쩍 커버리고, 나보다 잘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졌지.

그리고 엄마의 도움 없이 혼자서 하루를 잘 살아나가게 되었지.

나는 조금 기특했고, 조금 아쉬웠지.

이제는 네 안에 나의 세상은 줄어들고, 점점 다른 세상들로 가득 차게 되겠지.


너는 사랑도 하고, 이별도 하게 되겠지. 성공도 겪고 실패도 경험하게 될 거야.

네가 슬플 때 나는 더 많이 슬프고,

네가 기쁠 때 나는 더 많이 기쁠 거야.

그러나 언제나 너의 뒤에서 네가 볼 수 없는 곳에서 있을 거야.

그게 인생이니까.

우리는 합체된 삶에서 이제 분리되어야 하니까.  

이제 너는 너의 삶을, 나는 나의 삶을 살아나가야 하니까.

너는 넓은 세상을 모험해나가겠지. 믿을 수 없는 일들도 많이 벌어질 거야.

나는 늘 너의 행복을 빌겠지. 너만의 행복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해나가기를.


나도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될 거야.

마치 어렸을 적 너처럼.

아직 나에 대해 모르는 게 많고, 처음 해본 일들이 많다는 것에 놀라게 되겠지. 여전히 어렵고, 힘겨운 일들이 있다는 것에 좌절할지도 몰라.

그러나 받아들일 수 있는 법도 함께 알아가게 될 거야.

가끔 네가 나에게 올 때면 나는 여전히 나무 딸기잼을 만들고 있는 사람이길 바라.

뭘 하든 시간이 곱절은 들겠지만, 그 순간에 충실하며 행복을 누리는 시간이길 바라.

연어가 자신의 고향으로 되돌아가듯, 다가오는 죽음을 편안하게 준비하고 받아들이길 바라. 그리하여 우리가 아름답게 잘 헤어지길 바라.


너에게는 다시 봄이 올 거야. 그렇게 또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가겠지.

네가 가끔씩 나무딸기 잼을 먹을 때 나를 기억하며 미소 짓기를 바라.





인생은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었을까...?

나는 살면서 무엇을 배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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