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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나의 새벽별 Dec 15. 2021

나는 내가 좋은 엄마인 줄 알았습니다

당신은 인에이블러인가요?

인에이블러 = 조장자 = 사랑한다면서 망치는 사람 


10년 넘게 엄마라는 자리에서 힘겨운 걸음을 걸어오면서 내가 인에이블러라는 생각은 꿈에서조차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아이들을 나 만큼, 때로는 그보다 더 사랑했다. 핏덩이가 내 품에 안겨졌을 때, 이 여린 생명을 위해 내 모든 걸 다 주겠노라 다짐했었다.

그러나 육아는 다짐으로 채워지는 일이 아니었다. 좌절과 분노, 슬픔과 행복이 반복해서 오고 갔고, 나는 점점 지쳐갔다. 힘에 부치어 그만두고 싶을 때에도, 몸과 마음은 따로 움직였다. 나의 선택은 늘 아이들이 최우선이었다.


아이들이 걷는 길에 걸림돌이 없길 바랐다. 괴로움도 어려움도 아픔도 모두 내 몫으로 가져오고 싶었다. 엄마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했다. 내가 앞서 걸으며 매끈하게 길을 쓸어 주면, 더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거 같았다.

그 사이 아이들이 제 삶을 잘 살아나갈 수 있는 힘과 용기와 배움의 기회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걸어가는 길도 대신 선택해주고 싶었다. 이 길로 가면 달콤한 과일바구니가 있는 걸 아니까. 굳이 힘들게 돌아가지 않길 바랐다.

그 사이 아이들은 자신의 무능함과 불신을 마주해야 했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내가 행했던, 혹은 행하려 했던 모든 일들 결국에는 나를 위한 위안이었다. 모든 것을 관여하고, 결정하여 모두가 나에게 의지하기를 무의식 중에 바랐던 것이다. 원활한 의존과 조장의 관계 형성에서 나의 정체성을 찾으며 강화시킨 것이다.


세상은 생각만큼 아름답지 않고, 인생이 늘 행복하지는 않다. 해와 달이 서로의 자리를 내어주며 하루를 창조하듯이, 슬픔과 기쁨이 번갈아 자리를 내어주며 한 인간을 성장시킨다. 그렇게 성장한 인간은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사랑할 수 있는 품을 가진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 약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뿐이다. 혹여 아이가 그 말을 귓등으로 듣는다 해도 그것은 그 아이의 선택이고, 그 아이의 삶이다.

모든 인간은 스스로 선택할 자유가 있고, 그 선택에 책임지며 살 권리가 있다.



딸을 한 사람으로부터 지켜주지 못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나였다.


결국에 나는 가족 구성원 각각이 독자적이고 매우 상이한 개인이고, 나를 연장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들은 내가 선택한 대로가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대로 살 권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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