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으로부터 한두 발짝 벗어날 수 있는 사람만이 스스로에 대한 농담을 지어낸다. 세상 속에 있다가도 잠깐 세상 바깥의 눈을 가질 수 있는 사람만이 세상의 농담을 지어낸다. 농담이란 결국 거리를 두는 능력이다. 절망의 품에 안기는 대신 근처를 거닐며 그것의 옆모습이나 뒤꽁무니를 보는 능력이다."
"좋은 유머 안에는 절망과 유머가 보기 좋게 배합되어 있다."
역시 이슬아다.
믿고 듣는 노래처럼 믿고 보는 글이다. 작년에 이슬아 작가의 책을 내리읽었다. 나에게 이슬아 작가 책의 유일한 단점은 첫 장을 엶과 동시에 마지막 장을 만날 때까지 도중에 책을 덮지 못한다는 것이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 같다.
어젯밤에도 이 책을 열어보지 말았어야 했다.
나에게는 오늘까지 마감해야 하는 과제가 있었고, 피로가 누적되어 있었으며 다음날 아침에 할 일이 있었다.
그러나 과연 누가 판도라의 상자를 앞에 두고 지나칠 수 있을까. 특히 나같이 연약한 인간에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결국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다. 절망과 희망,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농담이 아주 잘 엮인 채로눈앞에 펼쳐졌다.
아! 판도라 상자 안에 농담이 있었던가.
절망 속에서도 숨 쉬며 희망과 손잡고 있었다. 영원한 절망은 없다는 걸 말해주면서.
절망과 희망을 뚝딱 끊어 나눈 채, 늘 진지함으로 세상을 대하는 나에게는 농담이 스며들 틈이 없다. 부럽다. 가지고 싶다.
절망의 품에 안기는 대신 농담을 지어내고 싶다. 절망과 희망 사이를 희미하고 가늘게나마 연결해보고 싶다.
언젠가 유머집을 낼 수 있으려나. 10년은 걸릴 것 같다. 나와 농담의 거리가 그쯤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