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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나의 새벽별 May 05. 2022

나는 나랑 친할까?

자기 이해도

오랜만에 톡 방이 후끈하다. 각자의 삶을 고속 주행해 나가다가 휴게소에서 오랜만에 만난 느낌이다. 늘 안부를 묻고 삶을 나누며 지내지만 잠시 쉬었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니 연애하는 기분처럼 설렌다. 함께의 힘 인가보다.
맥주 한 캔이 쏘아 올린 말들이 외로움으로 닿더니, 그 외로움이 나는 나랑 친한가에 대한 물음까지 닿았다.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나랑 친할까?'
나 자신과 친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소크라테스가 말한 것처럼 나 자신을 알면 나랑 친한 걸까?
그렇다면 나는 나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50프로 정도의 자기 이해도는 나에게 있을 줄 알았다.
그동안 끊임없이 자아를 찾아 헤맸고, 내 속을 들여다보기 위한 나름의 투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 겪은 몇 가지 사건들에 의해 그런 기대는 처참히 무너졌다.

첫 번째, 나는 생각보다 더 무지했다.
요즘 듣고 있는 세미나에서 읽어야  하는 책들이 있었다. 그 책들 중에 마지막 책을 마주할 때 나는 절망했다. 하얀 것은 종이고 검은 것은 글자였다. 나는 분명 한글을 아는데 독해가 되지 않았다. 그 책을 지금도 2주째 붙잡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내가 모든 책을 읽고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자체가 오만이다.   

두 번째, 건강에 대해 건방졌다.
나는  대체로 건강했다. 아니 건강을 과신했다. 특별히 건강관리를 잘했다기보다는 체력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전 급성 근육통으로 일주일 넘게 고생을 했다. 앉기도 눕기도 힘들었다. 이렇게 몸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니. 이제는 체력에 기댈 수 있는 나이를 넘었다. 노력하지 않으면 내 체력은 언제든 바닥을 칠 수 있다는 걸 절감했다.

세 번째, 부모 노릇이 맞지 않았다.
누가 제발 정답지를 주면 좋겠다. 부모로서의 나는 매일이 힘겹다. 부모로서의 욕심인 건지 나의 결핍인 건지 알 수도 없다. 며칠 전, 한동안 쌓였던 것들이 폭발했다. 폭발했다는 것은 굳은 얼굴과 한숨으로 하루를 보냈다는 의미다.  아이들이 모든 걸 쉽게 포기하는 것 같아서 화가 나고 속상했다. 정말 자신에게 맞는 것을 못 찾아서인지, 끈기가 없어서 인지도 구분이 안 간다. 정답도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강하게 밀어붙일 수도 없다. 엄마라는 역할은 나에게 맞지 않은 옷 같다.  

내 몸과 내 생각이 겉돌고 있었다. 내 생각과 내 마음이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내 안에 있는 몸과 마음과 생각이 이토록 따로 놀고 있으니, 나는 나랑 친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서글프지만 나에 대한 이해도가 +1 레벨 업 되긴 했다. 나는 나를 잘 모르는 것을 알았으니까.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연습을 해봐야겠다. 내 마음이 나에게 어떤 말들을 건네고 있는지. 어쩌면 그 말속에 가장 나다움이 숨어있을지도 모르니까.
경청은 친구 사이에 가장 필요한 덕목이니까.

그렇게 경청하다 보면 요즘 내가 갈구하는 답변도 들을지 모른다.
'나는 무엇에서 해방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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