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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나의 새벽별 Jun 07. 2022

삶은 말하지 않는다

말과 앎과 씀과 삶이 하나되는 날까지.

친구가 말했다.

"나는 이제 말은 믿지 않아. 말과 삶이 너무나 다른 사람들이 많으니까. 결과! 보이는 것만 봐. 그 사람이 살아내고 있는 모습을 보는 거지."


그 말을 듣고 있자니, 나 또한 말만 떠벌리는 인간이 아닌가 싶은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돈만 쫒는 삶을 탐탁지 않게 바라보면서

떤 일을 해서 돈을 벌지  궁리하고.

녹색평론 김종철 대표의 자식 대학안보내기 운동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아이를 보면 내심 불안한 마음이 밀려들고.

그토록 떠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여기에 머물러 있고.

나라는 인간의 격렬한 이중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이상과 현실은 정확히 나누어 구분 지을 수 없다고 변명하며 '현실도 살아가야 하니까'라는 구실 좋은 핑계를 되면 끝나는 걸까.


'나는 누구인가'를 가장 잘 말해주는 것은 나의 주의나 주장이 아니라 내가 은연중에 행하는 행동, 혹은 혼자 있을 때 하는 행위이다.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류시화-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을 때 내가 하는 무의식적 행동이 나의 가장 진실된 모습에 가깝다는 말이다.


타인의 시선 속에 존재하지 않을 때, 나는 어떤 행동을 하며 어떤 생각을 하는가.


그것이 곧 나이다.



신은 우리의 말을 들음으로써가 아니라 행위를 바라봄으로써 우리를 신뢰한다. 내가 설명하지 않는 것을 내 삶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류시화-



근데 모르겠다.

은연중에 내가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혼자 있을 때 나는 공상한다. 그리고 분주하게 무엇이든 일을 만들어 쉬지 않고 계속한다.


이게 나라고? 연결이 안 된다.

해석 능력의 문제인지 자기 인지도의 문제인지 도통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것이 없어 자책하고 절망하다가 '확실한 것 하나부터 일단 시작하자'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는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니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쓰면 된다. 손을 쓰든 머리를 쓰든 무조건 써보는 것이다.



류시화 시인이 말했다.

나에게 영감은 그저 매일 쓰는 것이다.




금의 나에 대해 설명하거나 변명할 필요가 없다. 모든 계절을 통과하고 나면, 그 길목의 끝에서 보이는 나의 삶으로 답해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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