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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흥만 Dec 24. 2015

아시시로의 초대장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여자의 입

연인이 된 후 두세 번 정도 만났을까? 남자는 여자와 입 맞추고 싶어했다. 그러나 자상한척 하기 좋아하는 남자는 그 사랑스러운 여자의 입을 가질 용기가 아직은 부족해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는 여자를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초대했고 물소치즈가 듬뿍 담긴 샐러드에, 해산물 파스타, 티본스테이크까지 풀코스로 여자를 모시고 있었다.


식사가 끝나고 뒷동산에 올라 산책도 하고 와인도 마시며 분위기를 무르익을 무렵, 여자는 남자의 무릎에 누웠고, 남자는 때를 놓치지 않고 여자의 입에 입을 맞추었다. 그러나 키스는 남자가 상상한 만큼이나 황홀하진 못하였다. 다만 키스 하나로 여자를 가졌다는 생각에 남자는 뿌듯해하고 있을 뿐이었다. 한 번의 키스는 또 한 번의 키스를 낳았고, 그 키스는 또 다른 키스를 낳았다. 그렇게 두 사람 사이의 키스하는 횟수가 증가했고 시간은 날로 길어지고 있었다. 버스정류장에서 헤어지지 못하고 서로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시간이 날로 길어지고 있었다.


남자는 실업상태였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가 직장인인줄 알고 있었다. 12일째였다. 그러나 남자는 여자에게 실업상태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조만간 남자는 이번회사와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핑계를 대고 이탈리아 아시시에 간 후, 돌아와 재취업에 성공하면 된다고 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며칠을 고민하다 남자는 여자에게 말했다.


"나, 이번 회사 적성에 안 맞는 것 같아... 잠시 쉰 후 재취업 하고 싶어.."


"............................"


"이탈리아 아시시에 다녀오고 싶어....... 너도 그랬잖아....... 교회도 안다니는 자기도 유럽에서 아시시가 가장 좋았다고"


"............................"


그리고 잠시 후 남자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자의 혀에서는 이런 말들이 나왔다.


"난 백수랑 만날 생각이 없어, 그리고 오빠는 지금도 돈이 없는데, 다녀오면 더 어려워.... 유럽여행 다녀와도 달라질 건 없어.. 한국 오면 이력서 내야 한다고...정 답답하면 여름에 청산도나 다녀와.."


청산도.....정말 좋은섬이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아시시 대신에 청산도라니 남자는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남자는 아시시 대신에 청산도를, 자기 자신 대신에 그녀를 선택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남자는 여자를 위해 매일 이력서를 쓰고 또 고쳐 썼다.


그러나 쉽게 취직될 것이라는 그의 생각과는 달리 남자의 실업상태는 40일간 계속 되고 있었다. 여자는 아직도 남자가 직장을 다니고 있는줄로 알았다. 남자는 40일간 본의 아니게 계속 거짓말을 한거다. 남자는 지인인 영성심리상담가를 찾았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영적상태와 심리상태를 그녀에게 고했다. 예수회 미국 대학인 로욜라대학에서 영성심리를 공부한 그는 남자에게 말했다.


"요셉아, 지금 네가 나에게 했던 모든말을 너의 연인에게 말해야 할 것 같애..


연인이라면, 이 정도 이야기는 서로 알고 있어야 해....


너의 두려움을 공감해....


말을 한 후 그녀가 널 떠나갈까봐 두려운거지..


더 숨긴다면 이 연애는 사기라고도 할 수 있어....


너의 있는 그대로의 약함을 드러냈을 때라야 비로소 성령도 활동하실 수 있으셔...


두려움 걷어내고, 하느님께서 어떻게 이끄시는지 기다리자"


오랜시간 멍해온 머리와 눈이 명확해지고 있었다.


남자는 여자를 만나 자신이 40일 전부터 실업상태임을 고백했다.

이제부터는 하느님의 시간이었다.


여자는 3초간 심호흡을 하고 남자에게 이별을 권했다.

그녀는 덧붙여 연인은 어려울 것 같지만, 친구로는 지낼 수 있을 것 같다고도 말했다.


남자는 힘들었다. 울고 불고 하는 스무살의 이별은 아니었지만, 몇 달 몇 일을 아프지 않으면서 아팠다.

그러던 어느날 거짓말 할 대상까지 잃은 남자는 로마 레오나르도 다빈치(FCO)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표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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