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식빵 May 31. 2022

 해방되지말고, 해방하자. 살아내자.

<나의 해방일지> 엔딩을 보며.

애정 가득 담아 보던 산포시 삼남매의 이야기,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가 끝났다.

처음에는 <나의 아저씨> 박해영 작가님의 작품인지 모르고 보기 시작했다.

첫회 보고 나서 삼남매 중 막내인 염미정 역의 김지원이 마치

<나의 아저씨>에서 아이유의 어른 버전 같다고 생각했다.

나중에야 해방일지도 박해영 작품인 걸 알았는데, 오우~~ 역시 나의 통찰력~~~ (? 여기서 통찰력이 왜 나와? 아 몰라.....) 하며 스스로 감탄했.............. 다기엔 그냥 K드라마 덕후...... 느낌.....ㅋㅋㅋ




삼남매는 서른이 훌쩍 넘게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뭔가 충족되어본 적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저 순하고, 성실하게, 경기도 외진 곳에 있는 집과 서울 한복판에 있는 직장을 오가는,

흔하디 흔한 이 시대의 비주류 인생들이었다.

그들에겐 서울에 직장 다닌다고 떡하니 멋진 오피스텔 하나 계약해줄 재력 있는 부모가 없었다.

평생을 외길 똥고집으로 살아온 아버지와 그런 남편과 (서른 넘도록 하나도 시집 장가를 안 가고 집에 있느라 밥해먹여야 하는) 자식들 때문에 스스로를 불행하다 여기는 어머니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의 삶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어느 날 갑자기 그 산포시 삼남매 가족에게 떨어진 '구 씨'때문이었다. 돈 빌려놓고 외국으로 튄 전 남자 친구 때문에 바스러져가던 막내 미정은,

대뜸 구 씨를 찾아가 자신을 '추앙'하라고 한다.



네이버 단어 사전을 찾아보면, '추앙하다'란




추앙하다推仰하다 [추앙하다]

동사) 높이 받들어 우러러보다.





라는 뜻이다. 도저히 드라마 대사로 적합해 보이지 않는 단어이다.

상징적으로 은유적이고 시적이다.


알코올 중독 호빠 선수 출신의 밑바닥 인생인 구씨에게도 미정은 '구원자'였다.

추앙하고, 추앙받는 관계로 인하여 둘의 인생은 아주 조금씩 변하게 된다.



직장에서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는 동호회에 들지 않아 인사팀에 불려 다니던 미정은 그런 식으로 모여든

나머지 두 남자와 함께 어느 날 갑자기 '해방 클럽'을 만들자고 한다.

셋은 모두 무언가로부터 해방되고 싶었다.

그들은 간간이 모여 각자 '해방되기 위해 한 노력'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고, 해방 일지를 작성한다.

특히, 아웃사이더 셋을 모아놓고 모슨 동호회든 들라고 압력을 넣는 인사팀 직원으로 등장했던 여직원이

해방 클럽조인하게 되는 과정은 아주 재밌고 뭔가 울컥하는 장면이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직장인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 뭔가에 갇혀있는 존재들이다.

'태어난 김에 잘 살기 위해서는' 그동안 나를 억압해온 그 어떤 것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했다.



 미정은 지긋지긋한 인간관계로부터,

나중에 미정의 언니 기정과 연인 사이가 되는 태훈은 '약한 남자'라는 이미지로부터,

인사팀 여직원은 행복하지 않은데도 사람만 마주하면 저절로 웃게 되는 표정으로부터,

(아.. 부장님은 뭐였는지 기억 안 나... 죄송 ㅋㅋ)


해방 클럽 창립 멤버 3명이 나란히 앉아있는 씬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들을 볼 때마다 나도

막연히 '해방되고 싶다'라고 느꼈다. 무엇으로부터...?

나는 무엇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은가?

지긋지긋한, 끝없는 근심 걱정과 불안의 머릿속으로부터?

아니면, (내 의지와는 다르게) 태어난 김에 살아야 하는 이 인생 자체로부터?

결혼한 김에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하는 이 결혼생활로부터?

아이를 낳은 김에 제대로 잘 키워내야 하는 책임감으로부터?



어쩔 수 없이 내 의지와 다르게 이 세상에 내던져지듯이 태어나고, 어느 날 갑자기 내던져지듯이 어린이집, 유치원을 거쳐 학교란 곳에 다니며 하고 싶지 않은 공부라는 것에 내던져지고, 입시, 취업... 에 인생 관문에 내던져지고, 그리고 조직생활, 사회생활을 하며 인간관계라는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평생을 쥐어짜듯이.. 그렇게 우리 모두 살아간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기에.

우리는 살아가며, 경쟁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성취하고, 실패하고, 온갖 것들에 휘둘리며 살아간다.

그것 자체가 삶인 동시에 그것 자체가 고통이기도 하다.



모두에게는 해방되고픈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그 무언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우리가 인간인 이상 그 무언가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만은 동일하다.

삶이란 무엇일까. 결국은 고통일까?

찰나의 행복들이 간간이 등장하는 고통의 시간들일까?

한평생을 큰 탈 없이, 큰 병 없이 남들처럼 살아내는 것 자체가, 보통 '평범하다'라고 일컫어지는 것 자체가

삶에서 가장 큰 행복일 수도 있다.

그래서 모두들 이야기한다. 평범하기가 가장 어려운 것이라고.

죽을병에 걸리지 않고, 어린 시절 학대당하지 않고, 몹쓸 놈년을 만나지 않고, 그저 잘 학업을 마치고, 직업을 가지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사는 그런 삶은, 아주 평범해 보이지만 실상은 아주 어려운 것이다.



무탈한 삶을 위해, 나를 괴롭히는 무언가로부터 해방되고픈 마음을 가득 담아, 잘 되지 않더라도,

미정이 말하듯, 하루 5분이라도 설레고 행복한 순간들을 그러모아,

그저 오늘 하루도 잘 견뎌보자.

그런 하루가 쌓이고 쌓이고 쌓여서 한평생이 되도록.


해방이 별건가.

수동적으로 '해방되고자' 하지 말고, 스스로 주체적으로 '해방하자'







해방하다2解放하다 [해ː방하다]

동사) 구속이나 억압, 부담 따위에서 벗어나게 하다.






그런 대사가 나온다.

삼대가 서울에 살아야 진짜 '서울 사람'이라고. 둘째 염창희는 그 말에 한숨짓는다.

그럼 "내 손자부터 진짜 서울사람이겠네." 하면서.

'진짜 서울사람'들이 이 대한민국에 몇%나 되겠는가.

그렇다고 그 외의 모든 이가 대한민국의 비주류인가?

모르겠고, 간단하게 하자면 더 쪽수 많은 쪽이 주류 아닌가?


아니, 주류/비주류가 애초에 중요한가?

어차피 우리는 타인에게 모두 비주류이다.

살아내야 하는 내 인생은 단 한 번뿐이고, 오직 나만이 내 인생에서 주류이다.

나를 해방하고, 나를 기준 삼고, 내가 행복할 길을 찾고, 나를 사랑하는 것이 내가 주류가 되는 길이다.


드라마에선 삼남매 모두 어떤 식으로든 해방되고 드라마가 처음 시작할 때보다는 좀 더 행복해 보이며

끝맺었지만, 앞으로의 일은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계속되기 때문이다.




부디 우리 모두,

오늘 하루라도,

지금 이 순간이라도,

쨍하게 해 뜬 날처럼 구겨진 데 펴지고,   

따끈따하고 바싹바싹 햇살 냄새 벤 사람으로

살자.


살아내자.

이왕 이 세상에 온 거.





매거진의 이전글 다정한 말 한마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