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H.O.T. 와 함께 남자 아이돌 그룹의 시초였던 젝스 키스의 「예감」이라는 노래의 가사이다. 어느 날 이 노래가 라 디오에서 흘러나오는데 평소와 달리 서서히 빡치고 있는 날 발견하고 말았다. 샤방샤방한 미소년의 얼굴을 한 여섯 남자 가 노래하는 달콤한 결혼생활의 환상. 아 저런 오빠와 결혼할 수만 있다면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 준비하는 게 대수랴, 그의 넥타이를 내가 매만져줄 수만 있다면, 나도 언젠가 저런 남자를 만나 저런 결혼생활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을 수많은 여학생들. 이 달콤한 노래의 대체 무엇이 나를 열받게 했을까.
이 노 래는 1998년도에 나왔다. 수많은 10대 소녀들의 우상이었 던 그들. 그녀들은 노란 풍선을 들고, 비옷을 입고, 밤새 줄을 서가며 전국의 음악방송을 쫓아다니고, 콘서트 티켓을 사고, 앨범을 사 모았다. H.O.T. 와 젝스키스의 시대였다. TMI(too much information)로 나는 젝스키스보다는 H.O.T. 를, 그중 에서는 장우혁 오빠를 좋아했다. 몇 년 전부터 방송계는 레트로 붐이 한창이다. 한 예능 프로 그램에서는 이제 마흔 줄이 된 그 시대의 젝스키스 오빠들을 다시 모이게 했으며, 유명 가수들이 옛날 노래들을 리메이크하는 것도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 패션계에서도 레트로 열 풍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레트로는 좋다. 서서히 뒷방 늙은 이가 되고 있는 내 또래가 보고 듣기에도 향수를 불러일으 켜 좋고, 요즘 젊은 세대의 새로운 감성이 덧입혀진 옛날 노 래들은 새롭고 신선하기도 하다. 나는 유명한 아이돌 가수의 이름이나 방탄소년단이 몇 명인지는 몰라도 아이유가 부르 는 옛날 노래들은 좋아한다.
그런데 그날 라디오에서 들은 젝스키스의 노래는 왜 나를 화나게 만들었나. 아직 남편이 늦잠을 자는 동안 아내는 좀 더 일찍 일어나 보글보글 된장찌개라도 준비해야 한다는 생 각, 아내는 가장인 남편이 출근할 때 옷매무새도 만져주어야 한다는 생각, ‘남자와 여자’, ‘남편과 아내’의 그 정형화된 관 념이 10대 여학생들이 무수히 따라 불렀던 아이돌 가수의 노래 가사로 등장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네들은 시간이 흘러 지금 내 나이 또래가 되었다. 지금은 반대로 남편이 그 노래 가사 속의 주부 역할을 하고, 아내가 돈을 벌기 위해 출근을 하는 부부도 있을 것이고, 새벽같이 일어나 허둥지둥 우유에 만 시리얼을 먹는 둥 마는 둥, 아이는 일등으로 어린이집에 밀어 넣고 지옥철에 몸을 싣는 맞벌 이 부부도 많다. 『모성애의 발명』을 쓴 독일의 사회학자 엘리자베트 벡 게 른스하임에 따르면, 여자가 오랜 시간 동안 가정주부로만 살 아온 것은 산업화의 결과라고 한다. 가족 경제 속에서 함께 일할 수 있었던 아이와 여성, 노약자는 익명의 시장 법칙 아 래에서 변방으로 밀려났고, 산업사회의 등장과 동시에 새로 운 형태의 인생행로가 필요해지게 된 것이다. 그것은 바로 ‘뒤에서 지원하고 원기를 북돋아 주며 격려하며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 맞게 만들어진 것인데, 이것이 바로 여성에 게 주어진 새로운 노동 및 삶의 형태가 된 것이라는 게 그녀 의 주장이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이 땅에서 여자들을 옭아 매 온 그 사상은 무려 1998년까지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노래 가사로 쓰여 수많은 여학생에게 ‘로맨틱한 결혼생활은 이 런 것’이란 환상을 심어주며 되풀이되고 있었던 것이다. 결혼은 남자와 여자가 하는 것이라는 생각, 부부와 아이가 이루는 가정이 ‘정상 가족’이라는 생각은 그 범주 안에 들지 못하는 사람에게 끊임없이 폭력으로 작용한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특히 나이 드신 어른들이 결혼하지 ‘못한’ 사람을 무 언가 ‘흠이 있는 사람’ 취급을 한다. 결혼하지 않는 것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애써 잊으려 한다. 나 역시 20대 까진 별생각 없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사는 것이 당연한 수 순인 것처럼 생각했다. ‘흠 없는 정상 여자’의 범주에 나를 우 겨넣고 싶었다. 평범함이 행복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 것이 다. 그 ‘평범함’이라는 것의 기준 자체가 누군가에겐 폭력일 수 있고,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 수 있음을 생각하지 못했다.
어쨌든 나는 한 남자와 이미 결혼이란 걸 해버렸고, 아이도 낳았다. 틈만 나면 싸우고 울고불고 진상이 되기도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혼이란 걸 하지 않고 어찌어찌 살고 있다. 게 다가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격한 고부갈등을 겪고 나서, 그 리고 딸을 키우면서 스스로가 페미니스트임을 깨달아버렸다 는 것이다. 그것은 수많은 싸움의 시작을 뜻하기도 했다. 이왕 해버린 결혼, 남편을 나와 같은 페미니스트로 만드는 것도, 내 아이를 훌륭한 페미니스트로 키워내는 것도 내 삶에 추가로 주어 진 과제가 되어버렸다. 그것은 험난한 과정일 것이다. 하지만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방법을 찾기 위해 지금도 이 글을 쓰고 있다.
위 글은 2021년 출간된 <이혼하고 싶어질 때마다 보는 책>에서 발췌했습니다. (작가 본인임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