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포기한 25% -완벽한 결혼의 조건은 없다

by 박서운과박식빵


이 결혼은 꼭 했어야만 하는 것일까? 그래, 나는 어쨌거 나 결혼을 했을 거다. 이 사회에서 모지리 취급받고 싶지 않아서, 노처녀로 손가락질받고 싶지 않아서, 떠도는 온 갖 외로움에 대한 괴담에 겁에 질려서 나는 결혼을 했을 거다. 혼자 독립적인 척은 다 하면서 실은 이 사회의 틀에 서 한 발짝도 못 벗어나는 그런 겁쟁이라서, 나는 결국 결 혼을 했을 거다. 이것이 내가 결혼한 진짜 이유다. (p.123)


– 『아주 독립적인 여자 강수하』(강수하 지음)-





이 대목을 읽으며 내 마음속에 존재했지만 정확하게 말이 나 글로 표현하기는 어려웠던 결혼에 대한 속마음을 조목조목 짚어주는 것 같아서, 비겁했던 내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 부끄러우면서도 속 시원했다. 그렇다. 내가 쓰고 있는 이 모든 것은 그 모든 사회적, 개인적 압박감에 굴복하고 만 자 의 뒤늦은 고백이고 핑계일 뿐이다. 결혼이란 것이 그토록 여자에게 불리하고 시시한 제도라면 도대체 왜 수많은 여자 가 결혼에 목을 매는가. 왜 그토록 많은 노처녀가 명절마다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결혼 시장에 끊임없이 자기를 내놓는 가.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을수록 점수가 깎일까 두려워 필러 를 맞고 몸매를 가꾸는가. 왜 스스로가 가판대에 올려놓은 물건마냥 점수 매겨지는 물건이 되는 걸 지켜보고만 있나.


부끄럽지만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결혼적령기에 결혼이란 인생 퀘스트 하나를 해치워버림으 로써 결혼을 안 했을 경우 지속해서 시달리게 될 스트레스로 부터 해방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노처녀의 기준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결혼을 하지 않고 버티다가 노처녀 딱지를 단 채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다. 결혼을 ‘안’ 한 것이라 할지라도 이 사회에서는, 주변에서는 ‘못’ 한 것이라 는 오명을 씌우는 숱한 경우를 봐왔기에 그 ‘결혼 못 한’ 여자 의 무리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다. 이제 와 뒤돌아보건대 그 모든 것은 강수하의 말대로, ‘사회가 나를 속인 것뿐이다. 빼앗겼던 것뿐이다.’ 이 사회는 결혼하지 않아도 안정적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숨겼 다. 혹은 우리는 그것을 잘 알면서도 애써 모른 척했을지도 모른다. 일일이 반박하고, 설명하고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삶 에 지레 겁먹어서.


어쨌거나 8년 전의 나는 결혼이란 걸 후딱 해버리고 싶었던 모지리 평범한 여자였고, 남편감을 고르는 데 있어서 나름의 기준이란 걸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기준이란 것은 이 상적이기도 했고, 속물적이기도 했다.


첫 번째, 비슷한 학력 수준을 가진 말이 통하는 사람

두 번째, 유머 코드가 비슷해서 티키타카가 되는 사람

세 번째, 어느 정도 경제적 능력이 있는 사람

네 번째, 나보다 큰 키와 훈훈한 외모


첫 번째, 두 번째 이유가 가장 중요했는데, 친구로 지낼 때 보다 연인이 되어 만나다 보니 훨씬 더 잘 통하는 것 같아 패 스. 세 번째 이유는 예의 그 속물적인 조건이다. 어린 시절 풍 족하게 살아보지 못해서 남편감이 어느 정도 경제적 능력을갖추고 있고, 시가가 최소한 가난하진 않기를 바랐다. 누군가 이것을 가지고 비난한다면 할 말은 없다. 솔직히 스스로는 경제적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비루한 스펙 으로 이름 들어봄 직한 대기업이나 번듯한 공기업에 취직하 거나 의사, 변호사 같은 ‘사’자 직업을 가지기는 이미 힘드니 내 평생 돈을 많이 벌 것 같진 않았다. 없이 자라며 하고 싶은 걸 많이 포기한 경험이 있었기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는데 남편의 능력이 없으면 자식에게 나와 비슷한 환경을 물려주 게 될 것만 같았다. 다행히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은 누구나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시부모님도 경제적 능력이 있 어 보였다.


비난을 감수하고라도 모든 걸 솔직하게 까발리는 것은,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나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강수하가 나보다 훨씬 더 독립적일 수 있었던 것은 결혼하면서 양가에 아무런 도움도 받지 않고 ‘반반 결혼식’을 했으며, 계속해서 비슷한 연봉 수준으로 맞벌이를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많은 경우 결혼은 사랑만 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만일 내게 좀 더 경제적 능력이 있었 다면, 시가에서 경제적 지원을 받지 않았다면, 내 결혼생활은 지금보다는 훨씬 더 독립적일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결혼이란 걸 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어느 정도 는 현실주의자였기 때문이다. 내가 세운 네 가지 조건을 모 두 100% 만족하는 남자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란 걸 인정하 고 있었고, 행여 존재한다고 해도 그런 완벽한 남자 역시 나 를 좋아해서 결혼하고 싶어 할 확률은 거의 없을 거란 것 또 한 알고 있었다. 양심이 있다면 나만의 기준 네 개 중에 하나 정도는 포기해야 마땅하다. 당시의 그는 첫째, 둘째, 셋째 조 건까지 어느 정도 충족했다. 과감하게 네 번째 조건은 포기 하기로 했다. 꼭 훈훈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훈훈한 외모’에서 ‘뽀뽀할 때 두 눈 질끈 감지 않아도 될 정도’로 타협하기로 했다. 얼굴 뜯어먹고 사는 것도 아니고, 웃을 때는 적당히 귀여운 구석 이 있기도 했다. 그렇다. 나는 매우 양심적인 여자였던 것이 다. 나 역시 김태희가 아니고, 신붓감 일등인 교사나 공무원이 아니니까.


25%를 포기하고 한 결혼, 그래서 지금 행복하냐고?


행복의 기준은 저마다 너무도 다르기에 뭐라 말하긴 어렵지만 내 기준에서는 결혼해서 이전보다 특별히 더 불행해진 것 같지는 않다. 특별히 더 행복한 것 같지도 않지만. 어쩔 수 없는 비겁 함 때문에 사회적 요구를 무시하지 못하고 노처녀 타이틀을 달기 전에 결혼했지만, 결혼생활의 복병 고부갈등 때문에 간 혹 이혼을 생각하기도 했지만, 결혼 이전의 삶과 지금의 삶 을 대차대조표로 적어본다면 아마도 비슷한 수준의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을 것 같다. 자유로운 삶 대신 사랑하는 아이와 안정감을 얻었고, 대신 명절과 시가 스트레스를 얻었다. 화려한 자유연애 대신 (이혼 하지 않는 한) 평생 한 남자랑만 살게 되겠지만, 쿵짝 잘 맞는 사이라면 그것 또한 나쁘지 않아 보인다. 물론 난 이미 해버린 상태에서 하는 말이지만, 만일 결혼이란 걸 할까 말까 고민하 는 상태라면 한 가지만 깊이 생각해보라고 조언하고 싶다.


당신이 세운 배우자 조건에서 25%쯤 포기하더라도 행복할 수 있을까? 결혼할 땐 25%였지만 그 안에 들어가 보면 내가 포기해야 할 것은 50% 혹은 70%일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그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은가? 그 사람은 과연 50%, 70%를 만 회할 만한 사람인가?





이 글은 2021년 출간된 아래 책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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