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쓰리를 같이 보며 킥킥대는 즐거움

<이혼하고 싶어질 때마다 보는 책>

by 박서운과박식빵

가족 셋이 다정하게 널브러져 있던 어느 주말, TV를 켜 자 장안의 화제 ‘싹쓰리’가 나왔다. 왕년의 요정 출신인 효리 언니는 20년이 지난 시간이 무색할 만큼 여전히 당당하고 멋졌다. 왕년의 핑클 팬이었던 남편은 핑클 카세트테이프를 듣고 또 들어 테이프가 주욱 늘어났었단다. 오호라, 내가 H.O.T. 장우혁 오빠한테 빠져 하트뿅뿅하고 있을 때 넌 핑클 보며 헤벌레하고 있었단 말이지...


당시 10대 여학생들 사이에 선 H.O.T. 와 젝스키스 양대 산맥으로 파가 나뉘곤 했다. 아무리 친한 친구들끼리도 에쵸티냐 젝키냐 얘기가 나오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자기 오빠들이 백배천배 낫다며 싸우곤 했다. 그 시절 여자 가수라면 당연히 S.E.S. 와 핑클 이파전이었 고, 이들은 각각 H.O.T. 와 젝스키스와 같은 소속사라서 은근히 H.O.T. 팬들은 S.E.S. 언니들을, 젝스키스 팬들은 핑클 언니들을 좋아했다. 나는 ‘멋있으면 다 오빠, 예쁘면 다 언니’ 파라서 장우혁과 성유리 언니를 동시에 좋아하긴 했지만. 핑클 중에서 이효리를 가장 좋아했다던 남편, 효리 누나 이제 늙어서 별로라던 남편, 말과 다르게 입은 헤벌쭉하고 있는 거 본인은 아는지 모르겠다.


이효리와 비, 왕년의 대스타 두 명과 국민 MC 유재석이 만 들어내는 케미는 엄청났다. 월드스타 비가 형, 누나한테 깨지고 당하는 모습도 웃기고, 복고풍의 옛날 노래와 패션 스타 일도 인기에 한몫했다. 그들은 제2의 전성기를 누리듯 음원 차트를 휩쓸어버렸다. 인터넷상의 많은 팬들은 ‘싹쓰리’를 보 며 너무 즐거우면서도 이상하게 슬픈 느낌이 든다고들 했다. 그들이 정상에 있었을 때, 가장 멋있고 젊고 빛났을 때가 이 미 지나버려서 슬픈데, 그 슬픔의 원인을 생각해보자면, 내가 좋아했던 나의 우상이 나와 똑같이 나이 들어감을 보면서 요상한 애수에 사로잡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 시절에만 유행했던 혼성그룹이 다시 나타나 부르는 그 시절스러운 노래는 30-40대의 가슴에 불을 지펴버린 것이다.


TV를 같이 보며 앉아 히죽히죽 웃고 있자니 동갑내기 남편 이 이럴 땐 참 좋구나 싶다. 2004년 우리가 새내기 대학생이 던 시절의 Top 100 노래 리스트를 틀어도 그 시절을 이야기하며 같이 따라 부를 수 있고, 1998년의 노래를 틀어도 같은 시절을 떠올리며 노래 부를 수 있으니 참 좋다. 초등학생 시 절 일요일 아침 8시에 하던 「디즈니 만화 동산」에 대해서도 같이 이야기할 수 있고, 일요일 오후 1시에 하던 「만화시리즈」에 대해서도 같이 이야기할 수 있다. 나는 「은비 까비의 옛 날옛적에」도, 「날아라 슈퍼보드」도, 「달려라 하니」도 다 재밌 게 봤는데, 남편은 은비까비랑 배추도사 무도사는 최악이 었단다. 무도사 할아버지가 얼매나 귀여운데….


결혼 전 다른 연애를 하면서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사람과 사귀어본 적은 없지만, 세 살 네 살만 차이가 나도 아주 미묘 한 세대 차이가 느껴지면서 그 시절을 회상하면 말문이 막히 곤 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의 남편이 남자친구이던 시절, 우리는 같은 대학을 나온 동기로서 같은 공간, 같은 시절을 보낸 친구로 서로 통하는 부분을 많이 느꼈고, (나만 느낀 것은 아니겠지?) 그런 장점은 이 친구(?)랑 평생을 함께 보내면 참 재밌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던 것 같다.


사람은 기억을 먹고 사니까. 즐거웠던 왕년의 추억들을 같이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같은 시절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남편이 된다면 평생 대화만 해도 심심할 일은 없겠다고 생각했다.

‘행복한 사람은 있는 것을 사랑하고, 불행한 사람은 없는 것 을 사랑한다.’는 말도 있는데, 내가 가진 것이란 결국은 내가 가진 기억과 추억들이다. 여러 가지 계산과 그런 긍정적인 마음들 하나둘이 보태져 그 사람과 결국은 결혼까지 가게 되었는데…. 과연 그 결정의 결말도 좋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알 것 같다.




이 글은 2021년 출간된 <이혼하고 싶어질 때마다 보는 책>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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