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어느 날이었다. 남편과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저녁 메뉴를 결정하고 있었다. 인터넷에서 맛집으로 검증받 은 감자탕 집에서 포장해 와서 먹기로 한 것이다. 그가 퇴근 하는 지하철역 근처에 그 식당이 있기에 미리 전화 주문을 해놓고 차로 내가 음식을 픽업하러 간 김에 남편까지 태워 집으로 오는 멋진 계획까지 세웠다. 하루 종일 재잘대며 열 심히 논 아이를 저녁 7시 다 되어 차에 태웠더니 낮잠 아닌 낮잠에 빠져버린 것만 빼면 완벽한 계획이었다. 잠깐 단잠에 빠졌다 일어나면 에너지 풀충전이 되어 밤늦게까지 깨어있 겠지만, 감자탕에, 뼈찜에, 찹쌀순대까지 들어있는 세트음식 의 훌륭한 맛은 모든 것을 잊게 해주었다.
문제는 그 이후에 일어났다.
평소라면 내가 설거지를 하는 사이 남편이 아이를 씻기거나 그 반대지만, 오늘따라 피곤 함을 호소하던 남편을 위해 오늘은 내가 둘 다 하리라 마음 을 먹고, 소파에 널브러져 있는 남편을 애써 모른 척하며, 식 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조금 있다가 씻길 요량으로 목욕 장난감들과 함께 욕조에 풀어놓았다. 최소 20분은 조용 히 혼자 놀 참이었다. 포장음식이라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 을 거라 생각한 것이 오산이었다. 여러 가지 세트음식에 각 종 김치에 소스까지 모두 애매하게 음식들이 남아서 죄다 밀 폐용기에 옮겨 담고 음식물 쓰레기를 정리하고, 아이 식기며 설거지 거리를 싱크대에 담그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오늘은 남편을 편하게 쉬게 해 주리라던 다짐이 슬금슬금 무너지기 시작하며 한숨이 새어 나왔지만, 그는 여전히 소파 와 합체한 채 오늘만은 꼼짝도 하지 않겠다던 집념을 보여주었다. 겨우 정리를 마치고 나니 예상과 다르게 싱크대 가득 찬 그릇들을 씻을 체력이 모두 사라진 뒤였다. 조금만 쉬다가 하거나 혹은 미뤄뒀다 내일 아침에 내가 할 거긴 한데, 아무튼 잠시만 앉아 쉬고 싶었다. 나는 거실로 가서 남편 맞은 편에 앉았다. 어쩌다 그 얘기가 또 그리로 튀었는지는 모르 겠다. 우리는 갑자기 또 간혹 싸우곤 하는 아주 사소한 지점을 가지고 언쟁을 벌이고 말았다.
이 집에 이사 오기 전 집에선 식기세척기가 빌트인 되어 있 었기에 설거지 문제로 싸울 일이 없었다. 우리는 설거지를 ‘네가 해라, 내가 해라.’로 싸우는 게 아니었다. 남편은 내가 설거지 거리를 싱크대에 쌓아둘 때 음식 찌꺼기나 양념들을 애벌로 깨끗이 헹구지 않아서 양념 범벅이 된 물이 둥둥 떠 다니는 걸 보는 게 너무 싫다고 했다. 언젠가는 물을 받아두 지 않아서 양념이 굳어버려 자기가 설거지할 때 너무 짜증이 났다고 하기에 그 뒤로는 꼬박꼬박 그릇에 물을 풀어 두었건 만. 이번에는 양념이 떠다니는 게 싫단다. 나 같으면 그런 사 소한 걸 지적질할 바에는 그냥 내가 하겠다 싶었다. 하지만 본인은 내가 살림하는 것 무엇에서도, 아이 양육 문제에 있 어서도 단 한 번도 지적한 적이 없는데, 오직 그것 하나만은 참을 수가 없단다. 누가 보면 엄청난 청결보이 납신 줄 알겠다. 다른 모든 영역 에서 청결지수가 나보다 떨어지는 것 같은데, 유독 그것만 집 착하고 지적을 하니 나는 열이 뻗쳐버렸다. 그는 언쟁을 벌이 다 말고 기어코 싱크대로 가서 내가 어느 정도로 양념을 헹궈 쌓아두었는지를 확인했다. 다시 다가와서 잔뜩 뿔이 나 있는 내 면전에 대고
“이것 봐라. 내 그럴 줄 알았다.”
를 시전하는 데. 와. 놔. 저걸 내 남편이라고 여태 데리고 살았나 싶었다.
집안일을 평소에 전혀 안 한다거나 사사건건 살림에 간섭 하는 게 아니니, 굳이 저것에만 집착하는 것이 오히려 나는 더 이해가 안 되었다. 그런데 또 본인 입장에서는 자기가 다 딴지 거는 것도 아닌데, 그것 하나만 싫다는데 너는 그거 하 나도 못 고쳐 주냐고 난리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다. 근데 그렇 게 따지면 목욕하러 들어가면서 뱀 허물 벗듯이 옷이랑 속옷 좀 벗어두지 말라고 수백 번 말했는데, 그 사소한 요청을 본 인은 얼마나 잘 지키는지 모르겠다. 쓰고 난 축축한 수건은 세탁하기 전까진 좀 말리고 모아둬야 냄새가 안 나니 다시 베란다에 좀 널어두라는데 그것도 안 지킨다. 그걸 걸고넘어 지자니 설거지 문제랑 그건 별개인데 왜 끌어 들이냔다. 음, 그렇긴 하지만 나는 왠지 지기가 싫어서 이것저것 다 걸고넘 어진다. 마침내는,
“그깟 설거지 그냥 앞으로 밥 먹자마자 당장 일어나서 죄다 해버리면
이런 일이 없을 테니,
저것도 지금 내가 당장 하러 가면 되겠네!!”
소릴 지르며 부엌으로 갔다. 감정에 호소하며 눈물까지 흘 려주었더니 결국은 달콤한 승리를 맛볼 수 있었다. 그는 내 가 그릇을 집어 던지다시피 하며 시끄럽게 설거지를 하는 사 이 아이를 욕조에서 건져서 목욕시키며 같이 목욕하고 돌아 왔다. 그리고 미안하다며 먼저 사과의 손길을 내밀었다.
진작 그럴 것이지, 짜식이. 꼭 눈물을 흘리게 만들어요.
짧다면 짧지만 길다면 또 긴 30 평생을 다른 부모 밑에서, 다른 환경에서 자라왔는데, 게다가 남자와 여자라는 다른 종 족인데, 같이 살다 보니 미치도록 사소한 부분에서마저 싸움 이 자꾸 생긴다.
‘치약을 중간에서부터 짜도 상관없느냐, 반 드시 밑에서부터 차근차근 짜서 써야 되느냐.’가 우리 둘 다 에게 별로 중요한 이슈가 아닌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 다. 평생 싸울거리 하나가 줄어들었으니 말이다.
치약부터 시작해서 설거지할 때 애벌 헹굼을 어느 정도 수준까지 해놓 느냐부터 싸울 거리가 되니 일상의 수많은 모든 영역이 싸우 자고 보면 모두 싸울 거리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행동 투성이다. 이렇게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 가지고 서로 감정 상하며 싸우고 있다 보면 도대체 결혼은 왜 해서 이 지랄을 하고 있는 가 싶을 때도 있다. 다 큰 성인 둘이 싸우는 데 내용을 가만히 들어보면 쌍팔년도 초딩들 개싸움과 다를 바가 없다. 개초딩 둘이서 초딩보다 더 어린 애도 같이 키우면서 부동산 계약도 하고, 차도 사고, 적금도 들고, 집안 대소사도 해결하며 살아 가야 한다. 살면서 엄청난 결정의 순간들도 함께 해야만 한다.
남편은 은근슬쩍 아이를 이용해 화해를 시도하려고 했다. 나에게 뻔히 들릴 큰 목소리로 말한다.
“엄마가 지금 아빠한테 화나서 등에 로션도 안 발라줄 것 같은데, 딸이 발라줄래?”
귀여운 다섯 살짜리가 쪼르르 달려와 말한다.
“엄마, 아빠한테 화났어?”
설거지를 마치고 싱크대 뒤의 작은 그늘에 숨어 앉아 휴대 전화를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은근슬쩍 남편 등장.
“OO이가 엄마 뽀뽀 한 번 해줘. 화 풀리게.”
그러자 여우같은 지지배가 한술 더 뜬다.
“아빠가 해줘야지~ 아빠한테 화났는데!”
억지로 볼에다 뽀뽀하고 상황을 대충 마무리하려는 남편이 얄미워 얼굴을 있는 힘껏 밀어내는데, 아이가 한마디 더 거 든다.
“엄마! 사과하면 받아줘야지! 엄마가 나한테 그랬잖아!”
어쩔 도리가 없다. 사소한 걸로 치고받고 싸웠다가 사소한 이유로 스리슬쩍 묻혀버리는 일상.
드라마에서는 마치 이런 것이 행복한 결혼생활인 것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누군가와 만나 결혼이란 걸 하고, 평생을 그냥 죽도록 지지고 볶고 살 다보면 아마도 노년의 어느 즈음엔가 서로를 어느 정도는 이 해하거나 혹은 드디어 완전히 포기하여 서로를 받아들이게 될지도 모르겠다. 상대방을 내 입맛에 맞도록 개조하여 같이 산다는 것을 애초에 포기했더라면 더 행복한 결혼생활을 누 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후회하면서. 그러나 그것을 어찌 알리. 살아보지 않고서.
나는 애초에 결혼에 대해 큰 환상이 없었고, 그 누구와 살 았더라도 그 누구가 타인인 이상 같이 살면서 수많은 갈등을 겪으리라 예상했다. 결혼이 ‘내가 선택한 단 한 명의 타인인 배우자와의 평생 동안 지속될 갈등 조정 과정임’을 어느 정도 는 예측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결국 결혼을 해 보기로 결정 한 것도 나이므로, 이 모든 유치한 싸움이 지겹다고, 그렇게 살아가는 과정이 힘들고 짜증난다고 누굴 탓할 것인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내 책임과 의무의 영역으로 들 어온 이 상황을 내가 좀 더 잘 정리하고 조정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일 것이다. 어찌하리오. 저기 저 사람이 내 남편인 것을. 그깟 애벌 설거지가 뭐라고 “그게 그렇게 싫 으면 앞으로는 잘할게. 알겠어.”라고 좋게 말하며 넘어가지 못하고 바득바득 우기고 서럽다고 울기까지 해야 직성이 풀 리는 나를 선택한 것도 너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