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 없음’의 레벨이 더 높아지는 경우는 그 사람이 문자 그대로 ‘재수 없어서’인 경우라고 믿고 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예뻤었다.’
보통의 기준에 예쁘다는 것은 좀 더 어린아이들이나 젊은 여자에게 국한된 표현이니까.
이제는 예쁘다는 표현보 다는 ‘멋진 엄마’나 ‘멋진 작가님’, 또는 ‘글 너무 좋아요!’ 같은 칭찬이 더 좋다.
예쁘다는 단어에는 오직 얼굴이나 외모 그 자체로 보이는 겉모습만을 묘사하는 데 그치는 감이 없잖아 있다.
어릴 때는 자주 듣던 그 칭찬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못생겼다고 놀림받거나 자기 외모가 마음에 안 들어 거울 볼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다거나
매일매일 성형수술을 생각하는 것보다야 나으니까.
또 이놈의 세상은 예쁜 여자에게는 관대하다는 더러운 법칙이 너무 잘 지켜지는 곳이었으니까.
나는 없는 집에서 태어났지만, 외모가 나쁘지 않다는 장점의 덕을 보며 꽤 편하게 살아온 편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칭찬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30대가 훌쩍 넘어서인지 그 단어보다는 ‘외모가 괜찮다.’ 라거나 ‘예쁜 애 엄마’ 라거나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는 말로 대체되긴 했지만.
보통 그런 외모에 대한 칭찬을 하는 것은 남성이다.
누군가 나를 한두 번 보고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안 들기도 하지만, 그 첫인상이라는 게 결국은 외모나 말투, 패션 스타일 같은 단편적인 외부의 모습만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다.
‘네 놈이 날 얼마나 봤다고 평가를 대놓고 하지? 내가 예쁘 건 말건 그건 내 사정이고,
너의 평가를 난 궁금하지도 않고 물어본 적도 없거든?’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꽤 오래 알고 지낸 지인이나 내 글을 읽어 봐준 사람, 내 성 격을 잘 아는 사람들이 하는
외모 칭찬은 진심으로 나를 기 분 좋게 해 주기 위한 것임을 알기에 그렇게 기분 나쁘거나 하지는 않다.
물론 안 하면 더 좋겠지만.
예쁘다고 해줘도 지랄이냐?라고 말할 생각이라면 당신은 그냥 내 책을 그만 읽고 여기서 덮어주면 고맙겠다.
그것이 왜 마음에 안 드는지 설명하는 데 쓸 나의 시간과 노력마저 아까우니까.
주절주절 당신이 왜 틀렸는지 써주고 싶은 마음을 겨우겨우 눌러 담고 다음 단락으로.
타인의 나의 겉모습에 대한 평가가 싫어지기 시작하자, 그 혐오는 나에 대한 반성으로도 이어졌다. 과연 나는 누군가의 겉모습에 대해서 너무도 당연하게 좋아할 거로 생각하며 칭 찬해버린 적은 없었나.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외모에 대해 거리낌 없이 지적해버린 적은 없었나.
아아. 젠장. 너무도 많다. 일일이 말할 수도 없다. 부끄럽기 그지없다.
내가 싫어하 는 그 행동은 나도 많이 해왔던 행동이었다.
그걸 자각하고 나서는 최대한 그 짓을 하지 않기로 의식하며 살고 있는데,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나도 모르게 말이 뇌를 거치지 않고 나와 버리는 경우가 많아서. 더 조심해야겠다.
이런 나이지만 내 딸을 보고 예쁘다고 해주는 평가엔
어쩔 도리가 없곤 한다.
머릿속으로는 그놈의 외모 평가질을 멈추라고 신호를 보내지만, 내 입꼬리는 나도 모르는 새 슬쩍 올 라가 딴청을 부리곤 한다. 어쩔 수 없는 도치맘(‘고슴도치맘’의 줄인 말)이다.
내 아이가 예쁘다는 말은, 아이는 제 부모를 닮으므로 곧 나를 닮았단 말이고, 고로 곧 나도 예쁘다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게 과잉해석이라 하더라도,
여성의 성별을 가진 딸이, 눈에 콩깍지가 씌어 사리분별을 못하는 어미애비가 아니라
제삼자의 눈에도 객관적으로 예쁘다는 것은
‘이 아이가 커가며 최소한 외모로 피해볼 일은 없겠구나, 최 소한의 대접은 받고 살겠구나.’
싶은 안도감을 들게 하는 것 은 어쩔 수가 없다.
그게 참말로 싫지만, 또 한편으론 안심이 되고 다행이다 여겨지는 것이 스스로도 짜증이 나고,
나아가 이 사회에까지 화가 난다.
이런 아이러니한 마음을 가지게 만들어서. 날 늘 이렇게 ‘불편한’ 상태로 살게 만들어서.
앞으로는 나도 다른 집 아이를 칭찬하고 싶거나,
만약에라 도 굳이 평가할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절대 외모에 대해서나, 그 엄마가 입혀준 옷 스타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대신 그 아이가 얼마나 예의 바른지, 공부뿐만 아니라 얼마나 새롭고 다양한 능력이나 재능을 가졌는지, 세상을 보는 눈이 얼마나 예쁜지를 칭찬해야겠다. 그런 칭찬이 그 아이의 엄마를 더 행복하고 뿌듯하게 만들며, 그 아이의 세상을 넓혀 주는 칭찬이라는 것을 늘 인지해야겠다.
그런 현명한 어른이 되어야겠다.
이런 마음은 내 아이를 키워 보아서 알게 된 것이다.
육아라는 게 또 이렇게 나를 한 치 더 어른스러운 어른으로 살아갈 수 있게, 나를 키우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