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MT(투머치토커)와 키보드워리어의 만남

by 박서운과박식빵

결혼이란 얼마나 야릇한 제도인가.

인류를 두 진영으로 나누어 한쪽엔 남자, 다른 한쪽엔 여자를 배치해서

각 진영을 무장시키고는 이제 그들을 합류시키며 “평화롭게 살아보라!”니.

- 에밀 졸라 -



행복한 결혼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 얼마나 잘 맞는 가’보다

‘다른 점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가’이다.

- 톨스토이-




한마디로 정의해서 남편은 야구선수 박찬호 같은 투머치토커,

나는 말보다는 글로 조져버리는(?) 키보드워리어이다. 이렇게나 다른 두 남녀가

결혼까지 골인하게 된 과정에 대해서는 책의 제일 첫 부분에서 이미 말했고,

이번에는 그 이후에 결혼해서 사는 과정에서 서로가 어떻게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였는지,

그 과정이 얼마나 험난했는지 말해보려고 한다.


우리는 2013년 가을에 먼저 법적으로 부부가 되었고, 연말에 영국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1년 뒤 2014년 가 을에 잠시 한국에 나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니 우리가 같이 살기 시작한 지는 이미 만 7년을 넘었다.

(이 글을 썼던 2020년 시점)

7~8년 차 부부 라면 대략 한 번쯤은 권태기를 겪었을 가능성이 크다.

아이를 한둘 낳은 부부는 전투육아로 다져진 기간 동안 ‘남녀’에서 ‘육아동지’로

지위가 변경되어 버리는 부부가 많다. 주변의 부부들을 보면 대개가 그렇다는 말이다.

그런 보통의 예시에 비하면 우리는 꽤 괜찮은 사이를 유지하고 있는 편이다.

이틀에 한 번꼴로 뽀뽀도 하고, 다퉈서 냉전 중이 아닌 경우에 는 수시로 스킨십을 한다.

간혹, 그래서는 절대 안 되지만, 아 이 앞에서 다투기도 하지만 금방 화해하는 편이다.

나는 7년 차가 된 최근에야 우리의 관계가 안정되었다고 아 주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뒤집어 말하자면 지난 6년은 끝없는 다툼과 갈등과 고난의 연속이었다는 뜻이다.

서로의 머릿속 체계가, 그래서 생각하고 말하는 방식이 얼마나 다른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다른지, 좋아하고 싫어하 는 것이 얼마나 다른지, 이제야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상대방을 나의 기준에 적합한 배우자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지난 시간들이

헛된 시간이라고 느껴지면 이제 더는 싸움을 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줄기차게 싸우면서 이제 야 아주 조금씩 터득하게 된 것이다.

‘너’는 ‘내’가 아님을, 너를 내가 원하는 입맛대로 바꿀 수 없음을,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보통의 부부들이 우리 기준에서 들인 이 만 6년 정도의 시간을 제대로 겪어내지 못해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거나 평생을 쇼윈도 부부나 그저 육아동지처럼 지내기 도 하는 것이다.

사랑해서 결혼한 한 쌍의 남자와 여자가 그저 자식의 엄마, 아빠로만 산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으며 어찌 행복할 수 있을까? 아무리 자식이 큰 기쁨을 준다고 해도

그것은 반쪽짜리 행복이고, 그런 부부 사이에서 자란 아이 또한 부부라는 관계의 조합에서만큼은 어떻게 행복해지는 것인지 배우지 못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한부모 가정이나 조부모 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무조건 엇나간다는 것은 아니다. 무슨 말인지 똑똑한 독자님들은 이미 아실 것이다. 지금 주제는 그것이 아니므로 오해를 막기 위한 변명은 접어두기로 한다.


다시 원래 주제로 가서, 남편은 말이 많은 편이다. 한 가지 문제라면 내가 항상 지적하곤 하는 것인데, 무언가 나에게 말해주고 싶거나 나를 관철시키고 싶은 것이 있으면 구구절 절 그 주변 상황과 예시를 말하고 나서 정작 하고 싶은 말을 항상 마지막에, 미괄식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 중간 어디에선가 주의력을 잃고 멍하니 있거나 휴대전화를 뒤적거리기도 하게 되는데,

그러면 또 그 부분에 남편은 섭 섭섭해하거나 화를 내게 되는 것이다.

남편의 그런 말습관을 알게 된 요즘에는 남편이 또 어딘가에 좌초해서 구명보트를 타고 저 멀리 떠내려가는 중인 것 같으면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준다.


“여보,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그러면 남편도 머쓱해하며 주섬주섬 구명보트를 끌고 돌아와 본 배에 싣고선,

하려던 말의 핵심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또 남편은 퇴근하고 돌아오면 함께 저녁을 먹으며

내가 조 잘조잘 그날 있었던 일을 말해주길 바랐다. 그러면서 하루 중 자신에게 있었던 일도 이야기하고,

그렇게 서로의 하루를 나누기를 바랐다. 하지만 나는 오랜 시간 동안 그의 의도를 잘못 파악했다.

긴 시간 동안 전업주부로 또는 파트타임 일만 하며 반 전업주부로 살면서

나도 모르게 피해의식이 생겼던 것 같다.


‘아니, 내가 오늘 집에만 있었던 거 알면서 저러는 건가?

자기 회사에서 일할 동안 나 누워서 TV나 본 걸 말하라는 건 가?


라고 지레 오해하며 재빨리 두뇌를 회전시켜 약간의 거 짓말을 보태서 바쁘게 지냈다고 이야기하거나

서둘러 그 주제를 마무리해버리곤 했다. 그러면 또 남편은 서로 이야기가 너무 없다며 아쉬워하거나

서운한 기색을 내비치곤 했는데, 그런 서로 간의 오해가 몇 년이나 이어지곤 했다.

그리고 이 제야 상대방의 의도를 잘못 해석하지 않게 된 것이다.


내가 키보드워리어라는 것은 내가 어른이 되고부터 무의식 중에도 늘 작가의 꿈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시사하기도 한다. 나는 남편과 달리 말하는 것을 즐기지도, 잘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책 읽는 것은 좋아했고,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늘 부러웠다.

대학생 때는 신문기자가 되고 싶어 잠시 언론고 시 준비를 하기도 했다.

결국은 에세이 작가가 되었지만, 언 젠가는 장편소설과 드라마 시나리오도 써보고 싶다.

내가 글을 잘 쓰고 싶었던 건 말을 잘하지 못한 데서 출발했다.

내 머 릿속에 있는 수많은 생각을 잘 표현하고 싶은데 말로는 도저히 그게 안 되는 거다.

그래서 10여 년 전부터 책과 영화에 대한 리뷰를 블로그에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줄 두 줄, 한 문장 두 문장으로 내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하지만 그런 일상적인 글쓰기가 진짜로 일상이 되기 시작하자 글쓰기가 점점 재밌고 어렵지 않게 되었다.

마침내 이제는 글이 아니고서는 나를 표현하기 힘든 지경이 되었다.


아직 글로 내 마음을 다 표현할 만큼 필력이 좋은 것은 아 니지만, 최소한 한 문장을 쓰기 위해

타자기 위에서 초조한 듯 손가락을 탁탁 떨며 괴로운 것은 아니다.

이제 나는 글을 쓰기 위해서 그저 블로그나 한글 프로그램을 켜놓고 키보드 위에 손을 얹어놓기만 하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 10년이 걸 린 것이다. 멋진 글을 쓰는 것과는 별개로 일단 나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나만의 수단을 갖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각종 SNS를 하며 키보드워리어로서의 기질을

마음껏 뽐낼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사람을 웃기고 싶은 개그본능이 몸속에 꿈틀거리는데,

대면하고는 차마 그 기질이 제대로 발현되질 않는다. 하지만 위트 있는 댓글이나 글로

사람들을 웃기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 큰 만족을 주었다.

이런 나의 성향과 재능을 남편이 인정하고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주기까지 그 역시 나처럼 꼬박 만 6년이 걸린 것이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이 떠오르면 반드시 그때 해야 한다.

새벽 3시라도 일어나 머릿속에 떠도는 생각을 글로 정리해야 잠을 잘 수 있다.

3일 밤낮을 지새우다시피 한 상태라도 그것을 끝내야지만 침대에 누워 꿀잠을 잘 수 있다.

남편은 일신상의 큰 문제나 고민이 없는 한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잠드는 남자이다.

그런 평범한 남자가 이런 비범하고 예민한 아티스트적 감수성을 가진 나라는 대단한 여자를

어찌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핫하하. 그나마 남편이 머리가 똑똑한 편이라 6년밖에 걸리지 않은 것이라고 칭찬해주고 싶다. 다시 말하는데 칭찬 맞다.


그리하여 투머치토커와 키보드워리어는 같이 산 지 7년 차가 되어서야 행복하게 여생을 보낼 수도 있는

수많은 방법 중 하나를 터득했다. 그것은 그냥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이 해하게 되는 여정이었고,

참말로 험난했다. 하지만 투머치토 커와 키보드워리어라는 기질은 우리가 가진 수많은 기질 중

하나일 뿐이다. 나머지 것들은 아직 발견해 가는 중이다.

어차 피 같이 사는 동안 상대방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한 사람은 바로 하나의 우주라, 나 역시도 나 자신이라는 우주를 모두 탐험해 보기가

웬만큼 비범한 사람이 아니고서 야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의 우주 구석구석을 알아내고, 가뿐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이 세상을 떠나는 것.’

그것이 내 인생의 목표이다. 나 자신이라는 우주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것.

나의 이런 성향을 남편이 더 잘 알아주고 지 지해주면 좋겠다.

그러면 나는 우주 탐험을 마음껏 할 수 있게 지원해 준 대가로

(언젠가 될) 베스트셀러 작가의 풍족한 인 세를 기꺼이 그와 나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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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ㅋ



이 글은 2021년 출간된 <이혼하고 싶어질 때마다 보는 책>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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