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웬일인지 책을 쭉쭉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결혼한 지 10년 차인데 이 남자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남편이 다 읽고 나서 나도 읽기 시작했는데, 세상에. 소설이랄 수도, 에세이랄 수도 없는 모호한 경계에 있는 이 이야기는 특별한 문학적 기교나 기승전결 따윈 없지만 너무나도 줄줄 잘 읽히며 책장을 넘기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인스타그램에 책리뷰를 짧게 올렸더니 제목이 재밌다거나, 본인도 읽었다는 사람들이 많았다.이후에 다른 도서관에서 이 책을 읽고 있는 남편 나이 또래의 남성을 몇 번 발견하기도 했다.
나는 나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찬 두 권의 에세이를 출간하고 난 후 종종 일상 글을 쓰긴 했지만.. 새로운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된 글을 써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우리 부부는 항상 우리가 남들(우리처럼 서울에 살며 한창때인 30~40대 부부) 보다 게으르고, 덜 열정적으로, 덜 치열하게 대충 살아왔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나태한 서로의 모습을 비난하며 싸우는 일도 많았다.
책 속의 송 과장은 치열하게 살아온 남자였다. 내 남편도 과장 직급인데.. 그는 부산 뒷골목에서 태어나 지방의 국립대를 졸업했는데 지금은 번듯한 대기업에 다니고 있다. 은행지분이 99.99999%여서 매달 대출이자 내느라 외식 한번 할 때도 발발 떨긴 하지만 뭐어쨌거나 운이 좋아서 서울에 집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는 정말 대충대충 덜 치열하게 살았을까? (나는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ㅋ)
우리는 함께 남편의 과거사를 한번 훑어보았다. 충분히 재밌는 이야깃거리가 될 만했다.
심지어 극소수의 누군가에겐 귀감이 되거나 혹은최소한은 충분히 공감이 될만 해 보였다. 그는 자수성가해서 대성한 사업가도 아니고, 전문직 종사자도 아니고, SKY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그것은 경제적 능력이 전무하다시피 한 나를 만나 건사하느라 그만의 특별한 생활력이 극대치로 발휘되어서인 듯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