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가고 어느새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시작되고 있었다. 이번에는 정말 될 것 같아서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리려던 것이 어느덧 7개월이나 지나버린 어느 날, 영국 회사에서 드디어 스폰서십 넘버를 받았다는 연락이 왔다. 그 번호 하나가 뭐라고, 그걸 받는데 아까운 청춘을 반년 가까이 날렸지만, 이제 드디어 다시 영국 땅을 밟게 되었구나 생각하니 가슴이 설레었다.
영국에서 일하게 될 곳은 슬로바키아에서 일했던 한국기업의 영국법인이다.
대학 4학년 때 한 협회에서 진행하는 글로벌 인턴과정에 선발되어 해외 인턴을 하게 되었는데 그곳이 그 회사의 슬로바키아 법인이었고, 인턴을 마치고도 쭉 정직원으로 일하게 되었던 것이다. 몇 년을 브라티슬라바에 있으면서 늘 영국에서 일할 기회를 노렸다. 이십 대 초반에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가서 1년 정도 살았던 것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었고, 이왕 외국에서 계속 살 거라면 영어권에서, 좀 더 큰 시장이 있는 선진국에서 일하는 것이 커리어에도 더 좋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마침 영국법인에 빈 포지션이 생겼고 지원하여 면접을 보고 합격했던 것이다. 합격을 하고도 비자 발급 때문에 시간이 너무 지났지만, 어쨌거나 이제 정말 영국으로 가서 새로운 인생을 살 거라 생각하니 가슴은 꿈으로 부풀었다. 어학연수 시절에는 런던과도 한참 떨어진 체스터 촌동네에 있었지만, 영국법인은 런던 근교에 있었기 때문에 진짜 런더너처럼 멋지게 한번 살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연에게 드디어 비자가 나왔다고 말했다. 교제를 시작한 지 3~4개월 된 무렵이었다. 내가 비자를 받으러 한국에 잠시 들어온 걸 알고 시작한 만남이었고, 겉으로 매번 말하진 않았지만 애타게 기다리는 걸 알고 있었기에 수연은 진정으로 축하해 주었다. 드디어 영국으로 간다는 사실은 기뻤지만 우리 둘 사이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은 스물아홉의 동갑내기 커플이 한국, 영국 간 장거리 연애를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1년에 한 번 정도 만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헤어질 가능성 또한 크다고 봐야 한다. 이제 정말 영국으로 가게 되었는데 내 머릿속은 다시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스물아홉, 주변에는 결혼한 친구들이 거의 없는 나이였다. 아직 결혼이 급한 나이는 아닌데, 수연과 이대로 멀리 떨어졌다간 언제 다시 결혼할 만할 여자를 만날 수 있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슬로바키아에서 가족, 친구 하나 없이 혼자 생활하며 외로웠던 몇 년을 생각하니 더 그랬다. 고민 끝에 나는 수연에게 같이 영국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당장 결혼을 할 생각까진 없었는데, 수연의 입장에서는 남자친구를 따라 먼 타국까지 가서 같이 산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리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정신을 차리니 나는 어느새 수연에게 결혼해서 같이 영국에서 살지 않겠느냐고 말하고 있었다. 비자가 나왔으니 하루라도 빨리 와서 출근하라는 압박 때문에 날짜를 잡아 티켓팅을 했고, 남은 시간은 한 달 남짓, 출국 날짜는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었다.
수연도 나와 헤어질 마음은 없었는지, 우리는 곧 서로 멀리 떨어지게 될 거라는 애틋한 분위기에 휩쓸린 것인지 아직도 미스터리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얼떨결에 결혼을 약속하게 되었다. 다음 해에 한국에서 결혼식을 하기로 했는데, 어차피 할 거라면 굳이 미룰 이유가 있느냐는 합의에 도달했고, 수연이 합법적으로 6개월 이상 같이 영국에 머무르려면 배우자 비자를 받는 것이 낫기에 우리는 사귄 지 5개월 여만에 혼인신고서에 도장을 찍고 말았다.
그때 만약 한국에서 수연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때 만약 결국 영국 비자가 안 나왔다면, 그때 만약 영국으로 옮기지 않고 슬로바키아에서 계속 일했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부푼 꿈을 안고 영국에 도착했고 두어 달 뒤 비자를 받고 영국에 온 수연과의 신혼생활이 시작되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영국까지 날 따라 이 먼 곳에 온, 이제 아내가 된 수연에겐 듬직한 남편이 되어야 했다. 그간의 마음고생은 어느새 잊히고 한국에 몇 달간 잠시 다녀온 것 같은데 나는 법적으로 유부남이 되어있었다. 어깨가 무거워졌다. 그리고 이어진 영국에서의 삶은 생각보다 더 녹록지 않았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