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의 어느 봄날, 나는 서울에 있었다. 지난 몇 년을 한국 사람들은 잘 모르는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에서 뼈에 사무치게 외롭게 보내다가 근무지를 영국으로 옮길 기회가 생겨 지원했고, 면접에 합격한 뒤였다. 면접에는 붙었지만, 마지막 관문이랄 수 있는, 까다롭기로 유명한 영국 취업 비자 준비 때문에 잠시 한국에 들어온 참이었다. 대전 본가에 있다가 비자 관련 준비를 하거나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가끔 서울에 갔는데 그날은 저녁에 당시 서울에 살고 있던 대학 동기, 후배들과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합정이었나 신사였나 잘 기억나지 않는 서울의 어디 번화가였다. 모임 시간이 가까워지자 그날 모이기로 한 몇 명과의 단체채팅방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지하철을 타고 가 목적지에 내리니 동기 여자애인 수연이 제일 먼저 도착해 몇 번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알람이 왔다.
수연은 내가 졸업학기에 인턴생활을 슬로바키아에서 하게 되어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 가끔 여럿이서 어울려 술도 마시고, 가끔은 둘이서 밥도 먹곤 했던 친한 여자 동기생이다. 부산의 어느 작은 회사에 취직하여 다니다가 서울로 이직했다고 들었다. 수연뿐 아니라 오늘 같이 만나는 동민, 후배 민성, 연주까지 모두 몇 년 만에 얼굴을 보는 거다.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지하철 출구를 나서 계단을 오르는데 저 앞에 혼자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는 수연의 얼굴이 보인다. 다가가자 수연도 나를 발견하고 환하게 웃었다.
“야! 정수연!”
“오~ 김민준! 이게 몇 년 만이냐. 잘 있었냐? 잠시 한국 들어온 거라며?”
몇 년 만에 본 수연은 여전했다. 여전히 예뻤다는 말이다. 오랜만에 만나니 반가운 마음에 대학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어학연수와 군입대, 해외 인턴생활까지 하며 오랜 장거리 연애에 지쳐 대학 시절부터 사귀던 여자친구와는 헤어진 지 오래되진 않았던 시기였다. 해외 생활을 몇 년 하다 보니 마음에 맞는 인연을 만나기도 어렵고, 특히나 동유럽 국가에서 한국 여성을 만나는 일은 더 어려웠다. 비자 발급 상황에 따라 한국에 몇 주 혹은 몇 달이나 머물게 될지 알 수 없었지만 잠시 스쳐가듯 하는 연애라도 몹시 고픈 시점이었다.
“와~ 서울 물 좋나 봐? 얼굴 좋아졌네? 야, 너 기억나냐? 나 슬로바키아 있을 때 잠시 영국 놀러 갔었는데 그때 너도 영국에 있었잖아. 얼굴 좀 보자고 런던 오라고 했더니만 안 오고!”
“아, 미안미안. 그때 내가 진짜 제정신이 아니었어. 일도 너무 많고, 있던 데가 런던이랑 엄청 멀어서 주말에 혼자 가기도 어려웠고.”
두어 해 전, 수연은 부산에서 다니던 회사에서 영국으로 출장을 가서 6개월 정도 지냈었다.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에 있던 나는 가까운 프라하, 비엔나 등에 자주 다니다가 그것도 지겨워 어학연수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영국에 휴가차 간 적이 있었다. 당시 영국에 가 있던 수연과의 깜짝 만남을 생각하고 연락했으나 무참히 무시당했었다. 무려 내가 런던까지 가겠다는데 기차 타고 런던까지만 오면 만날 수 있었는데, 섭섭하기도 하고 못내 자존심이 상하기도 해서 그 뒤로 연락을 뜸하게 하다가 이삼 년 사이 거의 연락을 안 하고 지내던 참에 이렇게 서울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몇 년 만에 수연의 얼굴을 보니 섭섭하고 자존심 상했던 마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왠지 기분이 좋아져 실실 웃고 있던 나를 한참 뒤 술기운이 조금 취해서야 깨달았다. 그 후로 종종 서울에 별 볼일이 없는데도 다른 친구들을 만난다는 약속을 만들어 서울에 갔고, 수연을 불러내 밥을 먹고 술을 마셨다. 잦은 야근에 지쳐있던 수연도 흔쾌히 나와 같이 시간을 보냈다. 두어 달이 훅 지나갔다.
나는 스물아홉이었다. 아직 결혼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던 나이이긴 했지만, 이대로 다시 영국에 가게 되어 타지 생활을 계속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조급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언제 여자 만나고, 결혼하고, 남들처럼 살지? 영국 가는 건 좋은데, 거기서 내가 운명의 여자를 만날 수 있을까?’
뭐 가끔 한국에 들어오긴 하겠지만, 잠깐잠깐씩 와서 누군가를 만나 사귀고 결혼까지 가는 것이 불가능할 것만 같았다. 슬로바키아에서 혼자 외로움에 몸부림쳤던 숱한 밤들이 떠올랐다. 서른도 안 되었는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사이 한국에 온 뒤 자주 만나고 있던 수연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호감이 먼저였는지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먼저였는지 분간하기 어려웠지만, 어느새 더 자주 연락하고 만나고 싶어 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사귀자고 하자니 몇 달 안에 영국에 갈 텐데, 이 나이에 다시 장거리 연애를 하긴 싫고, 나도 혼란스러웠지만 그런 건 다 모르겠고 일단 질러야만 할 것 같았다.
초여름의 어느 날 좋은 날, 퇴근한 수연과 같이 맥주 한 캔을 들고 성곽길을 걸었다. 한참을 걷다가 뜸 들이다가 겨우겨우 말을 꺼냈다. 말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거의 프러포즈식의 발언이 되고 말았다.
“있잖아. 내가 영국 곧 갈 거 같긴 한데. 요즘 생각을 해보니까... 나는 또 그렇게 외국 나가면 언제 여자 만나서 언제 결혼하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거기서 얼마나 살게 될 지도 아직 모르고, 다시 한국에 올 수도 있겠지만. 내가 한국에 있을 때 누굴 만나 나중에 결혼까지 하게 될 수도 있잖아? 결혼해서 같이 영국에서 살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 뭐 당장 돈을 많이 벌 수는 없겠지만, 작은 집도 사고, 차도 사고, 거기에서 그렇게 살면 어떨까 생각이 들더라. 아, 그러니까 말이야... 갑자기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나랑 결혼하자는 게 아니고! 일단은 그러니까... 나랑 한번 만나볼래?”
수연은 왠지 내 고백 아닌 고백을 예상했다는 얼굴이었다. 살짝 놀라는 척을 해주긴 했지만, 한참을 대답 없이 웃고만 있었다. 누군가에게 그런 고백을 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막상 말을 내뱉고 나니 더 떨렸다. 9년을 친구사이로 지냈는데, 여기서 거절당하면 다시 친구도 못하는 건가. 어떡하지 어떡하지 생각하며 어색한 침묵을 뒤로한 채 둘이서 올라왔던 길을 돌아 내려갔다. 헤어질 무렵, 수연은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동갑내기 수연의 입장에서도 스물아홉에 몇 달 뒤 외국으로 떠나버릴 사람과 교제를 시작하기에는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일주일쯤 뒤, 우리는 다시 만났고, 수연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교제를 시작했고, 그 뒤로도 몇 달간 비자 상황에 진척이 없어 애를 태우며 여름을 보냈다. 반백수였던 터라 시간이 많아 마음껏 데이트를 하긴 했지만, 한국에 돌아온 지 어느새 반년이 흐르고 있었다.
눈앞에 서른을 앞두고 있던 무작정 일 년이고 기다릴 수는 없기에 끝내 비자가 나오지 않으면 영국행을 포기해야 하나 갈등의 기로에 놓였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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