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그 누가 해외취업이 최고라고 했나

살아남아야 한다.

by 박서운과박식빵

회사에 출근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아 여기에 내 자리는 없구나.'


판매도 잘 되고 유럽에서도 가장 큰 축에 속하는 영국법인에는 서너 명의 한국본사에서 온 주재원과, 현지에서 채용된 현지채용인(영국 거주) 한국인 대여섯 명 정도가 있었다. 나머지 백여 명은 영국인이다. 나의 직속 상사 이름은 헬렌. 나보다 열 살 정도 많아 보이는 싱글 백인 여자다. 다른 회사에서 Regional Manager로 오래 일하며 현장 경험을 익히고 우리 회사에 왔다고 한다. 우리 팀에는 나보다 두 살 많은 한국인 남자가 있었다. 영어 이름은 루카스. 한국에서 체대를 나왔는데 영국으로 석사유학을 오면서 영국에 눌러앉아 취업하게 된 케이스라고 한다. 이미 영주권을 갖고 있는 친누나가 런던에 집을 샀고 같이 살고 있다고 한다.


나는 석사학위가 없지만, 더 어릴 때 일을 시작해서 경력상으로는 내가 더 위인데, 루카스가 나이가 더 많고, 이미 헬렌을 잘 파악해서 팀 내에서 더 경력에 도움이 되는 업무를 맡고 있었기에 나에게 남겨진 일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일뿐이었다. 한국 본사에 보고하는 영국 보고서들을 번역한다든지 실질적으로는 아무 권한이 없는 본사 주재원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일이라든지. 물론 마케팅팀이나 AS팀이나 다른 팀 사람들과 일하며 영국 국내 업무도 일부 하며 슬로바키아에서는 못 해봤던 큰 시장이 돌아가는 방식이라든지, 숫자들, 마케팅에 대해서 배울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나의 위치가 굉장히 애매한 것은 사실이었고, 그것은 직접 가서 겪어봐야만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이곳에서 일하기 위해 지구 반대편에서 왔는데, 정말 이게 내가 그토록 원했던 일의 실체인가?


거기다 오전 9시부터 퇴근시간 오후 5시 30분까지 8시간 반 동안 온종일 영국영어를 들어대야만 하는 것은 생각보다 큰 고역이었다. 군대도 다녀오기 전에 놀다시피 다녀온 어학연수에서의 경험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영어야 점차 익숙해지긴 하겠지만, 한 달 반이 지나 수연이 들어오기 전에 같이 살만한 집을 알아보고 계약하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영국 대졸초임보다 높은 연봉 수준으로 연봉계약을 했지만, 막상 영국에 와보니 마트에서 장 보는 것과 핸드폰 요금을 제외한 모. 든. 것. 이. 한국에서보다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세금과 공과금 등 매달 드는 고정비용을 제하고 나서 한 달에 쓸 수 있는 가용범위 내에서 원베드룸 플랏 렌트비 범위를 좁혔나가니 절대 한 달에 1,000파운드를 넘기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러려면 출퇴근 시 드는 교통비를 줄여야 한다. 마트에 장을 보거나 뭔가 배우러 다니려면 수연에게 차가 필요할 것이므로, 회사에 걸어갈 수 있도록 회사가 있는 동네에 집을 구하기로 했다.


'수연이 초반에 힘들거나 외로울 수 있으니까 집에 가서 같이 점심을 먹을 수도 있겠지!'


수연과 영상통화를 하며 집을 보여주기도 하며 집 몇 군데를 보고 결국 한 군데를 정해 계약했다.

계약이 끝날 때 엄한 트집을 잡으며 보증금을 까고 주거나, 해마다 과하게 렌트비를 올리는 악덕 집주인이 많다던데... 제발 좋은 사람이길 간절히 바라면서.



수연은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마음은 쉽사리 무거워지곤 한다.

나라를 옮겨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 것이 힘든 것은 당연한데, 최소 몇 달이 걸린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는데, 나 혼자만 책임지면 되었던 이전과는 상황이 바뀌었으니까. 힘든 마음을 잘 숨겨야겠다 생각한다. 루카스가 계속 텃세를 부리고, 헬렌에게 약삭빠르게 구는 게 다 보이는데도 아직 입지가 없는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승진은 할 수 있을까? 연봉은 얼마나 오를까? 나중에 아기를 낳게 되면 계속 내가 먹여 살릴 수는 있을까? 그 엄청난 월세는 언제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

고민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그래도 그녀가 오는 날이 기다려진다. 우리에겐 오직 둘뿐이다. 빨리 보고 싶다. 한국에서 나 없이 내년에 할 결혼식 준비를 다 해놓고 오려니 그녀도 요즘 바빠 보인다. 나 없이 양가 부모님 모시고 상견례를 하게 만든 것도 미안하다. 아무쪼록 무탈하게 잘 해결하고 와야 할 텐데. 수연이 오기 전에 어떻게든 회사에 더 녹아들어 봐야겠다. 퇴근하고 오면 지쳐서 쓰러지지 말고, TV 계속 틀어두고 영어 공부라도 해야겠다. 뭐 어떻게든 길이 있을 거야. 내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다르긴 하지만, 내가 누군데. 이까짓 쯤이야. 고단한 하루가 지난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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