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런던 한복판에서 쓰러지다.
그리고 아빠가 되다.
고민과 번뇌와 쪼들림 속에서도 간간이 신혼의 기쁨은 있었다.
회사에서 잔뜩 열이 뻗친 대로 들어와도 저녁이면 수연과 술 한잔을 기울이며 신동엽과 성시경이 나오는 한국 연애 상담 프로그램, <마녀사냥>을 보며 낄낄대기도 하고, 뭐 우짜던동 여기도 유럽은 유럽이고 영국의 노동법을 따르며 무엇보다도 "야근=일머리 없어서 늦게까지 남아서 일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기에
5시 반이면 칼같이 퇴근하여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릴 수 있었다.
주말이면 미세먼지 따위 없는 상쾌한 공기를 마구 느끼며 런던의 명소를 쏘다니고,
가끔은 연차를 내어 잉글랜드 곳곳을 여행하기도 했다. 없는 돈을 그러모아 저가항공을 예약하고 저렴한 가성비 숙소를 찾아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벨기에 등 유럽 곳곳을 여행 다녔다.
회사에 머무는 시간이 한국의 직장인들만큼 길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오직 회사 밖에서의 삶만이 내가 살아있다고 느끼게 해 주었기에, 숨통을 틔어주었기에, 그나마 유럽 땅덩어리에 살고 있다는 장점을 부각해 주었기에 더 여행을 다니는데 사력을 다하곤 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가 어느새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릴 가을이 와버렸고,
짧게 2주간 한국에 다녀왔다. 별다른 일은 없었지만, 지친 회사생활 틈 속에서 1년 만에 고국에 가서 한국말을 듣고, 한국어 간판을 보고, 익숙한 음식들을 먹고, 가족과 친구들을 보고 돌아오니
다 포기하고 한국에 확 돌아가버리고 싶은 마음이 다시 굴뚝같아졌다.
사실은 부모나 친구들에게 굳이 다 말하진 않았지만 그 짧은 한국 일정 중에 결혼식 준비를 하면서
면접을 보기도 했다. 혹시나 싶어 서류를 넣었다가 마침 한국에 가는 일정에 맞게 면접을 보자는 곳이 있어서였으나 갑자기 영국생활을 접을 만큼의 큰 메리트는 없어 한국행은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
영국으로 돌아와서는 본격적으로 수연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게 정확히 언제쯤이 될지는 현재는 알 수 없지만, 우리가 영구 귀국하게 될 경우를 생각해서
수연이 영국에서 학위를 따지 않고는 영국에서 취직하는 것이 어렵다면,
한국에 돌아가서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이다.
그때부터는 수연과도 가끔 다투는 일이 많아졌다.
수연은 어마어마한 학비를 감당할 여유도 없고, 그렇다고 이 나이에 부모님 도움을 받기도 싫고, 이 나이에 다시 하고 싶은 공부가 딱히 있지도 않기에 대학원에 가는 것이 싫다고 했고, 공무원 공부는 적성에도 맞지 않고, 언제 돌아가 응시할 수 있을지도 모를 시험에 대비해 해외에서 죽어라 공부하는 것도 싫다고 했다. 그렇지만 결국 수연은 내 의견에 져 준 것인지, 본인도 결국 그것밖에 답이 없다고 생각한 것인지 한국에서 공무원 수험서를 배송받아 인터넷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우리는 가끔 저녁을 먹고 동네 한 바퀴를 돌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야, 저기 부동산에 붙은 광고 좀 봐. 30만 파운드면... 계산 좀 해봐라. 대체 얼마냐 저 집이? 5억쯤 되나? 서울이나 여기나 집값은 역시 살벌하구먼... 그래도 여긴 런던 안도 아니고, 방 3개짜리 2층집이면 싼 건가? 아니지 저거 플랏(빌라 같은 저층 아파트)인가? 아오 모르겠다. 다 무슨 소용인가 어차피 못 사는데. 우리가 콘로이(집주인)한테 갖다 바치는 돈만 일 년에 얼마야~"
"그러게. 진짜 대전에 말해서 어떻게 좀 도움 받아서 여기서 집이라도 사야 되나. 집값을 해결하지 않고는 여기서 절대 오래는 못 살 것 같아. 근데 또 한국 돌아가도 당장은 백수일 테니 진짜 어떡해야 될지 나도 모르겠다. 루카스가 오늘도 겁나 얄밉게 굴어서 확 한 대 쳐버리고 싶었어."
"그 자식은 정말 왜 그러냐. 아휴... 아이고 모르겠다. 이번 주말에는 어디 가까운데 놀러라도 갈까? 확 마. 로마? 파리? 질러버려? 뭐 에어텔 패키지 싸게 나온 거 있나 찾아볼까 집에 가면?"
그런 식이었다. 언제나 답답함을 서로 나누고 임시방편으로 서둘러 분위기가 암울해지는 것을 막았다. 정작 문제의 핵심으로 들어가면 서로의 입장차이와 섭섭함, 미안함이 뒤섞인 감정만 불러일으키고 싸움이 되기도 했으므로.
그렇게 결혼식을 다녀와 어영부영 또 시간이 흘러 봄이 되었고, 5월의 어느 날이었다.
생리 주기가 아주 일정했던 수연의 생리가 일주일이 지나도 소식이 없자 수연은 내심 불안해하며 임신테스트기를 사놓았다.
테스트를 해보기 전날 밤에 우리는 와인을 벌컥벌컥 마셨다. 왠지 정말 아이가 생긴 것만 같아서 정작 테스트기의 두 줄을 두 눈으로 보고 나면 최소 1년은 둘이 술 한잔 기울이는 소소한 즐거움마저 없어질 것이기에.
인터넷에서 봤다며 만약 정말 임신 초기라면 이제 고작 세포분열하는 단계라 술 한두 잔 마시는 것은 괜찮다며 시작해서 결국은 와인 한 병을 둘이 모두 나눠마셨고,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우리가 정말로 곧, 부모가 될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내 나이 서른 하나, 이미 같이 산지 2년 차가 되어 가고 아빠가 되어도 전혀 이상할 나이는 아니지만,
계획에 없던 임신 소식은 기쁨과 동시에 약간의 불안함과 함께 이미 힘겨운 내 어깨를 짓누르기도 했다.
'내가 아빠가 된다니! 딸일까 아들일까?! 너무 신기하다. 아직은 전혀 실감이 안 난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면 정말 내 월급으로 셋이 영국에서 계속 살 수는 있을까? 우리가 영주권이 아직 없으니까 아이도 비자를 받아야 여기서 살 수 있을 텐데... 일단 5년을 채울 때까지는 어떻게든 버텨야만 하는 걸까. 영주권을 받으면 이 거지 같은 회사를 때려치우고 다른 데로 갈 수도 있으니까. 만약 여기서 낳고 그 사이 참지 못하고 한국에 돌아가게 되면 아이 키우는데 돈이 많이 필요할 텐데... 어떻게든 백수 상태인 기간을 줄여야만 할 텐데...'
머리가 복잡한 순간이 많았지만, 어쨌거나 아빠가 된다는 일 자체는 신비롭고 신나는 일이었고, 병원에서 공식적으로 임신 확인을 한 뒤에는 수연의 입덧이 지옥문 수준이라 다른 걱정은 할 새도 없을 만큼 정신없이 아홉 달이 또 훌쩍 흘렀다. 수연은 아주 잠시 하던 공무원 시험 준비도, 꽃집에서 하던 아르바이트도 그만두어야 했고, 몇 달 동안 계속되는 입덧에 고통스러워하며 여름과 가을을 보냈다.
시간만은 그 와중에도 착실하게 제 할 일을 하며 흘러 해가 바뀌어 우리의 아기가 태어났다. 영국 의사 놈들의 만행 덕분에 수연이 굉장히 고생하긴 했지만 어쨌든 아이와 수연은 무사히 퇴원했고, 대사관을 통해 출생신고를 하고 여권도 만들었다. 아이가 해외에 나갔다가 다시 영국에 돌아와야 할 상황이 생기지 않는 이상 당장 비자를 받아야만 할 필요는 없었기에 신생아 시절은 초보 부모의 허둥거림 속에 또 바람같이 흘러갔다.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지만 제대로 자는 것과 먹는 것도 힘든 시기이기에 고민은 본능에 묻히며 가슴속 저 아래 밑으로.. 고이 미루어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 시절 나를 따르던 후배 놈 하나가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영국에 와있다며 연락이 왔다.
"행님~! 런던 근처에 계시다면서요! 저 런던 와있어요. 들으셨어요? 밥 한번 사주세요! 회사 얘기도 좀 해주시고요. 우와 완전 부러워요. 영국에서 일하다니 완전 런더너!"
속이 타들어가는 스트레스와 내 실상도 모르는 후배한테 내 사정을 일일이 말할 수도 없거니와 꿈과 희망을 품고 영국에 건너온, 아직 졸업도 안 한 후배한테 속속들이 그런 걸 말해줄 필요도 없기에 나는 흔쾌히 그러겠노라 약속했다.
약속 당일, 이제 막 신생아 티를 벗은 아기를 혼자 보고 있는 수연에게는 미안했지만, 런던 시내에서 후배 진수를 만나 밥을 사주고, 잠시 소화시킬 겸 거리를 함께 걷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어지러움이 느껴지며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고 길바닥에 쓰러졌다. 놀란 진수는 앰뷸런스를 불렀고, 나는 빅벤 맞은편에 있어서 병원 정원에만 나가면 맞은편에 빅벤이 멋지게 한눈에 보이는, 사진 찍기 딱 좋은 곳에 위치해 있는 병원에 누워 영국 의사 놈들이 하자는 대로 이것저것 검사를 받게 되었다.
전화를 받고 놀란 수연이 아직 카시트가 익숙하지 않아 방지턱을 넘기만 해도 빽빽 울어대는 아기를 태우고 후들거리는 손으로 1시간을 운전해 병원으로 달려왔다.
그 병원 앞에 있는 템즈강변에서 1년 반 전에, 간단하게 웨딩 스냅사진 느낌으로 웨딩촬영을 했었는데, 1년 반의 시간이 흐른 후 다시 그 병원에 와 환자 신세로 와 누워있을 줄이야 꿈엔들 알았으랴.
수연은 말했다.
"하. 여기 우리 웨딩 촬영하며 지나온 그 병원이잖아. 그때는 결혼식 하기 전에 여름에. 세상 밝고 예쁜 날씨였는데. 그래도 그 순간엔 행복했는데. 오늘 밤에 여길 이렇게 다시 와서 주차장에서 보자니. 어찌나 스산하고 무섭고, 어두컴컴하던지. 여기 거기 맞지. 너 기억하지?"
1년 반 새 우리는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나는 그토록 오고 싶어 하던 영국에 오만 정이 다 떨어져 나가 있었고, 수연 역시 나아질 기미 없는 해외 생활의 외로움과 앞날에 대한 고민에, 혼자 하다시피 한 힘겨운 임신과 출산, 신생아 육아 시기를 보내며 완전히 지쳐있었다.
내 몸은 수연의 임신 기간 동안 힘들어하는 수연을 보살피느라 억눌려왔던 스트레스가 한 번에 터져 나와 경고등을 울리고 있는 중이었다. 내 몸은 그 이전의 어느 때보다도 더 망가져 있었고, 며칠을 입원해 있다 나오며 나는 결심했다.
'영국을 떠나야겠다.'
-다음 화에 계속-
웨딩촬영
병원 주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