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영국 대탈출 작전
-브렉시트를 피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내 마음은 이미 영국을 떠나 있었다. 이곳을 떠나야겠다 마음먹고 나니, 하루라도 더 빨리 떠나고 싶었다. 영국법인에 온 지 2년 반 정도가 지난 시점이었다. 직장인 신분으로 두 번째 영국 땅을 밟게 되면서, 어떻게든 여기 눌러앉아 오래 살겠다든가,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따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그저 물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예상보다 오래 살게 되면 영주권도 따게 되겠지 생각했고, 어쩌다 무슨 사정으로 한국에 돌아갈 수도 있겠거니 생각했을 따름이었다. 미래를 어찌 알겠는가.
그 무렵, 영국 미디어에서는 온통 '브렉시트'(Britain+Exit의 합성어로 영국의 'EU 탈퇴'를 뜻함.)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영국은 EU를 떠날 것인지 잔류할 것인지 기로에 놓였고, 몇 달 뒤 찬반 국민투표가 있을 예정이었다. 영국에서 얼마나 더 살게 될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나에게 영국의 EU탈퇴란 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렸다. 영국과 유럽놈들의 느려터진 일처리 속도를 봐서는 만약 국민투표에서 찬성으로 결론이 나더라도 실제로 적용되는데 최소 3~5년은 더 필요할 것이기에 그때 생겨날 새로운 문제들은 나와는 상관없을 일로만 느껴졌다. 만약 영국이 정말 EU를 떠나게 된다면, 영국인들이나 영국에 사는 EU국가에서 온 사람들은 지금과 달리 EU국가에 갔다가 다시 영국에 돌아올 때 절차가 더 복잡해질 것이다. 자유롭게 오가던 EU 노동 인구도 줄어들 것이고, EU출신들이 영국에서 일하기가 더 어려워질지도 모르겠다.
회사에서의 불안정한 위치, 커리어 개발의 한계를 절절히 깨닫고 영국 내의 동종업계로 이직을 꿈꾸며 몇 번 면접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스폰서십 비자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한국어가 능통한 한국인이 필요한 한국회사에서는 스폰서십 비용을 대서라도 나를 뽑았지만, 자국민으로도 비슷한 커리어를 가진 사람을 충당 가능한 영국 회사에서는 영국 학사학위도 없는 나를 추가적인 비자 비용까지 대서 뽑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회사에서도 화상면접을 봤는데, 역시 비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최종단계에서 벽을 넘지 못했다. 아주 좋은 분위기로 거의 합격을 예감하며 면접을 봤는데, 마지막에 가서야 비자 Status에 대해 물어봤고, 해결이 안 되면 일할 수 없다며 거절의 말을 들어야 했다. 이미 합법적으로 프랑스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전형 초반에 묻지 않았던 것 같았다.
이직을 너무 쉽게 생각한 걸까. 5년이 금방 흘러갈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생각한 걸까. 내 앞길은 이제까지처럼 창창할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영국 비자를 받기까지 힘들었으니 영국에 가기만 하면 모든 것이 잘 풀릴 거라고 쉽게 생각했던 걸까. 어쨌든 이젠 여길 떠나야만 하겠는데, 그 방법이 보이질 않으니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어린 시절, 갑갑한 여관 카운터에 앉아 자유와 더 넓은 세계를 꿈꾸던 소년은 동유럽을 거쳐 서유럽의 중심지 런던까지 진출했으나 여기에서 그 꿈을 접고, 내가 나고 자란 곳 한국으로.. 이렇게 비참하게 돌아가야만 하는 걸까. 내 꿈은 여기까지인가.
영국과는 달리 슬로바키아 법인은 규모가 아주 작아 내가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았다. 거기서도 주재원 출신 부장님 밑에서 일했지만, 내가 제안한 마케팅 플랜을 직접 실행해보기도 하고, 전체 판매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AS 파트의 일도 접해볼 수 있었다. 당시 슬로바키아 법인은 거리상으로 가까운 체코, 오스트리아, 헝가리 법인과 함께 하나의 권역으로 묶여 관리되었는데, 덕분에 세 나라에 자주 가기도 하고, 그쪽 법인장, 직원들과도 교류가 있었다. 당시 오스트리아에 있었던 황 부장은 사무실에서도, 술자리에서도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사람이 소탈하고 친근해 보였다. 그분이 이번에 네덜란드 법인장으로 새로 부임하여 암스테르담으로 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래도 몇 년 전 좋은 인상을 받은 분인데, 인사차, 인맥 관리차, 전화를 드렸다.
"부장님! 네덜란드로 오셨다면서요. 얘기 들었습니다. 잘 지내시죠? 전 영국법인에 있어요."
"오~ 김민준이. 그래 니 영국 갔다는 말은 들었다. 어때. 할만하냐?"
"아.. 예 뭐... 생각했던 것보다는 조금 힘드네요. 슬로바키아 있던 시절이 좋았던 것 같기도 하고요. 한국 돌아가야 되나... 고민 중입니다. 그런데 제가 아빠가 되었거든요. 갑자기 회사를 관두기가 걱정도 되고 그러네요."
"그래?? 그럼 너, 네덜란드 올래? 안 그래도 내 밑에 있는 한국인 직원 놈이 그만둔다고 해서 새로 뽑아야 하고 골치 아프던 참인데! 어때 한 번 생각해 봐라."
네덜란드?
내 머릿속에서 새로운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사실 네덜란드라는 나라에 대해서 아는 것은 전무하다시피 했지만, 더치는 한 마디도 못했지만, 이제 막 신생아 티를 벗은 딸과 수연을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가 원점에서 새로 시작하는 것보단 바다 건너 바로 옆나라인 네덜란드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만 같았다. 황 부장과는 인연이 있고, 다른 후보자가 없다면 면접을 통과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와는 달리 매니저급으로 승진이 가능한지, 연봉은 얼마나 올려 받을 수 있을지, 네덜란드 물가는 어느 정도인지 같은 현실적인 문제였다. 그리고 수연을 설득해야 했다.
아무래도 영어의 본고장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에 비하면 수연 역시 새로운 언어를 배워야 하는 네덜란드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3년 가까이 살며 이곳에서 소소하게 인연을 맺어온 사람들과도 헤어져야 하고, 또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어야 할 것이다. 나라를 옮겨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수연은 결국은 내 편을 들어줬다.
"네가 영국에서 더 이상 살 수 없다면, 새로운 곳에 가보자.
뭐,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니 부딪혀봐야지."
나는 하루 연차를 내고 암스테르담에 다녀왔고, 몇 번 협상을 거치며 연봉협상을 마무리지었다.
나는 매니저로 승진하여 네덜란드로 가게 되었다.
우리는 영국을 떠나게 되었고, 영국인들은 EU를 떠나는 데에 51.9%의 찬성표를 던져 EU를 떠나게 되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