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헬조선으로 컴백하다
- 5개월 딸과 함께
통장 잔고를 보니 채 천만 원도 없다. 영국에서 2년 반이 넘게 일했는데 돈을 모으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우리에겐 이제 아이도 있는데 계속해서 이런 미래도 없는 생활을 이어나갈 순 없다.
돌아가려면 지금뿐이라고 생각하니 하루도 더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아 졌다. 대전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엄마, 우리 한국 돌아갈 거야. 집 구할 때까지 잠시 대전 집에 있을 수 있을까?"
"뭐?? 갑자기 왜 한국에 온다는 거야?! 회사는?"
"더 이상 못하겠어. 일단 돌아가서 말씀드릴게."
"그래. 오겠다면 와야지. 여기 셋이 있기는 힘들 거고, 작은 아파트 하나 세준 게 있는데 마침 계약 끝날 때가 됐으니 거기 들어가 있어라."
태어난 지 이제 5개월이 된 아이를 씻길 만한 제대로 된 화장실도 없는 모텔에 딸린 방에서 셋이 지낼 뻔했는데, 그나마 정말 다행이었다. 잘 살아보겠다고 결혼 허락받고 수연을 멀리 영국까지 데려갔는데 처가 부모님께는 정말 면목이 없었다. 수연이 대신 귀국 소식을 전했고, 가서 좀 자리를 잡으면 찾아뵈어야지 생각했다.
비행기 티켓을 검색해 보니 카타르 도하에서 한번 경유하면 직항 티켓의 거의 반에 가까운 가격에 끊을 수 있었다. 한 번만 참고 고생하면 한국 가서 취직할 때까지 두어 달 생활비를 아낄 수도 있다. 경유 티켓을 끊고, 한 달간 임시 숙소에 머무를 요량으로 챙겨 온 얼마 되지 않는 짐을 쌌다. 아직 영국에 보관 중이던 가구며 짐들은 연락해서 배편으로 한국 집으로 받기로 했다. 신혼집에서 쓸 요량으로 Ikea에서 저렴하게 산 가구며 접시며 각종 생활용품들을 그것보다 더 큰 운반비용을 들여 한국으로 보내게 될지는 몰랐지만 다 버리고 오기엔 우리 신혼의 추억이 깃들 물건들도 많고, 한국에서 전부 다시 사는 것보다는 낫기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며칠 뒤, 우리는 다시 헬조선에 돌아왔다. 한국은 뜨거운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둘이서 떠났다가 셋이 되어 빈털터리로 돌아왔다.
우리는 말수가 줄었다.
부모님을 뵈니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숟가락 하나, 덮을 이불 하나도 없어서 부모님 댁에 있던 것들을 가져다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이나 친구들에게는 한국에 돌아왔다고 알리지 않았다. 해외취업을 해서 잘 살고 있는 줄로만
아는 사람들에게 실패해서 돌아왔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도 얼른 괜찮은 회사에 취직하면 친구들에게도 연락하고 처가 부모님도 찾아뵈어야겠다 생각했다.
내 머릿속에는 오로지 빨리 취직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대충 아침을 먹고, 구직 사이트를 하루종일 들락거리며 이력서를 썼다.
반가움은 잠시, 대학에 입학하며 10년이 넘게 떨어져 살았던 아들이 지척에 살게 되자 부모님은 하루가 멀다 하고 나를 부르기 시작했다. 볼일이 있으시다고 모텔 카운터를 봐달라고 하신다거나 가끔 영상통화로만 얼굴을 보던 손녀를 직접 보게 되자 수시로 보고 싶어 하셨고 온갖 이유를 들어 집으로 오라고 하셨다.
수연은 시부모의 과한 간섭을 힘들어했고, 내가 구직에 집중하느라 혼자 육아를 전담하다시피 했기에 우리는 자주 다투었다.
이력서를 넣은 곳에서 몇 군데 면접을 봤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고, 속절없이 몇 달이 흘렀다. 괴롭고 좌절할 때마다 영국에서 힘들었던 나날을 떠올렸다. 힘들어서 다 때려치고 싶을때면 그때 그냥 좀 꾹 참고 영국이나 네덜란드에서 계속 버텼다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수연이 힘들어할 때마다, 통장 잔고를 보며 몇 달이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생각할 때마다, 그렇게 싫어서 떠났던 부모님 옆에서 속박받으며 다시 감옥같이 느껴질 때마다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았다. 아무리 그래도 여긴 내 나라이고, 내 가족들이 있고, 이젠 책임져야 할 자식이 있고, 나는 다시 일어나야만 한다고. 한국에 잘 돌아온 것이 맞다고 나 자신에게 되뇌었다.
에어컨도 없이 버틴 뜨거운 여름을 그렇게 견뎌냈다. 한국에 돌아온 지 5개월 정도가 흐른 어느 날이었다. 한국에서 일한 경력이 없어 취직이 정말 어려운 것인지 실패를 여러 번 맛보고 기대치를 낮춰 전국의 여러 회사에 이력서를 넣으며 낙담을 반복하던 중이었다. 오후 5시 무렵, 핸드폰 문자 알림이 왔다.
"귀하의 최종면접 결과가 발표되었으니 사이트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최근 지원한 모든 회사의 지원 결과가 모두 발표나고, 단 한 군데 남은 회사였다. 여기도 떨어지면 이제 곧 연말이라 내년 봄 채용시즌을 기다려야만 했다. 제발 제발 제발.... 떨리는 마음으로 채용란에 들어가 이름을 입력했다.
"축하드립니다! 귀하는 이번 경력직 공채에서 최종합격하셨습니다. 00월 00일까지 채용건강검진을 받으시고........."
수연과 나는 환호성을 지르며 서로 부둥켜안았다. 죽으란 법은 없구나. 그간의 눈물과 지질함과 지지리 궁상과 스트레스가 한 방에 날아가는 것 같았다. 수연과 어린 아기를 데리고 암스테르담을 떠나는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던 가슴속 묵직한 돌이 드디어 내려가는 것 같았다.
내 인생은 이제 다시 시작될 것이다. 서울에서.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