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처음으로 서울살이
김대리의 기쁨과 슬픔
나이 서른 하나지만 한국에서는 처음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다.
대학 졸업도 하기 전에 슬로바키아에서 인턴생활을 시작하면서 첫 직장생활을 유럽에서 시작했고, 결국 한국에 돌아오게 되었지만 야근과 잦은 회식, 군대식 상명하복 문화가 아직 짙게 남아있는 한국 회사생활에 대한 악담을 친구들에게 익히 들어와 조금 긴장되기도 했다. 토종 한국인이지만 4년 넘게 유럽에서 저녁과 주말이 온전히 보전되는 삶을 살았으니 이런 정신상태로는 한국식 회사문화에서 살아남기 힘들지도 모른다.
앞으로의 커리어를 위해서라도 마인드를 고쳐먹고 열심히 해야지,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이 회사에서 무조건 잘 살아남아야지 다짐하며 첫 출근을 했다.
회사는 강남에 있었다. 2호선 라인을 타고 출근할 수 있는 곳에 전셋집을 구했다. 집을 나와 사무실에 도착하기까지 한 시간 남짓 걸리지만, 서울에서는 누구나 감당하는 수준의 통근시간이다. 8시에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을 먹고 8시 50분에 집을 나서던 여유로운 삶은 사라졌지만, 새로운 시작이 나쁘지 않다고 느껴진다. 대전을 떠나 부모님과의 갈등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었고, 수연도 좀 더 마음 편히 육아에 전념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에서는 전세제도가 없으니 다달이 월세를 낼 수밖에 없었지만 전세자금대출을 받아 이자만 감당하면 되니 한 달에 가용할 수 있는 돈도 많아진 것 같다. 전셋집은 주상복합의 29평 아파트이다. 7억 즈음에 거래되고 있다. 언젠가 서울에 집을 살 수는 있을까? 여전히 무일푼인, 이제 막 취직한 사람이 할 고민은 아니지만
숨쉴틈 없이 2호선 열차에 꽉 낀 채로 출근하며 한국에 돌아온 이상 언젠가 정착할 내 집을 사긴 사야 할 텐데 싶은 생각이 든다.
인생은 정말 모를 일이다.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다.
1년 전 나는 지구 반대편에서 답도 없는 미래를 껴안고 한국에 돌아갈 것인가,
네덜란드로 이직할 것인가, 영국에서 몇 년 더 버텨 영주권을 얻을까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지금 나는 2호선을 타며 강남으로 출근하고 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7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가끔 야근과 회식에 찌들어 밤늦게 퇴근하며 어느새 한국의 여느 평범한 직장인이 되어 있었다. 슬로바키아와 영국에서 했던 일이 그래도 경력으로 인정되어 같은 업계에서 대리 직급을 달고 경력직으로 입사할 수 있었다.
제법 큰 회사의 경력직 공채로 들어가니 내 나이 또래의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대부분 서울의 좋은 대학을 나왔거나 종종 해외에서 대학을 나온 사람들도 있었고, 소위 스펙이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나 같은 지방대 출신은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영국에서 일한 경력이 하나의 스펙으로 인정받은 듯하다.
영국에서는 나를 빼고는 거의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거나 영국에서 학위를 받은 사람들이라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고민을 나눌 사람도 공감을 해줄 사람도 없는 무인도에 홀로 있는 기분이었다.
취직에 성공하며 한국에 돌아왔다는 소식을 주변에 전했다. 바쁜 부모님 밑에서 외동으로 자라며 늘 외로웠던지라 친구들을 유독 좋아했는데, 퇴근하고 친구들과 소주 한 잔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좋은지 몰랐다. 회사생활 스트레스나 가끔 수연과 다투는 일이 있어도 소주 한 잔에 털어버릴 수 있었다.
비로소 나는 현실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원래의 내 자리로.
능력껏 열심히 하면 더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사회로. 원래 내가 있었어야 할 자리로.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닌 신분으로.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