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인생의 업 앤 다운

변하지 않는 진리

by 박서운과박식빵

하루하루 평범한 '김대리'로 K직장인 중 하나가 되어 평화로운 나날이 흘러갔다.

부산과 대전에서 학창 시절과 20대 초반을 보내고 해외에서 일을 시작하느라 내가 서울에 산다는 것이 처음에는 뭔가 신기했다. 어느새 자연스럽게 내 곁에 아내 수연과 딸아이가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이 시대의 30대 남자, 이 시대의 가장, 이 시대의 직장인이 되어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내고 있었다.

엄청나게 많지도 적지도 않은 수준의 월급을 받으며 셋이 사는 데에 큰 무리는 없었지만, 맞벌이로 부부 둘이서 함께 대기업에 다니거나 전문직을 가진 사람들의 생활수준에 미치기는 어려웠고 가끔 쪼들리는 기분이 들었다. 아이는 돌이 지나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고, 수연은 이런 생활에 보탬이 되고 싶었는지 아이가 어린이집에 간 사이에 할만한 일들을 해보기도 했지만, 아직 어린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맡길 데가 없어 자주 관두기를 반복했다. 1,2년 전만 해도 한국에 돌아가서 자리를 잡기만 하면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았는데, 어느새 또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고 나니 더 나은 미래를 꿈꾸게 된다. 사람이란 모름지기 그렇다.


회사 동료들을 보니 맞벌이를 하는 사람들을 빼고는 비슷한 처지가 많았다. 옆팀 이대리는 부업으로 스마트스토어를 한다고 하고, 우리 팀 박 과장은 부모님이 물려주신 상가 건물에서 작은 가게를 내어 와이프가 운영하고 퇴근 후와 주말에는 같이 일한다고 한다. 요즘 한창 활황기인 주식투자는 거의 모두가 하고 있다. 점심 먹으면서 주로 주식이나 부동산 이야기를 한다.

요즘엔 아이가 없는 딩크족들도 많지만 우리처럼 아이가 있는 부부는 어떻게든 추가수입원을 얻기 위해 뭐라도 하든지 주식이나, 부동산 공부를 해서 재테크를 열심히 한다.


그 무렵 수연이 둘째를 임신했음을 알게 되었다. 외동으로 자라 최소한 아이 둘은 낳고 싶었던 내 바람이 이루어져 너무 기뻤으나 마음 한편으로 가장의 어깨가 더 무거워짐을 느꼈다. 더 자주 미래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돈을 더 벌어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계속 든다. 우리 부부는 전문직도 아니고, 내가 일류대기업에 다니느라 수입걱정이 없는 것도 아니고 전셋집에 살고 있으니 언젠가 집도 사야 할 텐데, 주변 사람들을 보니 나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 무렵 친해진 송 과장이 자기 동네가 살기 괜찮다며 이참에 집을 사라고 부추기기 시작했다. 작년에 부모님 도움을 좀 받아 무리해서 집을 샀는데 일 년 새 2억이 올랐다며 자랑을 한다.


'누군 집이 필요하지 않아서 안 사나 서울 아파트가 뭐 일이억도 아니고...'


처음에는 현실을 외면하고만 싶어 대충 들어주기만 하거나 무심하게 대꾸하며 말을 돌렸다. 이상하게 이 회사에는 부모덕을 많이 받은 최소 은수저는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많아 서울에 턱턱 집 한 채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았고, 최근 친해진 한대리는 비트코인과 전 회사에서 받은 퇴직금으로 주식을 불려 수십억을 벌었다고 하니 신기하고 부럽기만 했다.

영국에 있을 때는 재테크나 부동산은커녕 신분제도의 하위계층에 있는 느낌이라 그것을 벗어나고만 싶었는데 환경이 바뀌니 관심사도 바뀌게 되었다. 처음에는 관심이 없다가도 회사에서 항상 주식이며 재테크며 부동산이며 그런 이야기만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출퇴근길에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포털에서 아무거나 뒤적거리며 시간을 보내다가 부동산 기사를 찾아보는 일이 늘었다.


언젠가 집을 사게 되면 그때 부모님 도움을 좀 받게 될 수 있으려나 모르겠지만 그러려면 일단 서울 부동산에 대해서 뭘 좀 알긴 알아야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우리 부부는 둘 다 청약통장조차 없었다. 일단 청약통장을 만들고 기간을 채우기 위해 돈을 조금씩 넣기 시작했다. 청약에 대해서 좀 알아보니 결혼기간이 만 7년 이하이면 신혼부부특별청약이란 것에 지원해 볼 수 있다고 한다. 2013년에 혼인신고를 했으니까 이제 만 4년 차로 자격이 되고, '서울에 1년 이상 거주한 무주택자'인 자격요건도 된다. 일단 지역 상관하지 않고 그 무렵 서울에서 분양일정이 뜨는 모든 공고에 지원했다. 나름 꼼수를 부린다고 경쟁률이 덜할 것 같은 애매한 평수에 지원하기도 했다. 다들 되기만 하면 로또라 '로또청약'이라고 부르는데, 중도금 대출도 나올 테니까 일단 되기만 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싶은 심정이었다.

확실히 서울에 살다 보니 주변인들을 보며 눈이 높아진다. 이래서 사람은 서울로 보내란 말이 있는 건가. 대부분 우리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 살고, 대학원을 나와 석사학위까지 마친 사람도 많다. 나도 연봉을 높여 이직하려면 대학원이나 MBA를 가야 되나 싶기도 하지만, 빠듯한 삶에 대학원 학비를 감당할 자신도 없고, 커리어에 어떤 식으로 도움이 될지 확신이 서지 않기도 한다. 아이가 또 태어난다니 안정 욕구가 더 치솟기도 하고 주변에서 하도 부동산 얘기를 많이 들어선 지 요즘은 그런 것만 계속 눈에 들어온다.


청약을 넣은 곳에서 하나, 둘 발표가 났으나 로또는 역시나 당첨되지 않았다. 그래도 새로운 곳이 뜨면 계속 넣었다. 가끔 구직사이트를 들락거리며 업계에서 괜찮아 보이는 곳으로 이직을 꿈꾸며 이력서를 보내기도 했다.

그때부터였다. 뭔가 회사일이 안 풀리거나, 스트레스를 받거나, 쪼들리는 마음이 들면 습관적으로 구직사이트를 헤매며 이력서를 넣었다. 다른 회사에 간들 여기보다 약간 더 높은 연봉에 일이야 거기서 거기로 재미없겠지만, 그냥 지금 회사보다 조금이라도 좋아 보이는 새로운 회사에 이력서를 쓰고 나면 결과 발표가 날 때까지 새로운 희망이 생기는 그 기분이 좋았다. 실망을 반복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뭔가 계속하고 있다는 느낌은 중독적이었고 묘한 안도감을 주었다.


오늘은 얼마 전 넣은 청약의 발표날이다. 평형과 타입별로 경쟁률이 상이하긴 하지만 최소 30대 1에서 200대 1까지 경쟁률이 높은 곳도 있었다. 어제 좋은 꿈을 꾼 건 아니지만 왠지 예감이 좋다. 로또 발표날처럼 어차피 안될 건 알지만 그래도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당첨결과 페이지에 들어가 접수번호를 한자리 한자리 입력했다.


"축하합니다! XX평형 OO타입 청약에 당첨되셨습니다! 계약일정은....."


내 동공은 급속도로 커졌다. 내 생애 이런 문구를 보는 날이 오다니!!?? 믿을 수가 없어서 다시 한번 눈을 비비고 모니터 화면을 보았으나 변함없이 "축하합니다."로 시작하는 문구가 날 반겼다.

세상에. 한국에 돌아와 서류전형, 면접에, 떨어지고 또 떨어지다가 마지막에 포기할 때쯤 이 회사의 합격결과를 들었을 때보다 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낮은 경쟁률의 평수에 지원한 것이 도움이 된 것인지, 그간 영국에서, 네덜란드에서 고생하며 아래로 곤두박질쳤던 내 운이 드디어 다시 상승하는 것인지 우리는 로또청약에 당첨된 것이다.

계약금, 대출금 그런 것 일단 모르겠고, 어떻게든 되겠지. 아직 삽도 퍼지 않은 재개발 지역의 아파트가 3년 뒤면 번듯하게 지어질 것이고, 어떻게든 견디고 버티고 대출을 해결하고 나면 우리는 서울에 집을 가지게 될 것이란 이 말이다. 나는 정말 뛸 듯이 기뻤다. 수연에게도 소식을 알렸다. 수연은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 것 같았다. 우리에게 이렇게 좋은 일이 일어난 것도 처음이고, 아직 실체도 없는 3년 뒤에나 들어갈 수 있는 집이기 때문인 것도 같았다.


우리가 당첨된 아파트는 서울 중심지에 있었고, 늘 그렇듯 고분양가 논란이 있어 당첨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긴 했지만 우리는 계약을 하기로 했다. 이것이 우리 평생의 운을 다 끌어 쓴 것이라 할지라도 이 기회가 아니면 우리가 감히 어떻게 서울의 신축 아파트에서 살아볼 기회라도 생길 것인가. 지금은 고분양가라고 말이 나오지만 3년 뒤에는 최소한 몇 억이 올라 당첨을 포기한 사람들은 피눈물을 흘릴 것이다. 우리는 당첨을 축하하며 축배를 들었다. 아파트 당첨은 애매한 중상위권 연봉을 가진 외벌이 현실과 둘째 임신으로 인한 자녀수 가점, 낮은 경쟁률의 평수에 베팅한 세 박자가 모두 맞아떨어져 굴러들어 온 행운이었다.

신혼부부특별청약에는 부부합산 연봉 상한금액이 있어서 같은 흙수저라 할지라도 중견기업 이상의 맞벌이 부부는 수입 상한액을 넘어 자격요건조차 되지 않았고, 서울에서는 최소한 둘 이상의 자녀가 있어야 했다. 최소 7~8억부터 시작하는 24평 이상의 신축 아파트를 맞벌이하지 않고 대출금을 갚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 이상한 부동산 청약정책은 사실상 수입이 얼마든 상관없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많은 사람들이나 감당할 수준의 집값이었기에 서민층들의 불만도 많고 논란이 늘 있어왔지만, 그런 것은 그 수혜자가 내가 되면 다 필요 없다. 어제까지만 해도 정부욕을 하던 사람도 입을 다물게 한다. 사람은 이기적이다. 사실상 부모 도움 받지 않고서는 어떻게 대출금을 해결하고 집에 입주할 수 있을지 앞이 막막하기도 했지만 이 기회를 잡지 않고는 우리 능력으로는 영원히 집을 사기란 불가능해 보였기에 못 먹어도 고를 외치며 계약을 감행했다. 일단 3년 뒤니까 어떻게든 될 것이다.


인생은 업이 있으면 언제나 다운이 있는 법이다.

청약당첨의 기쁨은 잠시, 3년 뒤 새 집에 살게 될 빛나는 미래는 잠시 접어두고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큰 기쁨은 하나의 큰 슬픔으로 대체되었다. 수연의 뱃속에서 잘 자라고 있는 줄만 알았던 아이가 떠난 것이다. 사실 수연은 지난 임신 기간이 너무 힘들었기에 둘째를 크게 원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생긴 아이에게 마음을 주고 둘을 잘 키워보리라 마음먹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될 마음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 또한 곧 두 아이의 아빠가 될 거란 사실에 막연히 기뻐하고 있었던 참이라 갑작스러운 유산 소식은 양가 부모님을 포함해 우리 모두에게 큰 슬픔으로 다가왔다. 심한 입덧으로 아이와 함께 부산 친정에 가있다 임신 12주 차 즈음 검진을 받을 겸 서울로 돌아왔던 수연은 산부인과에서 아이 심장이 뛰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이다. 뱃속의 작디작은 아이는 엄마 곁을 떠나기 싫었던 것인지 몸 밖으로 나오지 않아 수연은 결국 수술을 받아야 했다.


가끔 뉴스에 나오는 끔찍한 아동학대 뉴스를 보면 다자녀 청약가점을 노리고 일부러 아이를 입양했다가 파양 하는 파렴치한 부모들에 대한 뉴스가 나오기도 했다. 엄마, 아빠에게 잠시 왔다가 청약당첨이라는 큰 선물을 주고 떠난 아이라며 우리는 농담 아닌 슬픈 농담을 하며 서로를 위로했다.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태어나 어느새 세 살이 된 첫아이는 한창 말이 늘어 하루종일 조잘대는데 엄마 뱃속에 동생이 생겼고, 겨울 즈음에 동생이 태어날 것이라고 알려주었었다. 아직 죽음이 무엇인지 유산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는 세 살배기 아이에게는 그저 동생이 조금 아파서 하늘나라로 먼저 갔다고 알려주었다. 그래 여태 그랬듯이 우리 셋이 행복하게 잘 살면 되지. 인연이 있다면 아이는 또 만나게 될 것이다. 나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회사에서 스트레스받을 때면 구직사이트를 들락거리던 일상으로.



-다음화에 계속-






이전 16화13화. 처음으로 서울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