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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식빵 May 17. 2023

15화. 월급이 줄었다!

회사 대탈출 작전

요즘 회사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폭풍과 쓰나미가 몰려오기 전 고요한 태풍의 한가운데에서 그 쓰나미의 정체에 대한 소문만 무성하달까. 여기저기서 수근덕거리는 소리만이 들린다.

그 소문의 정체는 회사가 파산 위기에 처했으며 새 주인 찾기에 실패하면 무시무시한 법정관리체에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소문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이 회사에 입사한 지 어느덧 4년이 넘었다.  슬로바키아, 영국, 네덜란드에서의 4년 가까운 경력을 인정받아 대리 직급으로 입사했고, 작년에 과장으로 승진하여 '김대리'를 탈출, '김 과장'이 된 지 2년 차이다. 이제 뼛속까지 K직장인으로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견디며 이 생활에 완전히 적응해서 그래도 그 속에 소소한 사는 재미를 찾아가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무슨 날벼락인가.

소문이 사실이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이 회사의 태생은 한국이었으나 지난 세월 동안 주인이 몇 번 바뀌어 현재는 몇 년째 인도의 어느 기업이 대주주로 있다. 본디 같은 업계라고 할 수 없는 이 인도 회사는 자본력을 들여 망해가던 회사를 인수했으나 기술력만 쏙 빼먹고 나니 더 해 먹을 게 없다고 판단한 것인지, 자기 능력으로는 십수 년째 이어오던 하락세를 뒤집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인지 이제 와서 발을 빼겠다는 소문이 들리고 있다.


팀장, 부장 이상 임원진급들이야 사실 법정관리에 들어가서 월급 동결되거나 줄도 사원, 대리, 과장급 직원들에 비해 타격이 적을 것이다. 회사는 수년째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었지만, 무슨 놈의 이유에서인지 아니면 노조협상 때문인지 부장급 이상에게 주어지는 자녀 학자금은 수천만 원씩 지급하고 있었고, 대학생 이상의 자녀를 둔 최소 50대 이상의 '라떼'들은 지금 회사를 떠나봐야 더 좋은 회사로 간다는 보장도 없고, 최대한 자리 보전하며 학자금이라도 받는 것이 나을 것이기에  그들은 있는듯 없는듯 지냈다. 정작 그들보다 월급은 훨씬 적지만 한창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30~40대 초반까지의 나 같은 사람에게는 월급이 줄어드면 큰 타격을 받기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정작 직원들에게 공지되는 사항은 없고, 일개 직원들이 팩트체크도 어려운 가운데 회사의 업무 분위기는 축 처지고 이것은 계속해서 악순환을 만들었다.

아무리 회사가 적자라도 매년 최소한 물가 상승률만큼의 연봉 인상은 있어야 현상 유지가 되는데, 사실상 작년에 연봉이 동결되고 맞은 새해에 전해진 이런 흉흉한 소식은 회사 분위기를 더 냉랭하게 만들었다. 발 빠른 일부 사람들은 회사가 정말로 망해 버리기 전에 탈출하기 위해 여기저기 면접을 보러 다니는 분위기였다.


이제 탈출은 지능순인가. 

나도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밤마다 퇴근하면 구직 사이트를 더 구석구석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외국계 회사 노리고 영문이력서와 자기소개서도 손 보고 닥치는 대로 서류를 보냈다. 아무리 그래도 망해가는 회사보다야 낫겠지. 연봉은 지금과 비슷한 수준이거나 조금이라도 높아지면 된다. 다른 조건은 크게 필요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 회사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고, 나를 포함한 직원들은 포털 기사에서 회사 소식을 먼저 접하게 되었다. 회사는 정해진 기한 안에 인수할 새로운 주인을 찾거나 회생절차를 마무리하지 못하면 법정관리에 들어가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겪게 될 것이었다. 구조조정이라 함은 필수인력만을 놔두고 대거 인력을 정리하고 연봉동결이나 삭감 또한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와 동시에 인사팀에서 단체메일이 왔다. 회사 재정상황 악화로 팀별로 순번을 정해 강제휴직에 들어가며 앞으로 3개월간 월급삭감이 있을 것이라는 일방적인 통보였다.

탈출러시가 시작되었다. 


내가 속한 해외영업팀은 내가 입사할 당시만 해도 신제품 출시와 함께 흑자 전환을 꿈꾸며 해외 곳곳으로의 진출을 계획하고 여러 일들을 벌였으나, 예상과 다른 판매부진으로 이것저것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흐지부지된 사업을 겨우 건사하고 있는 분위기였다. 해외에서의 경력 덕분에 이 팀에서 일할 수 있었지만, 이제 다 소용없어졌다.

한국에서 대리, 과장 달고 만 4년 넘게 일했으니 이참에 위기를 기회 삼아 이직을 해야겠다는 다짐이 샘솟는다. 위기를 기회 삼다니... 말이야 좋은 말이지 사실 이것은 생존의 문제이다. 3인가족 외벌이 가장이 월급이 줄거나 휴직에 들어가면 당장 우리는 손가락을 빨아야만 한다.

세상은 가혹하다. 계속되는 평화는 결코 허용하지 않으며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다. 


해는 점점 길어지고 봄꽃이 피기 시작하는 3월.

날은 화창한데 내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퇴근 무렵, 이미 마음이 떠난 회사에서 손에 잡히지도 않는 일을 꾸역꾸역 대충 하고 있었다. 문자 알림이 와서 보니 일주일 전쯤 경력직을 뽑는다는 외국계 기업에 서류를 제출했었는데 면접을 진행하자는 통보였다. 갑자기 얼굴에 화색이 돈다. 큰 회사는 아니지만 같은 업계이고, 합격해서 다니게 된다면 아마 지금 받는 연봉보다 좀 더 높여서 받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얼른 집에 가서 저녁 먹고 면접 준비 해야겠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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