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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식빵 May 18. 2023

16화. 또다시 이직 그리고 세입자의 설움

 잠시 웅크리다

회사에 불어닥친 한파는 21세기 들어 유례없이 혹독했던 역병, 코로나와 함께 찾아왔다.

세상 모든 모임과 여행과 맛난 외식과 즐거움이 함께 사라지기 시작했으니, 연봉 동결과 함께 얼어붙은 월급 통장이 생존에 엄청나게 위협적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월급 삭감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

3개월만 삭감한다고 하며 협상 아닌 통보로 시작되었지만, 3개월 뒤의 미래를 인사팀장도, 허울뿐인 사장도 그 누가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모르면 몰랐지 아마 사정은 더 나빠지기만 할 것이다. 이번에 온 면접 기회를 어떻게든 잡아야만 했다.


이번에 지원한 포지션은 여태까지 해오던 일과는 좀 달랐다.

크게 보면 같은 업계이긴 했지만 여태까지의 일이 제조업 회사의 본사에서 진행하는 큰 가닥으로서 전략, 기획, 해외영업 분야였다면, 면접 볼 회사의 본사는 해외에 있고, 한국 시장에서 제품 판매를 관리하는 영업관리에 가까웠다. 문제는 이런 미묘한 커리어상의 차이를 어떻게 교묘하게 숨기고, 내가 해왔던 일이 이 직무와도 큰 연관이 있다고 잘 포장하여 내가 이 직군에 적임자인지를 어필하여 합격하느냐였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지만 결국 말만 잘하면 아가 어가 되기도 한다. 말을 잘하는 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막히지 않고 술술 하긴 하는 편이었고, 그간 영국에서부터 시작하여 한국에 와서까지 얼마나 많은 면접을 봐왔던가. 면접에서 떠는 스타일도 아니고, 그 어떤 면접관이 나온다고 해도 큰 걱정은 없었다. 다만 지금 있는 회사에 대한 소식이 언론을 통해 이미 퍼질 대로 퍼졌으니 내가 이직하고자 함이 탈출을 위한 러시로 비쳐 내가 을이 되어 조급함을 내비쳐서는 안 된다.

을임을 간파당하는 순간 거기서부터는 이미 지는 게임이다.

포커페이스와 그럴듯한 커리어 포장.

그것이 이번 면접의 핵심이었다.


코로나 상황 때문에 1차 면접은 실무진과 함께 화상으로 면접을 봤다. 크게 어렵지 않게 통과할 수 있었고, 2차 면접이자 최종면접은 임원진과 대면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국내 시장을 관리하는 일이기에 사실 영어실력은 거의 필요치 않은 일이었으나 내가 해외 경험이 있는 것을 좋게 봐준 듯하고, 국내로 이직하여 이 업계에서 커리어를 쌓으며 국내시장 동향도 어느 정도 아는 나름 이 업계의 전문가 커리어를 밟고 있다고 판단한 모양인지 좋은 분위기에서 면접을 마무리지었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를 가슴 졸이며 면접 결과를 기다렸다.


결과는 최종합격.

마침내 한국에서도 이직이란 걸 해보게 되었다. 

일단 합격했으니 이제 중요한 것은 연봉협상이다. 아무래도 월급삭감되는 지금보다야 낫겠지만, 그래도 이직의 꽃은 한 번 점프할 때마다 내 몸값을 조금씩 불려 나가는 것 아니겠는가. 지금 회사에서 받고 있는 연봉과 복지혜택, 작지만 소중한 성과급까지 몽땅 끌어와 이것이 지금 내가 받고 있는 몸값인데, 이직하게 되면 이 정도는 받아야겠다는 연봉을 제시했다. 회사에서는 과장 몇년차이면 이정도 연봉 테이블 안에서 맞춰줄 수 있다는 걸 제시하며 몇 번 협상의 핑퐁이 왔다 갔다 했고, 마침내 최종 합의에 이르러 나는 새로운 회사에서 과장 말년차 직급으로 이직하게 되었다. 지금 회사에서 과장 2년 차였지만, 그래도 규모는 훨씬 큰 회사이기에 규모가 좀 더 작은 곳으로 옮기면서 연봉과 직급을 올리게 된 것이다. 이직하고 잘 적응하여 누락 없이 잘 승진하게 된다면 아마도 내년에 차장을 달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계획대로 되었을 경우의 이야기지만 서른여섯에 차장, 아니 한 차례 누락하더라도 서른일곱에 차장이면 결코 나에게도 나쁘지 않은 거래다.


현 회사에 퇴사결정을 통보했다.

회사 입장에서는 있는 사람도 인건비 절감으로 자를 마당에 하나, 둘 떠나는 사람들을 잡을 분위기도 아니었고, 그저 이직하는 사람들끼리는 누가 어디 회사로 갔네, 어디로 갔네 하는 소문들만 돌아다녔다.


이직에 성공하면서 한숨을 돌렸지만, 잠시 쉴 틈도 없이 한 주 정도만 쉬고 새로운 곳에 출근해야 했다.

퇴직금을 챙겨 받았으니 몇 달 버틸 수는 있겠지만, 매달 안정적으로 들어오던 월급이 한, 두 달 끊기기라도 하면 불안하기도 하고, 매달 고정적으로 빠져나가야만 하는 비용도 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이 한 결정이었다. 다른 이들은 이직하는 중간 텀에 해외여행도 가고, 그참에 푹 쉬기도 하던데 맞벌이가 아니니 그럴 수도 없어서 좀 아쉽기도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이것이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하루라도 빨리 새로운 회사에 적응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더 좋을 것이라며 애써 스스로를 위안했다.


갑자기, 아니 갑자기는 아니고 언제나 도사리고 있던 위험이 서서히 드러난 것이긴 하지만, 회사에 문제가 생겨 이직을 감행하게 되긴 했지만, 결론적으로는 연봉을 높여 이직했으니 이것은 성공적인 경험일까.

좀 더 작은 회사로의 이직이 나중에 내 커리어에 어떤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좀 들기도 했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다.


작년 연말부터 불거진 이 문제들로 정신이 없는 와중에 우리는 엎친데 덮친 격으로 살던 전셋집을 옮겨 서울 밖으로 이사해야만 했다. 한국에 돌아와 취직에 마침내 성공하며 서울에 올라와 살기 시작한 전셋집이었는데, 한번 계약 연장을 하여 그 집에 살기 시작한 지 3년 차가 되던 어느 날, 집주인에게서 연락이 왔던 것이다.


"내가 사정이 생겨서 오른 시세만큼 전세 보증금을 높여서 재계약하거나, 계약해지를 해야 할 것 같다."


는 말이었다. 계약할 때 지인의 도움으로 시세보다 조금 저렴하게 전세보증금을 냈던 역풍을 갑자기 맞게 된 것이었다. 그는 본인이 큰 사기를 당해 갑자기 돈이 많이 필요하게 되어 최악의 경우 이 아파트를 팔아야 될 수도 있는데, 일단 지금 그정도로 할 마음은 없고, 전세 보증금을 좀 올려달라고 했다. 지금 시세보다 저렴하게 세를 주고 있으니 그 차액만큼이라도 더 받아서 급한 불을 끄고 싶다는 말이었다.

계약서에 보증금이 얼마라고 버젓이 떡하니 적혀있는데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일이었고, 우리는 갑자기 전세보증금을 올려줄 여력 따위는 없었다.


버티려면 계약기간이 남아있는 올해까지 1년 넘게 더 버틸 수는 있었지만, 지인의 지인이었기에 무작정 버티기만 하기도 정황상 어려웠고, 최악의 경우 살고 있는 와중에 집주인이 바뀔 수도 있었다.

청약에 당첨된 아파트의 입주기간까지는 2년이 조금 넘게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전셋집 계약기간까지 버티고 나면 애매하게 1년 정도가 남게 된다. 월세를 내며 1년을 버티거나 1년만 전세계약을 하도록 이해해 줄 상황이 서로 맞는 집주인을 만나야만 붕 뜨는 기간을 메꿀 수 있을 터였다. 이런 여러 상황을 고려한 끝에 우리는 아파트가 지어질 2년 동안 서울을 잠시 떠나 출퇴근 가능한 거리 수준의 경기도로 이사하기로 결정했다. 서울에서 살기 시작한 지 3년 차인데 그새 서울의 전세 가격은 어마무시하게 올라 살던 곳 근처에서 비슷한 수준이나 평형의 아파트 전세를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다.


강남 접근이 용이한 신분당선이 지나는 곳을 중심으로 아파트 전세를 알아보러 다녔다.

지나고 나서야 하는 말이지만, 회사에는 망하니 마니 하는 소식이 들리기 시작하고, 연봉은 동결되는 와중에, 멀쩡히 잘 살던 집에서 집주인에게 나가달란 말을 듣고 그 와중에 이사까지 했으니, 참 힘들고 지치는 연말이었다.

신분당선 라인도 집값은 이미 오를 대로 다 올라 서울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아파트들이 대부분이었다.

좀 더 밑으로, 밑으로 내려가다가 그래도 출퇴근 가능한 수준의 동네에서 이전에 살던 곳과의 전세가격 차이가 크지 않은 아파트의 전세를 구할 수 있었다. 그래도 내집은 아니었지만 서울에서 살다가 경기도로 쫓겨나는 기분인데 깨끗한 신축에서 한번 살아보자 싶어 고르고 고른 곳은 지하철 역까지 걸어서 15분가량은 걸려서 버스를 갈아타고 신분당선을 타러 다녀야 했다.


전세 계약을 하던 날, 수연과 아이와 함께 약속한 시간에 부동산에 갔다.

잠시 기다리니 집주인 부부가 왔는데, 우리 나이 또래의 젊은 부부였다. 우리가 처음 들어가 사는 새 아파트니 그 부부는 새 아파트를 분양받은 것 같았는데 어째서 본인들이 들어가지 않고 세를 주는지 궁금했다.

사정을 들어보니, 이미 근처에 다른 아파트에서 전세를 살고 있는데 본인들은 아이가 둘이라 29평인 조금 애매한 평수의 아파트는 좀 좁게 느껴져서 일단 한번 세를 주고 살던 곳에 살기로 했다고 한다.

말은 그렇게 하긴 했지만, 잔금을 못 치러 2년 전세를 한 바퀴 돌려 세를 주고 그 이후에 입주할 모양이었다. 진실이 무엇이든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고, 비슷한 연배의 젊은 부부 두 쌍이 앉아, 한쪽은 집주인, 한쪽은 세입자라고 하니 아주 살짝 자존심이 상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2년만 기다리자. 우리 아파트도 열심히 지어지고 있으니. 나도 드디어 세입자 신분에서 벗어나 내 집이란 걸 가진 사람이 될 테니까.

그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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