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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식빵
Jul 08. 2024
그건 엄마 거잖아-아리어록 6
여행지에서 9살에게 배우다.
강원도로 6박 7일 여행을 와있다.
안 그래도 육아휴직한 남편 때문에 서로 한동안 힘든 시기를 겪다가 최근에야 약간 사이가 정리되고 좋아지기 시작했는데, 다시 한번 여러 변화를 앞두고 예민한 시기에
24시간을 또 붙어있다 보니 기어이 말싸움이 터졌다.
어젯밤이었다.
어찌 보면 사소한 문제고, 어찌 보면 10년간 우리가 싸워온 개인적인 차이에서 벌어진 작은 싸움이었는데,
여행을 와있다 보니 큰 원룸 같은 하나의 공간에 아이와 함께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큰 싸움이 되진 않았지만 옆에 있던 아이는 고스란히 우리말을 들었을 테고, 살짝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나의 경우엔 고조된 감정을 식힐 개인적인 시간이 좀 필요(최소 반나절 정도)한 유형이라,
마음이 전혀 풀리지
않았고 남편한테 서운한 게 남았음에도 (아이가 잘 시간이 되기도 했고..)
대충 마무리하고 삐진 얼굴을 한 채라도 잠자리에 누워 얼른 불을 끄고 싶었다.
급한 마음에 아이에게 얼른 양치를 하고, 드림렌즈를 끼고, 교정기를 끼라고 말했다.
(여행 와서도 할 것 많은 9살 여자와 그걸 다 챙겨야 하는 나...)
"아리야, 얼른 양치해."
내 칫솔에 치약을 묻혀 이를 닦으며 약간 화난 상태의 어조로 말했다.
그 순간 아이가 말했다. 늘, 하루에도 백번은 하는 말이다.
"엄마, 안아 줘."
순간.. 제 아빠와 말다툼을 하는 걸 다 보고 들었을 텐데 내 기분을 배려해주지 않고, 이 타이밍에 자길 안아달라는 아이에게 작은 화풀이를 하고 말았다.
"아리야, 눈치 챙겨. 언능 이 닦아."
그러자 놀라운 말이 되돌아왔다.
"
엄마, 엄마 때문에 내 기분도 다운됐어.
그건(기분이 상해있는 건) 엄마
감정
이잖아."
순간, 너무나도 부끄러웠고 할 말을 잃었다.
"맞아... 미안해. 니가 맞아."
아이가 그 순간에 자길 안아달라고 한 것은 사실은 나를 안아주고 싶다는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었더라도, 혹은 그냥 부모의 다툼에 상처 입고 불안했던 자기를 좀 토닥여달라는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아이는 그냥 아홉 살이니까. 이제 고작 만 8살이니까...
어쨌거나 불을 끄고 누웠다. 눈치 없는 남편이 침대 위에서 아이를 안은 채 나한테 들리도록 말했다.
"아리야, 엄마 아빠한테 얼마나 화난 것 같아?"
"음,,, 10이 제일 화난 거라면.... 10?......... 아, 아니다...... 9.5 정도?"
나는 입을 다물고 계속 누워 있었다.
둘이 뭐라 뭐라 대화를 계속하길래 나도 잠들지 못하고 있었는데, 결국은 아이가 내 옆으로 내려와 누웠다.
아까, 남편에게 화풀이를 하며 아이에게도 화풀이를 한 차례 더 한 뒤였다. '너희 둘 다 밉다고.'..
못났게도 부모로서의 내 부끄러움을
아이에게 너 밉다고 또 전가했다.
다시 부끄러워졌다. 아이에게 팔을 내밀자 냉큼 옆으로 와서 누웠다.
부드러운 머리칼과 볼과 이마를 만졌다.
왈칵 눈물이 나왔다.
"아리야, 미안해."
"뭐가?"
"아리가 잘못한 것 하나도 없는데 아리한테 화내서."
아이는 아무 말이 없었고, 금세 내 팔을 베고 내 품에 옆으로 안긴 채 잠이 들었다. 불편했던 마음이 풀리자
금세 노곤해져서 잠이 든 것 같았다.
어른스럽지 못했고, 엄마답지 못했음에 계속 부끄러웠지만 나를 쉽게 용서해 준 아이가 고마웠다.
아이가 다시 다가와준 순간, 잠시 망설였다. 나의 부끄러움을 들키기 싫기도 했지만...
용기를 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래야 했다.
여행지에서 네 밤을 잤고, 다섯 번째 아침이 다시 밝았다.
일상에서 벗어난 이곳에서 아이는 다시 한번 나를 키우는 존재가 된다.
너는 의도하지 않았어도 나는 너를 통해 배우고 있다.
부모라고, 어른이라고, 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만만하고 약하고 작고
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에게 내 감정을 전가시키다니. 나뿐만 아니라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그래왔었는지... 너의 한 마디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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