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아이는 2016년생으로 이전한국 나이로 9살(2학년 나이)이지만, 초등학교 3학년이다. 같은 반 친구들은 2015년생, 10살이다. 아이가 학교를 한 해 일찍 조기입학했기 때문이다.
3년여 전, 아직 코로나가 한창이었을 무렵 2021년 연말에 우리는 (경기도 용인에서 2년을 보낸 뒤) 다시 서울로 이사 왔다. 신축 아파트이고 아파트 내에 구립어린이집이 다행히 입주와 동시에 아이들을 받았기에 이사에 맞춰 아이를 바로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었다. 그다음 해에 7살이 되기에 유치원으로 옮기거나 어린이집을 한 해 더 다니고 졸업시킬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의 이런 평범한 계획은 처참히 무너졌는데, 남편이 아이를 사립초등학교에 보내고 싶다고 강력하게 주장했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는 아파트 잔금대출을 겨우겨우 받고, 매달 어마어마한 대출원금과 이자를 함께 갚아나가고 있었기에 공. 짜. 인 공립초등학교를 두고, 학비가 비싼, 일 년에 천만원도 훨씬 더 드는 사립초등학교에 아이를 보내자는 남편을 나는 도저히 0.1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그 문제로 정말 많이 다투었다. 심지어 남편은 그런 경제적인 상황 속에서 내 눈에는 그저 '조금 똘똘한' 정도로 보이던 아이를 한 해 일찍 '조기입학'시키자고 했다.
그 이유인즉슨 당시 사립초에는 입학원서를 세 곳에 쓸 수 있었는데(그 전해에는 제한이 없어 10군데에 쓰고 원서비만 몇십만원 날리고 모두 떨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우리나라 법상 아이의 상황에 따라 초등학교를 한 해 먼저 조기 입학시키거나 한 해 늦게 입학유예를 할 수 있기에, 사립초에 보낼 수 있는 두 번의 기회를 모두 사용해보고 싶다는 거였다. 즉, 7살에도 3곳에 일단 지원해 보고 떨어지면 8살 제 나이에 3곳에 또 지원할 수 있으니 안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남편의 주장이었다. 그냥 앉아 기회를 날리느니 일단 써보긴 하겠다는 말이었다.
나는 사립초등학교의 입학 경쟁률이 그토록 어마무시한 줄 몰랐다.
사실 사립초등학교라는 것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 아예 잘 몰랐고, 알았다고 하더라도 내 아이를 거기에 보낼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사람이었다. 부산에서 나고 자라 부산에서 국립대학을 졸업했고, 평생을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왔기에 나는 생각에 한계가 가득한, 기본적으로 쫌 부정적이고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었다. 나는 우물 위로 기어올라가 우물 밖을 내다보는 것조차 두려워했다.
게다가 코로나 때문에 아이들 등원/등교가 아예 차단당하고 온라인 ZOOM 수업으로 대체되곤 했었기에 ZOOM수업 퀄리티도 훨씬 좋고, 공립초에 비해 자체적 기준에 따라 대면수업도 더 많이 하는 사립초의 경쟁률이 코로나 기간 동안 기하급수적으로 치솟았다고 한다.
아무튼 나는 그 여느 때처럼 남편과의 싸움에서 논리적으로 졌고, 화났다는 걸 남편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듯이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남편은 우리집에서 등교 가능한 거리의 세 학교를 골라 직접 입학원서를 넣었다. 결과는 세 군데 모두 탈락. 하지만 그중 한 군데에서 대기 순번을 받았다. 4번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3명의 앞번호는 금방 빠졌고, 우리 아이가 입학할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정확한 기억인지 모르겠으나... 입학원서를 쓰기 전 조기입학신청서 같은 걸 우리 동네 행정복지센터에 내고, 원서접수 시 학교에도 냈던 것 같다.) 그렇게 아이는 7살에 사립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남편과 "보내야만 된다 vs. 우리 형편에 무슨!!"이라며 마구 싸우던 중, 답답한 마음에 주변 지인들에게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고민이라고 했더니 두 가지의 반응이 돌아왔었다.
첫 번째는,
"아리는 똑똑하니까 일찍 학교 보내도 잘할 거야!! 네 남편 말이 맞아! 일단 지원해 봐. 어차피 떨어질 수도 있는 거고. 뭐가 문제야?"
두 번째는,
"아.... 근데 아리가 막 영재라거나 그 정도로 똑똑한 건 아니지... 않아? 그리구 거기 돈도 엄청 많이 들지 않아?"
첫 번째 반응의 경우엔 그 말을 듣고 처음에는 내 친구가 내 편이 아닌 남편 편을 들어주니까 '아. 뭐야~' 싶었는데, 나중에 이성적으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친구 말도, 남편 말도 맞다는 걸 나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었지만, 현실을 도피하고 싶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그 시기에 이사 전부터 반년 정도 '하.. 정말... 이사 못 들어가면 어쩌지... 들어가도 대출이자... 진짜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잠식당해 있었고, 막상 이사 들어와서도 경제적 쪼들림 때문에 마음 또한 쪼들려있었기에 정상적인 사고와 논리적인 판단을 못했던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두 번째 반응의 경우엔 그 말을 딱 듣는 순간, '아... 이 사람이랑은 언젠가 손절을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여 내 딸에 대해서 마음속으로는 진짜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그런 말을 내 앞에서 내뱉는 것은 잘못된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한 그 마음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 모르나, 말을 해버린 뒤에는 주워 담을 수 없기에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한 번은 더 생각해 보고 말을 해야 하는데 그 사람은 그러지 못했고, 그 사람과 알아온 시간 동안 그 이전에도 그사람이 하는 말을 들으며 그런 생각을 여러 번 했었었다. 더군다나 자식 일에 그런 반응을 하는 건 그 어느 부모라도 기분이 나쁘리라. (심지어 아리는 나중에 웩슬러 검사를 받아보니 영재는 아니지만, '거의 영재급'이 맞았다. ㅋㅋㅋㅋ 깨알 자랑 담기)
이후에 아이를 입학시키고 사립초에 아이를 직접 보내보고 나니, 내가 그랬던 것처럼, 사립초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크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정말로 어마어마한 부자들이 아이를 보내는 것도 사실이기는 하나, 모두가 부자는 아니고, 오히려 조부모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있는 맞벌이 부부가 아이를 보내는 경우도 많았다. 또 주변에서 사립초의 장점에 대해 듣고 정보를 알고 지원하여 아이를 보낸 경우도 많았다.
제일 큰 오해는 사립초에 '똑똑한 아이들'이 모인다는 오해였다. 물론 확률적으로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부모들이 많긴 하기에, 영어 유치원을 나온 아이들이 비율적으로 더 많거나 해외에서 살다 왔다거나 그런 아이들이 많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입학할 때 입학시험을 치거나 IQ테스트를 하거나 하는 게 아니라(그건 불법이다) 단순 추첨이기에 정확하게 말하자면 '뽑기 운이 있는 아이들'이 사립초에 다니고 있는 거였다. 사실 아리가 뽑기 운이 있다는 것은 그 뒤에도 몇 번 증명되곤 했다. ㅎㅎ 사립초에도 공립초와 똑같이 '금쪽이'들이 있고, ADHD가 있는 애들이 있고, 좀 난폭하거나 나쁜 아이들이 있다. 심지어 본인 아이가 좀 까다롭거나 위와 같은 상황이라 담임 케어가 좀 더 될거란 기대로 사립초에 보내는 경우도 있다.
아이는 7시쯤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예쁘지만 불편한 교복을 입고 학교로 출발해 8시쯤 도착한다. 담임 선생님이 내어주시는 자습공부(한자,독서 등) 20분여를 하고 8시 30분에 1교시 수업을 시작한다. 경기도에서 오는 아이들은 셔틀버스 안에서 1시간 가까이 보내는 경우도 있긴 하다.
1학년부터 영어 원어민 교사 수업이 주 6시간 책정되어 있고, 방과후와 돌봄 수업이 잘 되어 있어서 오후 6시까지 아이들을 맡길 수 있다.
남편이 아이를 사립초에 보내고 싶어 했던 가장 큰 이유는 '가성비 넘치게 학원 뺑뺑이 안 돌리고, 모든 것을 학교 안에서, 영어 수업을 포함한 다양하고 새로운 것들을 배울 수 있어서'였다. 아이는 영어 알파벳과 아주 기초 파닉스 정도만 나에게 배우고 입학했는데, 3학년인 지금 영어 문장들을 줄줄 읽고, 제법 해석도 할 줄 안다. 영어유치원을 나오지 않아서 원어민 선생님과 프리토킹은 안 되지만 ㅋㅋ 내가 보기엔 엄청난 발전이다. 1학년부터 무조건적으로 1인 1 악기제로 악기 하나를 배워야 하는데, 바이올린을 선택해서 지금은 SUZUKI 4권을 배우고 있다. 막귀인 내가 듣기에는 아주 잘 켠다. ㅎㅎ 아이 덕에 우리 집에서는 근사한 클래식 음악을 듣게 되었고, 우리 부부는 몰랐던 곡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는 제2외국어도 배운다. 바이올린, 영어, 제2외국어, (공립초에 비해 덜 치열하지만 더 다양한)각종방과후 수업을하는데, 아이가 하는 이것들을 사립초가 아닌 '공립초+학원 콤보'로 각각의 학원을 세팅해서보냈다면 비용 총합이 아이 학교 학비와 결국은 똑같아졌을 것이다.그리고 방학 때에는 2주씩 영어캠프와 방과후,돌봄을 또 제공하기에 특히맞벌이 부부들에겐 최고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자기가 잘 모르는 분야면 일단 까내리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나도 그런 적이 아주아주 많다. 사립초에 입학시킨 후 온라인 사립초 커뮤니티에 들어가니, 사립초에 보낸 후 인간관계가 정리되었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잘 모르면서 한마디 한마디 툭 던지는 지인들의 말에 상처를 받고 자연스럽게 그런 사람들과 멀어졌다는 뜻이었다.
아무튼 2년 반을 보내보고아이가 3학년인 지금, 나는 사립초에 굉장히 만족하며, 귀차니즘 끝판왕인데 아이 학원을 일일이 정하지 않아도 학교에서 다 알아서 해주니 너무너무 편하다. 아침에 다른 초딩맘들보다 더 일찍 일어난다는 사실만 빼면 말이다. 하지만 직장맘은 어차피 일찍들 일어난다. 나는 주부면서도 동시에 프리랜서 작가이니 아침 일찍부터 아이는 학교로 사라져 버려서ㅋㅋ 시간활용에 더 좋다.
남편이 사립초에 보내자고 주장했던 건 주로 남편 회사 동료들로부터 들은 정보 덕분이었다. 그들은 비율적으로 서울 출신이 많고 동료 본인이 사립초를 졸업했거나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많아서 아주 자연스럽게 정보를 다 알았다. 나는 결혼 후 특히 주부로 오래 살면서 바깥 교류가 적었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편 말에 일단 반대부터 했었다. 남편 입장에서는 나쁜 피드백을 줬던 내 지인과 내가 다를 바가 없었을 것이다. (이 자리를 빌려 당시에 답답하게 해서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학비 문제는 일단 보내기 시작하니 어떻게든 해결되었다. 걱정 자체가 더 큰 걱정이었던 셈이다.
이 긴 글을 여기까지 읽으신 많은 분들도 사립초에 대한 편견이 혹시 있으셨다면 많이 바뀌었기를 바란다.
그리고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은, 본인이 주변 시선을 아주 많이 신경 쓰는 타입인데, 엄청난 부자가 아니라면 사립초에는 안 보내는 게 정신 건강에 좋을 거라는 점이다. 나는 1년에 200만원에 육박하는 셔틀버스 비용을 아껴보고자 2학년때부터는 아이를 직접 차로 태워다 주고 있는데, 학교에 가면 람보르기니부터 시작해서 각종 겁나 비싸고 휘황찬란한 것들이 눈을 아프게 한다. 물론 게 중에는 드물지만 국민차인 현대기아차도 있고, 깜찍한 경차들도 있으나 극소수이다. 나는 2012년식 14만 km 탄 현대 i40해치백(단종되었음)을 당당하게 타고 다닌다. 공개수업 때나 아주 간혹 있는 엄마들 모임에서 샤넬백 대신 에코백을 매도 전혀 꿀리지 않는 멘탈과 줏대가 있는 부모가 아이를 사립초에 보낸다면 나처럼 많은 장점을 누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