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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의바른악당 Feb 14. 2020

현금인출기에 실수로 놓고 간 돈, 가져갈까 말까

이래저래 근래 들어 점심을 혼자 먹는 날이 많아졌다. 혼자 먹으면 확실히 점심을 빨리 먹을 수 있어 편하다. 엊그제는 너무 일찍 먹은 탓인지, 시간이 남아 회사 근처 건물을 돌며 산책을 하고 있었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눈 밑까지 마스크로 푹 가리고 총총 걸음했는데, 모처럼 마스크를 내리고 길거리를 걸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도 심심해서, 집에서 육아를 하고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수다를 떨었다. 육아 중인 친구와 통화하긴 어려운 법이다. 오랜만에 통화라 반가워 이것저것 수다를 떠는데 차가운 바람에 계속 밖에 걸으면서 이야기하기 어려워졌다. 건물 안으로 들어와 1층 로비를 서성이며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아 묘한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가만히 서있기 뭣해 로비를 한바퀴 걸었다. 친구와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나 대로 회사, 친구는 친구대로 육아의 고충을 이야기하며 서로 고민을 털어놓는데 어느덧 내 발걸음은 은행 현금인출기 쪽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러다 무심코 현금인출기 속 돈을 발견했다. 순간 뭐지 하면서 얼마가 들어있는지 확인하니 2만원이었다. 슬쩍 꺼내고서 고민이 되었다. 마침 친구랑 통화 중이라 방금 2만원을 얻었다며 너스레를 떨고 있었다. 친구도 굴러들어온 횡재라며 운이 좋다고 했다. 


그러나 찝찝함을 떨칠 수 없었다. 그리 큰 돈은 아니지만, 현금인출기를 확인안하고 갈 정신이면돈을 놓고 간 사람이 나이든 사람은 아닐까, 다시 오지 않을까 등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친구도 공감했는지 그러면 조금 더 기다렸다가 주인이 오면 돌려주고, 아니면 횡재했다 생각하고 가지랜다. 


이차저차 이야기를 하는데 얼마 뒤 주인이 나타났다. 내가 있는 쪽으로 세상 잃은 표정으로 달려오는 젊은 여자를 보고서 주인이란 걸 확신했다. 현금인출기 주변을 서성이길래 단박에 알아차리고 혹시 이돈 때문이냐고 하니까 너무 큰소리로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통화 중이었던 나는 기다리고 있었다며 냉큼 돈을 주고, 다른 자리로 떠났다. 

  

짧은 시간에 일어난 에피소드였지만 웃기기도 하고, 내 마음의 간사함을 느꼈다. 원래 내 돈이 아닌데도 내 돈을 잃어버린 느낌은 무엇일가 하는 얄팍함이 느껴졌다. 


작은 돈이지만 누군가에게 소중할 수 있다는 것을 예전에 사기를 당하며 깨달은 적이 있다. 나는 남들이 흔히들 말하는 사기 안 당할 것처럼 생긴 유형이다. 그런데 은근히 잔사기에 잘 속아 넘어간다. 하지만 또 신기한 것은 그 돈을 고스란히 돌려받아, 운이 좋단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불현듯 그때의 경험이 떠오르는 것은 언젠가 베푼 작은 호의들이 결국 나에게도 돌아온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돈을 가져갔더라면 돈을 쓰는 편함보다 찝찝함만 커져 내 마음을 더 괴롭게 했을 것이다. 돈의 액수가 크던 작던 공돈에 혹하지 말아야겠다. 


블로그: https://blog.naver.com/whitemj0314/221808755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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