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딛고 있는 도시에 대한 얘기.
얼마 전 핀란드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있는 누나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일본에 대한 이야기였다. 일본 도쿄에 방문해볼 만한 공간과 일본의 젊은이들이 흥미를 가질만한 공간, 그리고 그 이유와 활용을 통한 활성화 방안을 무려 한 시간 안으로 간략하게 정리해서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일본을 좋아한다. 특별한 일 없이도 일 년에 두 번은 꼭 간다. 일본스러운 것들, 디자인, 폰트, 레이아웃, 철학, 문화, 풍경, 하라 켄야부터 에반게리온, 소니, 닌텐도까지 꽤나 좋아한다. 오늘 아침만 해도 일본에서 온 택배가 두 박스나 있었다. 스마트 폰은 일어로 설정되어 있고 책상에는 선토리 위스키가 있다. 심지어 일주일에 5일은 일본 브랜드에서 일을 한다. 나에게 도쿄는 간략하게 정리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몇 페이지의 도쿄를 보낼 때 즈음엔 이미 새벽 3시가 지났다.
도쿄에 대한 이야기는 구글 맵에서 시작했다. 내 구글맵 속 도쿄는 노란 별천지다. 세 번 정도 다녀왔고 길게는 일주일 정도 머물렀지만 부족하다고 느꼈다. 이 정도면 일본에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을 때도 있다. 구글맵에 표시된 장소들은 다녀온 장소도 있지만 앞으로 방문하고 싶은 장소들도 꽤나 많이 있다. 괜찮다고 느꼈거나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되는 장소들이다. 물론 나만 그렇게 생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미 유명해진 장소들도 꽤나 많이 있다. 그리고 아닌 장소들은 아마도 조만간 유명해질 것이다.
도쿄 위 노란 별은 번화가를 중심으로 밀도가 높다. 동시에 순환 열차인 야마노테센을 중심으로 분포해있다. 야마노테선은 신주쿠, 시부야, 메이지진구 마에(하라주쿠), 이케부쿠로, 아키하바라, 도쿄, 유라쿠쵸를 지나간다. 하라주쿠는 오모테산도, 아오야마까지 이어지며 시부야를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요요기 코엔, 더 나아가 지유가오카, 기치 죠지까지, 남쪽으로는 에비스, 다이칸야마 그리고 나카메구로와 교차점인 롯폰기까지 이어진다. 아키하바라, 도쿄, 긴자, 유라쿠초를 중심으로 한 도쿄 동부는 서부에 비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번화가는 다른 지역에는 없는 공통된 물리적 특징을 갖고 있다. 바로 쇼핑 몰이다. 언젠가부터 도시는 주거와 상업 시설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교외에는 주택만으로 특화된 단지가 생겼고 분리된 상업 기능은 오모테산도 힐즈, 롯폰기 힐즈, 도쿄 미드타운 등 쇼핑 몰의 형태로 집약된다. 그리고 시나가와 고탄다 등 주변 도시는 또 다른 쇼핑몰을 만들어 자족하는 도시가 되었다.
롯폰기 힐즈는 재개발 제안 이후 착공에 들어가기 전까지 모든 관계자의 동의를 얻어내기 위해 20여 년이 걸렸고 그만큼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 냈다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이런 도시 계획은 오래가지 못한다. 상품화된 도시는 기능적으로 포화상태에 이르고 지루해진다. 손님은 줄어들고 상업기능이 저하되고 주택분양도 줄어들면서 도시는 자멸하게 된다. 결국 이런 도시 계획에 대한 반동으로 기능들은 점차 분산되고 주거와 상업 기능이 작은 단위로 재배치되면서 최소한의 기능을 하는 소규모 도시가 조성된다.
잠시 공간을 한국으로 옮겨보자. 최근 뉴스에서 홍대 상권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홍대는 예전부터 알려진 번화가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연남동, 연희동, 상수, 망원 등지의 지명이 많이 노출이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언젠가부터 홍대가 번화가로 자리매김하고 많은 사람들이 홍대입구역 9번 출구 앞에서 만났다. 영화관, 패밀리 레스토랑, 카페, 드럭스토어가 고층 쇼핑몰 안에 패키지처럼 들어섰다. 개성이 살아있는 소규모 상점과 소자본으로 사업을 시작하려는 젊은 생각들은 이 정도면 찾아올 수 있을 만한 곳들로 옮겨지게 된다.
물론 아직도 홍대 입구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한 편으론 망원동 한적한 주택가 사이에 지하에 있는 자그마한 카페로 이어지는 계단 뒤로 긴 줄이 늘어서고, 몇십 분이고 기다리는 사람들, 그런 풍경이 있다. 지난 12월 일본 도쿄를 방문했다. 요요기 코엔 근처에 숙소를 잡았고 한국 사람들에게도 이미 유명한 fuglen tokyo, camel back, little nap coffee 그리고 시부야로 내려가는 길에 있는 OL brewing, 나카메구로의 cow books, onibus coffee, 에비스의 P.F.S parts center, maison martin margiela, kapital, YAECA, PACIFIC FURNITURE, 기치 죠지의 margaret howell shop & cofffee, light up coffee, CINQ, museum of your history, 가구라자카의 la kagu, 아사쿠사 바시의 anatomica, 많은 곳에서 그런 풍경을 봤다. 하지만 조금 더 오래되고 자연스럽고 견고했다.
가게라는 것은 상업기능을 구성하는 작은 세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주거라는 세포와 결합하여 최소 단위의 도시를 이루고 나아가 하나의 큰 도시, 사회, 국가를 이룬다. 한국의 현재는 일본의 과거와 많이 닮아있다. 도시의 모습도 그렇다. 지난 일본처럼 한국 역시 도시에 대한 오해로 기능적 불균형을 겪고 있다. 이는 곧 사회적 불균형으로 이어져 기형적 사회를 낳는다. 지금 한국은 서울이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그 정점을 찍었다. 어쩌면 앞으로 한국은 일본보다 더 힘든 과정을 밟아나갈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균형을 바로잡기 위해서 우리는 컴팩트 시티를 이해해야 한다. 도시를 이해하고, 동네를 이해해야 한다.
(아직 베타버전이라 그런지 영상 업로드가 안됩니다. 링크 걸겠습니다.
일본은 가게가 안정되어 있다. 되려 체인점을 찾기 어렵다. 오래된 가게도 많다. 가장 중요한 건 작은 가게는 그 나름대로, 큰 가게는 그 나름대로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작은 가게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 큰 가게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에 집중한다. 반대로 그동안 한국은 소수, 작은 것들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존중과 배려, 인정보다는 물질에 편승하며 발전해왔다. 개성 있는 가게를 찾기 어려워졌다. 동네에 있는 가게는 저렴하고 친절해야 한다. 개성 있고 조금 모난 것보다는 균등하고 일정한 것이 더 좋은 것이다. 심지어 사람까지 키, 몸무게, 성별, 학벌, 소속, 연봉, 전공 등으로 카테고리화 시킨다. 각자가 원하는 것을 추구하고 행복할 수 있다. 큰 회사, 저렴한 가격, 높은 연봉, 높은 학력, 안정성, 효율성 다 좋다. 단지 물질에서 벗어났으면 한다. 안정적인 삶을 꿈꾸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각자가 꿈꾸는 것이 안정인지 욕심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행복을 나누면 배가 된다는 말이 있지만 물질은 나눌수록 배가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더 행복하다고 남이 덜 행복한 건 아니지만, 물질은 다르다. 물질은 유한하다. 그렇기 때문에 물질에서 비롯되는 행복에서는 이타심을 기대하기 어렵고 균형이 깨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