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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ite nest Jun 03. 2018

일상에서 찾는 기획

아날로그 레코드로 듣는 밤, sato yukie

신촌과 홍대 사이에는 일본인 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카페, 아메노히 커피가 있다. 아메노히 커피란 비 오는 날을 의미하는 일본어 "아메노히(あめのひ [雨の日])" + 커피이다. 비 오는 날의 커피 정도 되겠다. (실제로 방문해보면 비 오는 날에 잘 어울리는 분위기다.) 바 테이블을 비롯해 12석 남짓하는 공간이고 고요하고 따뜻한 느낌이다.


아메노히 커피


아메노히 커피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sato yukie의 아날로그 레코드로 듣는 old japanese pop night"이 열린다. 일본인으로 구성된 밴드 곱창전골의 리더이자 보컬인 sato yukie(이하 사토상)가 그동안 모은 아날로그 레코드를 재생하며 당시 음악 씬에 대한 설명이 덧붙는 형식이다. 사토상은 90년대 중반부터 한국에서 활동하며 일본 내에서 한국 밴드 시나위 초청 공연을 기획하기도 했으며, 양평이형으로 유명한 하세가와 료헤이가 초창기 곱창전골의 멤버이다. 2012년도에는 홍대 앞 문화예술인 공로상을 받기도 했다.


Sato Yukie의 아날로그 레코드로 즐기는 Old Japanese Pops Night  제4회 : City Pop & Groove Night


아메노히 커피 공식 사이트에서 관련 행사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URL _ http://amenohicoffee.com/


우연히 아메노히 커피에서 진행됐던 행사에 참여하게 됐고, 무인양품에서도 진행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온전히 스스로 기획한 첫 아이템 치고는 파격적이었던 것 같다. 사토상에게 메일을 보냈고 "산울림 소극장 앞 숟가락에서 만나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여기서 숟가락은 한국어가 아직은 어색한 사토상이 "수카라"를 잘못 표기한 것이었다. 물론 알아듣는 데에 어려움은 없었다. 사토상과 첫 미팅은 공교롭게도 맥주를 마시면서 진행됐고 알고 보니 사토상은 50대였다는 사실도 알았다.


진행하면서 어려운 부분은 딱히 없었다. 단지 음향장비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도 없었기 때문에 주변에 밴드를 하는 친구라던지 조언이 필요했다. 홍대 인근의 음향장비 렌털 샵에서 관련 장비를 빌려 들고 왔는데 이게 정말 힘들었다.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무게가 꽤 나갔고 팔에 알이 다 배겼다. 굉장히 혼자 발로 뛰어야 하는 일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뭔가 시티팝에 많이 사용되는 이미지, 가수 뮤지님 인스타그램에 60-80년대 일본 음악이 많이 올라온다.


생각보다 사전 참가자 모집 당시 반응이 좋았다. 요즘 60-80년대 일본 버블 경제 호황기 당시 음악이 많이 찾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city pop"이라는 장르를 굉장히 많이 찾고 있다. 16곡 정도의 트랙 리스트를 구성하여 재생했다. 당시 LP앨범 재킷도 함께 구경하며 당대 음악 씬에 대한 재미난 설명을 함께 들었다.


The folk crusaders


인상 깊었던 이야기가 있다면 1968년 3명의 대학생으로 이뤄진 포크송 그룹 더 포크 크루세이더스(the folk crusaders)의 임진강이라는 노래에 얽힌 이야기다. 제목의 임진강은 한국의 그 임진강이 맞다. 분단의 아픔에 대한 가사가 주를 이룬다. "임진강 맑은 물은 남북을 오가며 흘러들고, 물새들 역시 남과 북을 자유로이 넘나들지만, 사람들은 어이하여 가고파도 못 가는지”라는 대목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곡은 정치적 문제의 불씨가 될지도 모른다는 판단하에 국내에서는 정식으로 발매되지 못하고 일본 내에서만 인기를 끌게 된다. 최근에는 CD로 재발매가 되기도 했지만, 여하튼 사토상은 그 당시 일본에서도 음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러 이슈에 대해 함께 덧붙여주었다.


이태원에 위치한 음레코드, 엘로퀀스 편집장이었던 전우치님이 운영하시고 계신다.


무인양품에서는 "아날로그 레코드로 듣는 밤"이라는 제목으로 소개가 되었고, 당일 소개된 음악들이 워낙 유명한 명반이 많아 최근에는 같은 음반(HAPPY END, Taeko Ohnuki의 음반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을 이태원 음레코드(mmm record) 등에서 소개하는 게시물도 보았다. 사실 지금까지 여러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사적으로 맥주를 마신 건 사토상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프로그램 이후에 사석을 갖자는 말은 여러 번 나오지만 사실 사석을 갖기도, 무엇보다 관계가 지속적으로 호의를 갖고 유지되기란 쉽지 않다. 프로그램 때문이 아니라면 따로 시간을 내서 만나야 한다. 그리고 어색함이 없어지기 전까지의 어느 정도 시간도 필요할 거다.


서울살롱의 2018년 포럼시리즈인 면면서울,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신청 가능하다.(무료!)


최근에는 서울 살롱에서 주관하는 면면 서울 포럼을 여러 번 참여했는데, 포럼 이후 옆에 마련된 쿠킹 스튜디오로 추정되는 곳에서 간단하게 와인과 주전부리를 먹으면서 얘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워낙 다양한 업계 전문가분들을 모시고 진행하는 자리라, 거의 듣기만 하지만 굉장히 유익하다. 무인양품 내에서도 그런 인프라를 만들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open MUJI _ 아날로그 레코드로 듣는 밤


처음으로 맥주를 마시며 미팅을 진행한 사토상과는 매 달 아메노히에서 프로그램이 있을 때마다 얼굴은 본다. 반가운 미소와 짧은 손인사 정도이지만 말이다. 최근에 유사한 콘텐츠를 다루는 좀 더 전문적인 가게(?)에 진행을 요청드렸는데 정중하게 고사를 하셨다. 진행이 됐다면 생각이 조금 달라졌을 수도 있겠지만, 사토상과 함께 한 번 더 진행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전문가가 아닌 개인이 대중에게 충분히 흥미롭게 풀어낼 수 있는 콘텐츠를 기획하고자 하는 게 큰 줄기였으니 말이다.


최근에 프로그램을 참가해주신 분들 중 앵콜 요청이 몇 번 있어서 조만간 사토상과 맥주 한 잔을 하게 될 것 같다. 참, 다음에는 산울림 1992에 가기로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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