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의 산책 고요나, 파아프 템페(PaAp tempeh)장홍석
오랜만에 Open MUJI 관련 에피소드를 적어본다. 때는 어언 작년 11월 채식에 대해 다뤄보고 싶던 생각이 들었다. 최근 윤리적인 생산과 소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늘고 있다. 약자를 바라보는 시각이 동, 식물까지 확장되어 가는 것에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다만 이런 이유에서 육식에 대한 반감과 회의감, 검열 등이 이뤄지고 있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식에 대한 반대, 대체재로의 채식이 아닌, 채식 자체로서 충분히 좋다고 느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인양품의 "이것으로 충분하다"라는 생각처럼 말이다. 그다지 맛있지 않지만, 행복하지 않지만 육식을 줄여야 하기 때문에 선택하는 채식은 그 본질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많이 든다.
채소 요리의 장점 중 하나를 꼽으라면 색감에 있다고 본다. 기름기가 적절하게 껴있는 붉은 고기를 보면 군침이 도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다분히 경험이 근거한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좀 더 미적 관점을 확장해서 생각해보자면 우선 채소, 야채, 과일 자체가 시각적으로 더 예쁘다. 색감도 풍부하고 형태도 다채롭다. 우리가 시각적으로 접하는 고기는 효율적으로 부위에 따라 손질된 모양이기도 하고 말이다. 보통 소나 돼지, 닭을 보고 군침이 돌진 않는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재료의 산책"이라는 책은 계절에 어울리는 재료와 손질과 조리법을 담은 책이다. 4권 세트로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에 따라 한 권씩 구성이 되어있다. 재철 소재를 다루는 방법은 사실 흔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재료의 산책이 다른 점은 육식의 대안으로 채소를 다루기보다는 제철 채소, 식재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요리와, 식사를 다루고 있다. 기분 좋은 채식?이랄까? 저자인 요나와 성산동에 위치한 재료의 산책 본거지? 에서 첫 미팅을 가졌다. 요나는 첫 미팅에서 템페라는 인도네시아 발효 식재료를 한국 태안에 본거지를 두고 만들어가고 있는 파 아프 템페의 장홍석 님을 추천했고 다음 미팅에서는 셋의 만남이 주선됐다.
홍석은 한국예술 종합학교 무용원 창작과 전문사를 졸업했고 안무가, 퍼포머로 활동하던 도중 해외에서 처음 접해본 템페의 매력에 빠져 한국에서 템페를 만들고, 소개하고, 맛있게 먹고 있다. 프로그램의 초점은 건강한 식사, 음식으로 초점이 맞추어졌다. 가장 흥미로웠던 접근 방법은 홍석에게서 나왔다. 홍석은 안무가로 다년간 활동했다. 다양하게 몸을 움직이는 직업을 해왔던 것이다. 몸의 움직임과 건강한 식사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식사가 이뤄지는 장소에 따라 집밥과 외식으로 나누어 봤을 때, 그 둘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집밥의 이미지는 뭔가 건강하고 소화가 잘되고 맛있고 편안한 느낌이다. 물론 외식은 화려하기도 하고 맛있다. 분위기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집밥이 가진 장점과 비교하자면 뭔가 불편하고 소화가 잘 안되기도 한다. 우리는 이것을 MSG 혹은 식재료, 위생의 상태, 음식의 염도, 조리법 등과 연관 지어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큰 문제는 우리의 몸 상태일 수 있다. 우리는 보통 외식을 할 때 처음 가보는 장소에서, 주변에는 모르는 사람들이 앉아있는 낯선 상태에서 식사를 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몸이 굉장히 긴장되어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 크게 공감한다. 집 밖과 안에서 소화력의 차이가 크고, 똑같이 외식을 하더라도 그대로 밖에 계속 머무는 것과 집에 들어왔을 때 소화력의 차이가 크다.
스포츠 경기에 빚대어 표현하자면 외식은 원정경기와도 같은 것이다. 다른 스포츠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원정 다득점을 승패의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몸의 컨디션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물론 기후나 시차의 문제보다 다소 적어 보일 수 있지만 생각보다 우리에게 집이라는 존재가 주는 안정감이 꽤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점을 감안하면 꽤나 큰 문제다.
이런 관점에서 접근으로 시작해 올해 4월, 약 6개월간 네 번의 미팅 끝에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됐다. 타이틀은 <움직이다. 먹다.> 홍석은 정말 다재다능한 분이라 포스터뿐만 아니라 당일 프로그램에 사용된 음악까지 직접 만들어오셨다. 공간에 모든 테이블과 의자를 치우고 바닥엔 러그를 깔았다. 천장 조명을 모두 끄고 따뜻한 톤의 조명을 몇 개 사용하여 은은한 공간을 만들었다. 한 켠에서는 요나가 요리를 하고 홍석과 홍석의 아내인 오설영 안무가님 지도에 따라 참가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몸을 움직였다. 혼자 움직이기도 하고 함께 움직이기도 하였다. 그런 과정 이후에 요나가 준비한 템페 타코 라이스를 다 같이 식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되려 직접 몸과 살이 맞닿는 활동일지라도 이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아주 감정적이고 추상적인 부분이었기 때문에, 이것이 잘 전달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모쪼록 요나, 홍석, 설영님의 도움으로 참가자 분들 모두가 굉장히 만족하고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잘 전달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고 매우 뿌듯했다.
각국의 식문화는 굉장히 다르다. 더불어 식문화라는 것은 우리 생활에 아주 밀접한 부분이기 때문에 이는 곧 많은 차이를 가져온다. 나 스스로도 먹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내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식문화에서 파생되어 나온 사회, 문화적 현상에 관심이 많이 가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보다 긍정적으로 발전하길 바란다. 문화적인 고유성을 떠나서 지금 현재 한국이 가진 식문화에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원인은 주로 주거형태, 한국의 부동산 문제에서 오는 것이 크다. 한국이 이례적으로 단일 주종, 그리고 소수의 브랜드에서 대부분의 소비가 발생한다. 외식과 집밥에 들어가는 비용은 크게 차이가 없으며, 사람들은 요리를 잘할 줄 모른다. 마켓 컬리의 샛별 배송을 비롯해 비정상적인 식재료, 음식의 배달, 배송 문화가 발달했다.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삶에는 적당한 불편함이 필요하다. 편리함을 위해서는 포기해야 하는 가치가 분명히 있지만 편리함에 가려 보이지 않는,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요나와 홍석의 도움으로 진행하게 된 이번 프로그램을 계기로 이런 생각에 조금 더 확신이 생겼다. 식사는 보다 더 건강하고, 즐거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식사는 단순히 무언가를 먹는다는 것 이상으로 의미가 있는 행위, 활동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