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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ite nest Dec 07. 2017

한국의 도시 만들기

속도와 방향성에 대해

요즘 서울을 돌아다니다 보면 문화 비축기지를 알리는 간판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대충 문화에 관련된 자료를 모아놓는, 아카이빙 하는 기지(base) 정도겠구나, 확실히 지금 한국은 문화융성의 시대라고 생각했다.


<2017 서울도시건축 비엔날레>


서울은 지난 9월 다양한 건축 관련 행사가 줄줄이 비엔나소시지였다. 서울 도시 건축 비엔날레, 서울 세계 건축 대회, 서울 국제 건축영화제 등 아주 많은 건축 관련 행사가 줄을 지었고 바야흐로 새단장을 하고 나타난 문화 비축기지가 단연 화두였다. 문화 비축기지는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복합 문화공간으로 소개되고 있다. 상암 월드컵 경기장 옆에 있다. 73년 석유 파동 이후 서울시민이 한 달 정도 소비할 수 있는 비상용 석유를 보관하던 곳이다. 석유 비축기지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는데 2002년 월드컵 당시 안전상의 이유로 폐쇄 후 일반인의 접근이 차단되던 곳이다. 이 곳을 전시 및 공연이 이루어지고 작은 공원까지 갖추고 있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켰고 이에 따라 문화 비축기지라고 명명한 듯하다.


<문화비축기지(oil tank culture) T2>
<문화비축기지(oil tank culture) T2>
<문화비축기지(oil tank culture) T2, 야외 공연장>


눈에 띄는 모습은 석유를 보관해왔던 탱크를 유지 보존하여 재생한 파빌리온들이다. 콘크리트가 건물 외관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세월이 지나 약간 누렇게 물든 노출 콘크리트 구조의 건물들, 그것들의 스케일감 등이 시각적으로 좋은 느낌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마음속에 부단히 드는 의구 점이 있다. 석유 비축기지가 문화 비축기지로 재탄생하기까지의 기간 고작 디자인 9개월, 공사 1년 6개월이다. 석유 비축기지라면 73년도의 어떤 사건을 영향으로 30년 가까이 운영됐고 폐쇄된 지 10여 년이 조금 넘었을 때였다. 아쉽다. 너무 짧은 기간 탓이다.


<일본 롯폰기 힐즈 전경, 중앙에 높게 솟은 것이 모리 타워(mori tower)이다.>


일본의 롯폰기 힐즈를 보자. 롯폰기 힐즈는 주민 대상으로 진행됐던 설명회만 1천여 회가 넘는다. 기획단계부터 14년이라는 시간이 걸쳐 완성됐다. 거주민을 설득하고 동의를 얻는 것에만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더불어 롯폰기 힐즈는 기획 당시부터 방위청 부지의 토지를 지구계획의 일환으로 일괄 처분한 사례이기도 하다. 더불어 롯폰기 힐즈 일대의 토지는 도쿄에서도 높은 시세를 유지하고 있는 토지임에도 불구하고 40% 이상을 녹지로 활용하고 있다.  롯폰기 일대에 롯폰기 힐즈 외에도 좋은 사례로 손꼽히는 도쿄 미드 타운을 중심으로 모리 미술관을 비롯해 선토리 뮤지엄, 21_21 디자인 사이트, ron herman 등 미술관과 디자인 스폿을 구성하며 고감도의 지역으로 자리 잡았다.


<도쿄 롯폰기에 위치한 도쿄 미드타운(tokyo midtown).>


도쿄 미드 타운은 2007년에 문을 연 복합 문화 공간으로 롯폰기 힐즈와 마찬가지로 도쿄 재개발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역시 빌딩에 비해 녹지 비율이 높고 분수와 나무로 꾸며진 일대는 산책로로 인기가 좋다. 여러 미술관과 쇼핑센터인 갤러리아, 안도 다다오가 디자인한 21_21 디자인 사이트까지 좋은 도시 재생 사례로 손꼽힌다.


<21_21 design sight, ando tadao>
<suntory museum>


도시재생은 단순히 이벤트성 이슈로 접근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공적인 도시 재생을 위해서는 기존 도시 커뮤니티 유지와 거주민을 비롯한 이해관계자 간의 합의 도출 등 최종적인 의사결정의 확보가 중요하다. 동시에 도시 기능적 측면에서 거주민의 생활여건 보장 및 사회, 문화적 기능 회복의 측면뿐만 아니라 도시 단위의 경제 회복의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역사를 끌어안고 공공재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이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수많은 고민과 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museum 'san', ando tadao>


국내 사례만 봐도, 강원도 원주시의 '뮤지엄 산'은 안도 다다오가 재생 건축을 하는 데에만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사실 문화 비축기지 사례는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싸해 보일 수 있지만 과연 상기의 롯폰기 힐즈 사례에 비추어 보자면 단연코 가볍고 허술하다. 성공적인 사례로 남을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은 전혀 들지 않는다. 도시, 거주민, 이해관계자에게 어떤 의미를 갖게 될 것인지, 더불어 물리적인 기능 측면, 추상적인 기능, 경제적 측면 어느 부분 하나 충족시킬 것이라 예상되는 바가 없다. 정말 단순한 게릴라성, 이벤트성 쇼에 그친다고 생각한다. 어떤 연계성이나 신선함, 사려 깊음, 편안한, 자연스러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어떤 것도 이해하고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문화 비축 기지는 사실상 재생이 아니라 새로운 탄생에 가깝다. 어떠한 연결고리도 찾을 수 없는, 단순한 재활용에 그치는 것이다.


<문화비축기지(oil tank culture) T6>
<문화비축기지(oil tank culture) T6>

문화 비축기지 사례를 통해 한국은 앞으로 공공 부문 도시 재생에 대해 심각한 고민과 반성, 그리고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 더러워진 벽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 벽을 새롭게 칠하는 것과 깨끗하게 닦아 새것 같지는 않지만 자연스럽고 보다 깨끗하게 만드는 것, 뭐가 더 어려운 일인가? 옛 것에 새 숨결을 불어넣는 일은 새로 짓는 것보다 더 오래 걸린다. 사람이 쓸 수 있게 깨끗하게 고치는 것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옛 것의 의미를 꼼 곰 하게 조사하고 지금 시대와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더 중요하다.


도시는 기억이며 고향이고, 또 하나의 이름이며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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