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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범수 Mar 03. 2019

국민의 뜻이 원칙이다

<2015년 1월 12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김기춘 비서실장과 문고리 3인방을 경질하라는 여론에 대한 그의 답이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러나 그는 단칼에 거절했다. 같은 맥락에서 '장관들과 왜 대면 회의를 하지 않느냐'는 지적에 대한 그의 답도 우리는 기다렸다. 유명한 장면은 여기서 나온다. 기자의 질문에 박 전 대통령은 고개를 돌려 '대면 보고가 필요합니까'라고 물었다. 병풍처럼 앉아있던 장관들은 당황한 웃음을 지었고 박 전 대통령은 '이것 봐라. 필요하다는 답이 없지 않느냐'는 취지로 상황을 정리했다. 대통령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혼란을 유발하는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의사결정구조를 바꾸라는 요구는 그렇게 무시됐다. 불과 1년 반 뒤 그것은 뼈아픈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아시아경제. 2015년 1월 16일 자.> 


박근혜 대통령이 무엇을 하든 지지하는 사람들과 무조건 반대하는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 국민은 12일 신년 기자회견을 어떻게 봤을까. 이들을 '부동층'이라고 단순히 분류한다면 이 중 상당수는 최소한 세월호 참사 전까지는 박 대통령을 지지했다. 이것은 60%를 넘나들던 국정지지율이 말해준다.


그들은 박 대통령이 무엇을 잘한다고 여겨 지지를 보냈을까. 집권 초기였던 만큼 그들의 지지 사유는 일종의 '기대감' 같은 심리였을 것이다. 무엇이 기대감을 갖게 했을까 또 생각해보면, 사심 없이 국가를 위하는 길을 갈 것이며 현실과 타협하거나 양보하지 않는다는 강인한 원칙주의가 결국은 성공할 것이란 생각 같은 게 아니었을까.


기자회견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사진출처 : 청와대)


궁극적으로 국민이 행복해지고 상식이 이기며 부정부패가 발붙일 곳 없는 나라를 만들 수만 있다면 진보나 보수를 따지는 것은 이들에게 무의미할 수 있다. 그러나 진보정권도 보수정권도 국민이 피부로 느낄 만큼 '살 만한 대한민국'에 접근하지 못했다는 패배감은, 국정의 성패는 가치의 차이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얼마나 흔들리지 않고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느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했는지 모르겠다.


12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새로 알게 된 것은 하나도 없다. 우리는 박 대통령이 '자신이 세우고 옳다고 믿는' 원칙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란 사실만 확인했을 뿐이다.


많은 국민이 요구한 청와대 참모진 4명의 경질을 박 대통령은 단칼에 거절했다. 그 결정은 박 대통령이 국민의 요구에 따르는 것보다 자신의 원칙 고수를 더 중요시한다는 분명한 신호다.


기자회견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높은 것은 부동층 중 상당수가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게 될 것임을 알려준다. 집권 2년간 별다른 성과를 느끼지 못한 국민은 박 대통령이 견지한 '자신만의 원칙에 매몰된' 자세로 인해 극심한 국정혼란이 발생했던 것이라고 확신하기 시작한 것이다.


국민은 박 대통령에게 4개 분야 구조개혁을 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지 않다. 비판은 할지언정 창조경제를 폐기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국민은 대통령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혼란을 유발하는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의사결정구조를 바꾸라고 요구할 뿐이다. 그것은 따르기 어려운 것이 아니면서도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는, 현시점에서 비용 대비 가장 효율적인 일이다.


박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장관들의 대면보고를 늘릴 의향이 없느냐"는 질문을 받고, 장관들과 수석비서관들을 돌아보며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물었다. 물론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고 박 대통령은 "필요 없다"는 답을 '반강제적'으로 얻어냈다.


박 대통령이 진정 국민의 뜻을 들으려 했다면 자신의 뒤에 줄지어 앉은 참모들이 아닌, 연단을 노려보고 있는 기자들에게 물었어야 했다. 왜 그러지 않았을까. 박 대통령은 자신의 원칙과 국민의 뜻이 다름을 애써 외면하고 싶어 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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